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인가 로맨스인가
1860년 경 방콕의 수로水路마을 프라카농พระโขนง, 아내 낙นาก/นาค과 남편 막มาก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막은 임신한 아내 낙을 홀로 두고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막이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사경을 헤매는 사이, 낙은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다. 오매불망 그리던 집으로 돌아온 막은 사랑하는 아내 낙과 자신의 아이를 돌보며 예전처럼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급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아내 낙이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믿고 싶지 않았으나 아내의 실체를 눈으로 목격하게 된 막은 그 길로 도망쳐 마을 사원에 몸을 숨긴다. 믿었던 남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친 것을 알게 된 낙은 막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이 모든 불행이 마을사람들 탓이라 여겨 원한을 품게 된다. 낙은 마을사람들을 하나씩 해치기 시작하고 고요하던 수로마을 프라카농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낙의 악행이 극에 달한 어느 날, 홀연히 마을에 나타난 노승은 원혼 낙을 단숨에 물리치고 마을은 다시 평화로운을 되찾게 된다.
방콕의 중심가인 수쿰윗의 71번가에는 마하붓มหาบุศย์이라는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는 고층 빌딩으로 뒤덮인 방콕 도심 속에서조차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흔한 것이 사원이지만, 마하붓 사원에서는 불상 외에 특별한 신을 만나 볼 수 있다. 바로 남편의 부재 중 아이를 낳다가 죽은 낙을 기리는 신당이 이 곳에 만들어져 있다.
낙은 주로 ‘매낙’이라 불린다. ‘매แม่’는 ‘어머니’를 뜻하는 말로 과거 결혼한 여성 앞에 붙여 쓰였으며, 현재 마하붓 사원의 매낙 신당은 ‘야ย่า’라는 여자인 정령 또는 신에게 붙이는 말로 격상되어 ‘야낙’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낱 전설 속 여귀에 불과했던 매낙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여신으로 격상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낙의 영험함은 태국 방방곡곡으로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이 신당으로 모여든다. 현재는 중국 관광객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관광명소로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마하붓 사원에 매낙 신당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57년 피분 쏭크람ป.พิบูลสงคราม 총리가 싸릿 장군의 쿠데타로 실권하기 얼마 전으로 마하붓 사원을 찾은 피분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악해진 매낙을 퇴치하기 위해 등장하는 이야기 속의 노승(‘쏨뎃또สมเด็จโต’라는 라마4세(1581~1868) 때 대승으로 알려져 있다)은 매낙의 환생을 막기위해 매낙의 두개골 사이 이마뼈의 조각을 도려내는데, 이 뼈조각이 마하붓 사원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피분은 매낙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위로하며 그녀를 위한 사당을 지으라고 사원측에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낙의 이마뼈 조각이 매낙의 신당 아래 묻혀 있을 거라는 추측만이 난무할 뿐 그 실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된 바 없다.
남편을 전장에 떠나 보내야만 했던 매낙은 전쟁을 싫어하고 모성애가 뛰어나며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고 한다. 따라서, 여신 매낙은 위험한 곳에 가족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자식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보다 특별한 은혜를 베푼다고 알려져 있다. 1957년 9월 16일 싸릿 타나랏สฤษดิ์ ธนะรัชต์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 피분 쏭크람의 15년간의 독재 정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아마도 자신의 신분에 불안을 느낀 피분 쏭크람이 매낙 앞에 향을 피우며 마음의 안정과 요행을 바랬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낭낙>과 <피막 프라카농>
‘매낙’ 전설은 시대에 따라 이야기의 중심과 내러티브 구조를 조금씩 달리하며 1933년 처음으로 매낙의 이야기가 영화화된 이래 현재까지 30여 편의 매낙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1999년 상영된 영화 <낭낙>은 대흥행을 기록하며 ‘매낙’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재조명을 받은 것은 물론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낭낙>은 제 2의 태국영화산업 황금기의 선두주자였던 유명 감독 논씨 니미붓(우리에게는 한·태·일 합작 공포영화 <쓰리>에서 태국편을 담당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의 작품으로 뛰어난 영상미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영화에 현실감과 예술성을 고취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낭낙>이 개봉된 1999년은 태국에서 비롯된 IMF경제위기로 태국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만 1억 5천만 밧의 수익을 거두어 들였으며, 현재까지도 태국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에 머물러 있다.
<낭낙>은 비교적 원전의 이야기에 충실하였고 여기에 낙과 막의 사랑을 보다 부각시켜 감성을 자극하고 경제적 위기로 시름에 빠져있던 태국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데 그 성공 요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또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전설의 배경이 되는 라마 4세 당시 여성들의 머리가 짧았던 점을 영화에 반영시켜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섬찟한 귀신 대신 스포츠 머리의 매우 인간 같은 여귀가 등장하기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낭낙>은 태국영화산업의 전환점이자 태국영화의 질적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피막 프라카농>은 2013년 개봉된 매낙 전설의 또 다른 버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샴>, <셔터>, <헬로 스트레인저>, <랑종> 등으로 잘 알려진 반쫑บรรจง ปิสัญธนะกูล 감독의 작품이다. <피막 프라카농>은 태국영화의 흥행코드라 불리는 코미디와 공포가 혼합된 영화로 태국영화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기록되었다.
<피막 프라카농>에서는 백 여 년간 매낙 전설의 주인공이었던 낙 대신 이야기의 중심이 낙의 남편 ‘막’으로 옮겨졌다. 백설공주가 칼싸움의 고수가 되고 표독한 왕비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리는 등 고전의 재해석은 최근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태국의 귀신이야기 ‘매낙’의 이러한 변화는 다소 충격적인 발상이었음에도 오히려 태국관객들에게는 큰 재미와 신선함을 가져다 준 것 같다. ‘피พี่’는 손윗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으로 한국어의 ‘언니, 오빠, 누나, 형’에 해당한다. 피막 역할을 맡은 마리오는 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십대 때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태국 내 톱배우로 자리잡고 있다. 태국 연예계에서 혼혈인들의 활동은 순수 태국인들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나, 태국의 오랜 전설 이야기에 혼혈 배우의 등장은 역시 감독의 독특한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도 피막은 자신을 혼혈로 소개하며 태국이름 ‘막’은 영어의 ‘마크Mark’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국관객들에게 큰 웃음 포인트가 되었던 이 장면은 이 후 정계의 호사가들에게 자주 인용되기도 하였다. (태국의 최고야당인 민주당 대표 아피씻 웨차치와อภิสิทธิ์ เวชชาชีวะ의 닉네임이 마크Mark이며, 영화가 개봉될 당시 태국의 총리가 여성이자 탁씬 전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치나왓ยิ่งลักษณ์ ชินวัตร이었다.) 영화 감독인 반쫑 감독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절대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영화의 해석은 관객의 몫이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