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것이 가장 큰 불효다

by 부산물고기

처음 미국행을 결정할 때도,

가장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이

손자를 자주 보여드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였다.


그런 고민을 말씀 드릴때 마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은

'너네의 삶이 가장 중요하니,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속에는

귀여운 손자를 못보여 드리게

될 것에 대한 죄송 스러움이 남아 있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영상통화를 드리고,

매일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드려도

하루 하루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아이가 가장 귀여운 시기의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항상 마음 속에 있었다.



ATL TO ICN

1년 8개월만에 형의 결혼식으로 10일 이라는 짧은 기간

한국에 다녀왔다.


워낙 급히 진행된 한국행이기에-

이번에는 최대한 아이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많이

보여드려야겠다 생각을 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혹시나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또 서운해하시거나, 상처 받으시면 어떻게 하나-

생각 하기도 했었다.


CHI - ATL - ICN - SEL- BSN


결론적으로 그 모든 걱정은 나의 '기우'에 불과 했다.

아이는 처음 부산에 도착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봤을 때는

뭔가 어색한지 뻘쭘해 했지만-

30분여의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혼 하루 전 큰아빠와

일어나자마자-

'할미는 어딨어?'

라고 잠이 덜깬 얼굴로 할머니를 찾았고,

잠에서 조금 깨면

'할비 깨우러 가야겠다!' 라며

할아버지방으로 혼자

뛰어 들어갔다.


아빠 할미는 어딨어요?


그리고 거실에 앉아서

할머니가 깎아주는 복숭아를 먹으며

'할미~ 이건 털복숭아야? 천도 복숭아야?'

라고 물어봤고-

할아버지가 출근 할때면

'할비~ 레인지로버타고 가? 푸조 타고가?'

하고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할미의 사랑은 '당"으로 표현된다


잠시 할미가 장을 보러갔다가 나갔다가 돌아오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이게 누꼬~~~' 하면서 할머니 품에 쏘옥 안겼다.

잠이 들 시간이 되면 아빠를 피해

'오늘은 할미랑 잘꺼야, 할미랑 둘이 잘꺼야' 라고

매일 말했다.

외할비는 재이가 뭐래도 괜찮아


제천 처갓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조금 어색해다가-

할미품에 안겼고, 나의 장인어른께는

'외할비는 앞머리가 다 어디갔어?' 라고

아픈곳을 찌르곤 했다.


(이후 대화는 이러하다)

'할비는 늙어서 그래~'

'늙으면 어떻게 되?'

'늙으면? 허허허 요단강 건너는 거야~허허'


장인어른....



비오는 날. 할비와


할미, 할비, 외할미, 외할비와 함께 있는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이에게 마냥 고맙기만 했다.

엄마, 아빠가 못한 효도를 녀석이 다하는 것 처럼 보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할미와 할비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새벽에 아이가 깨어나도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안아주셨다.


피곤 하시고 힘드셨을텐데도

아이를 언제나 사랑으로 보다듬는

할미와 할비들의 손길 속에서-

엄마, 아빠가 주지 못하는

또 다른 모습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


할비 이거 자동차로 바꿔주세여



그래서 더 죄송했다.

더 자주 보여드리고, 더 자주 기쁨을 드려야 하는데-

미국에서 살고 있어 그러지 못하는게 죄송할 따름이였다.


그래서 더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게-

그나마 죄송한 마음을 조금 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들로써, 사위로써-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손자를 자주 보여드려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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