'저 여편네 참 쌀쌀맞네. 지가 뭘 그렇게 잘났다고 고상한 척 저런대. 참나'
처음에는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러나 화순 씨는 무뎌지기로 했다.
말수가 없는 척 욕먹는 것이, 글을 몰라 무시당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다.
나는 괜찮아도, 혹여나 자식들 해코지당하고 무시당할까 평생을 배운척하며 살아왔다.
나 역시 살아온 이야기가 누구보다 절절한 사람이지만,
글을 모른다는 것 사실이 내 삶을 이야기할 기회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남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되뇐다.
'나도 어렸을 땐, 꿈 많은 소녀였는데...'
남들 다 배운 공부를 60년이 지나 배우고 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스스로의 삶에서 해방되고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면 과연 누가 믿어줄까?
십수 년 전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 남편이 써준 편지에는 세월 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다.
장롱 속 깊이 넣어둔 편지를 이제야 꺼내본다.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그때 글을 쓸 수 있었더라면, 당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답장을 했을 텐데.
'여보, 내 지금 답장을 써 보내면 당신 있는 곳까지 닿으려나?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 밤 쓰고 싶어'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태청야학 소망반 교사입니다.
위 이야기 속 주인공 '화순' 씨는 가명의 학생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분들의 이름이기도 해요.
야학에 나오는 어머님, 아버님들은 5~60년 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꿈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은 그 서럽고, 억울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 야학에 와서 뒤늦게 행복을 찾아갑니다.
대한민국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지금 이렇게 먹고살 만해진 것은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만큼 글을 읽지 못하는 고통 또한 큽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이제는 돌려주어야 할 때입니다.
태청야학은 올해로 개교 5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교장선생님 이하 많은 선생님들께서 사비를 후원하고 봉사하며, 야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소외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되돌려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서울에만 열 곳이 넘는 야학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수십여 야학이 묵묵히 부여된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발간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쓸 수 있는 용기를 통해 드디어 까막눈에서 한 사회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합류할 순간을 그려봅니다.
저는 더없이 지금 행복합니다.
인생의 꽃길을 걷는 나이 지긋한 소녀들과 동행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