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30대 초반, 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던 사람. 약사였고, 착하고 착했다. 성격도 좋았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다만 하나, 그는 누나가 4명인 집의 막내아들이었다. 그거 빼곤 나머지는 다 괜찮았다.
우리는 친구로 시작했지만, 먼 훗날의 결혼을 자연스럽게 꿈꾸는 사이가 되었다. 급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 싶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울산의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부모님께도 인사했다. 그의 부모님은 나를 반겼고, 우리 부모님도 그를 사위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것을. 병원에 계신다는 것을.
그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서둘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아들의 결혼식을 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장에 갔다.
문상을 드리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미 며느리 같은 존재였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인사하는 동안 계속 나는 그 속에서 예비 며느리였다....
3일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장지로 가는 길.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어리고 철없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두려웠을까. 너무 무거웠을까. 아직 며느리가 아닌데,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을까.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 가족은, 나를 서운해했다.
당연했다.
3일상을 치르고 돌아온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온 그.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곧 추석이 왔지만, 그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전화도 뜸해졌고, 만남도 줄어들었고, 관계는 급격히 멀어졌다.
우리는 헤어졌다.
결혼식장 예약은 자연스럽게 취소하고, 부모님께 드렸던 인사는 의미를 잃었고, 먼 훗날을 꿈꾸던 우리의 시간은 끝이 났다.
한동안 정말 허전했다.
빈자리가 컸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척했다. 일에 더 몰두했다. 집중했다. 더 열심히 살았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를 후회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그렇다.
만약 내가 장지까지 따라갔더라면.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 무게를 견뎌냈더라면.
지금 나는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하지만 '만약'은 의미가 없다.
나는 그때 따라가지 않았고,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나의 30대는 그렇게 지나갔다.
결혼할 뻔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고, 일에 더 빠져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했고, 나는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주었다.
" 다시 만나 ?" "아니."
"왜 헤어졌어?" "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도 어떻게 헤어지게 된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30대는 폭풍전야 같았다.
결혼이 눈앞에 있다가 사라졌고, 관계가 깊어졌다가 끝났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30대 두번째 이야기를 할께요~~
'아직도?'가 '이제는?'으로 바뀌고,
비혼이 선택이 되어버린 그 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