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나', '다'를 외우는 손

by 부론

"아이고, 오늘 날씨 참말로 덥네. 푹푹 찌네 쪄"


일흔이 훌쩍 넘은 늦깎이 학생들이 힘겹게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에 꼭 쥔 손수건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의 2층을 임차하여 야학으로 쓰고 있다.


팔팔한 선생님들은 한 번에 두세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오면 그만이지만, 무릎이 불편하고 허리 굽은 학생들에게는 무더위를 뚫고 학교까지 오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고, 00님 고생 많으셨어요. 교실에 에어컨 틀어놨으니까. 어서 들어가서 더위 좀 식히셔요."


이런 표현을 하기가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어머님들이 알록달록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들어오시는 모습이 참 귀엽다. (새파랗게 어린 선생이 감히) 학생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수업 시작 전에 반장님이 "인사" 하고 외치면, 학생들은 두 손을 모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네.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일 끝내고,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으셔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


"학교 댕기면서 공부 배우는 게 낙인데, 힘들어도 다녀야죠. 재밌어요."


언제나 우문현답이다.


공부 배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태청야학 늦깎이 학생들. 글씨도 예쁘게 또박또박 잘 쓰시고, 표현력도 정말 뛰어나다.


평생교육 진흥원에서는 매년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한다. 성인문해교육이란, 쉽게 말해 한글을 깨치지 못한 성인들을 위한 교육을 말한다. 요즘 한글 모르는 사람이 어딨 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어르신들이 글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런 문해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을 위해, 성인문해교육 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만드는 것이 바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이다.


올해 전국 시화전에, 내가 봉사하고 있는 태청야학 지혜반의 두 명의 학생이 출품을 했다.


지혜반 양모연 님이 어린 시절 짝꿍에게 보내는 편지


지혜반 박갑순 님이 야학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편지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무더운 여름 날씨. 고작 일곱 살 나이에.


책보 대신 동생을 등에 업고, 동네방네 젖동냥을 다니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60여 년 모진 세월 지금까지 잘 버티고 버텨,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를 이제라도 실컷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할까.


지난날 켜켜이 쌓인 설움과 가난이 없었더라면,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풍요의 고마움이. 이토록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바로.


구태여 내가 늦깎이 학생들 앞에 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을 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나이를 불문하고 '배움이 주는 활력'은 참으로 신기하고 위대하다.


태청야학 파이팅!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