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의사라서요"

by 부산뉴요커

코로나 덕에 성인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부산에서 1년 넘게 지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라이브 방송 쇼호스트를 했던 동갑내기 아나운서가 있었는데 본인이 이대출신이라고 했던 그녀는 만날 때마다 꼭 한 번은 “남편이 의사라서"라는 말을 꺼내곤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본인도 이쁘고 잘났으면서 왜 저렇게 남편 직업을 자기 이야기처럼 하고 다닐까?' 그 질문은 몇 달 간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2017년 뉴욕에서 다시 재회했던 고등학교 동창 ‘카렌’이 떠올랐다.


1. 각박한 세상, 현실주의 몽상가 ‘카렌’

MBC 무한도전 - 하이브리드 샘이솟아 리오레이비

2007년 무렵, 나는 미시간에서 10학년 ‘카렌’을 처음 만났다. 제시가 떠오르는 어눌한 말투, 씨엘을 연상시키는 동양적인 얼굴, 이효리처럼 까무잡잡한 피부톤을 한 그녀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교포언니’였다. 그렇게 3년간 백인 마을 촌구석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카렌‘은 졸업 후, 할리우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LA로 넘어갔고, 그 곳에서 대만계열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형, 난교, 마약 등 도파민에 취해 학부시절 내내 와일드한 소셜라이프를 영위했었다. 그녀가 서부에서 진정한 파티걸의 삶을 살 동안 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카고 근교의 기독교 사립대학교에서 작은 장학금으로 전공 비전도 계획도 없이 입학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며 하루살이처럼 버텨내고 있었다. 중서부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그녀의 화려한 삶을, 나는 몇 년간 페이스북을 통해 쭉 지켜보아왔다. 처음엔 이질감이 들었다가 몇 년째 당당하게 욜로마인드로 사는 ’카렌‘이 한 편으로는 멋있었다. 그녀의 삶을 동경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반복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그 자신감이 신기했다.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다시 둘 다 뉴욕에서 살게 된 것도 보통 우연은 아니니, 옛정에 힘입어 서로에게 많은 노력을 쏟던 시절 그녀가 이런 말을 했었다. "모델을 하고 싶긴 한데, 내가 키도 작고 절세미인은 아니잖아. 취업해서 아등바등 사는 직장인 삶도 별로고. 여자가 제일 잘 팔릴 때 부자 남자 만나는 것도 능력이야. 그게 그들만의 비즈니스지. 너도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부자 남자를 만나." 당시 20대 중반의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 말이 솔직한건지, 영악한건지, 아니면 단지 가치관과 전두엽의 차이라고 일단락 지을 수 있는건지는 내가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카렌’을 정죄했던 기억이 난다. (이전 에피소드에 언급했던 "You do you" 마인드가 나에게도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자유를 누군가가 실제로 실행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했던 것일테다.)


‘카렌’은 뉴욕으로 이주하며 인스타에 도배된 섹시 클러빙 사진들을 차차 럭셔리 패션 콘텐츠로 피드세탁을 하더니, 1-2년이 지나자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 로 브랜딩에 성공했었다. 그렇게 그녀가 이민자 신분, 억소리 나는 뉴욕 렌트비, 제대로 된 커리어나 밥줄 걱정에 치이지 않으며 전업 크리에이터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온라인앱으로 의사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다. 허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랑 관심 분야도 다르고 맞는게 하나도 없어 "넌 내가 이혼해도 내 친구 해줄거야?" 이런 감정의 널을 뛰며 몇 번이나 이혼각을 재다가도 "근데 내가 팀이랑 이혼을 하면 맨하탄에서 콘텐츠를 할 물질적 여유가 안 되라고? 그래서 짜증나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살아야겠어, 일단 내 시민권 나올 때 까지는." 하고 비즈니스마인드를 장착하는 그녀가 대단하기도 했다.


2. 두둑한 배짱 혹은 염치없는 베짱이?

Taylor Swift - "The Man" Music Video

LA에서 중년 졸부들의 요트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삶을 보여주면서 기필코 그 남자들과 찍은 사진은 올리지 않던 ’카렌‘은 연애할 때도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은 열심히 소셜미디어에 올렸지만 남편과 같이 찍은 사진은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 시절, 최전방에 있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는 인스타 트렌드가 번지자 그녀는 처음으로 ‘나의 남편은 의사다’라고 운을 띄우며 그의 사진을 올렸다. 그 때 알았다, ‘남편이 의사’라는 메리트는 여자의 전리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왜냐하면 ‘카렌’은 자신의 ‘럭셔리 뉴요커 이미지’에 득이 되는 큐레이팅만 하는 철저한 ‘비즈니스 우먼’인데, 아무리 남편의 하드웨어가 숭하고 그의 소프트웨어가 노잼이라 한들, 그 모든 걸 뛰어넘고 결밍아웃을 했다는 건 그녀에게 수지타산이 맞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순간 같은 도시에 산다고 해서 삶의 결까지 비슷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체감한 우리는 코로나를 빌미삼아 감정적 물리적으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 포스팅을 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녀의 모습이 있었다. “팀 잘지내지?" 라고 물으면 "몰라, 지가 병원에서 뭘 하는지 무슨 국시를 준비하는지 내가 알게 뭐야. 집에선 할 줄아는게 아무 것도 없는데" 라고 12년 공부한 마취과 전문의를 12초만에 퐁퐁남으로 만들어버리던 ‘카렌.‘ 그녀의 포스팅의 캡션을 읽어보았다.


“나의 남편은 의사다. 정말 대단한 내남편.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의료계 종사자들을 코로나시국의 숨은 영웅으로 기억해야하며...."


'놀고 있네, 남편이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약을 판다고? 이건 뭐 뷰티고 출신 트로트가수 무역학 표절 논문 읊는 소리보다 더 신빙성 떨어지는 소린데 뭐지?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나?‘


남이야 뭐라든, 자신의 삶에 당당할 수 있었던 ‘카렌’의 ‘배짱’이 그녀와 나 사이 유일하게 공유했던 가치였는데, 그것조차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 가식이 되어버렸다. 인스타 전시용 이미테이션 샤넬과 생로랑을 “그냥 촬영용일 뿐이야. 그런데 돈을 왜 써.”라며 쿨내 쿨쿨 풍기던 그녀가 남편을 두고 똑같은 소모품 시전을 하는 것이든, 아니면 그 반대로 리플리 증후군이든, 그 포스팅은 한순간에 알량한 옛정조차 뚝 떨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콩깍지가 벗겨지자 그녀의 똘끼는 뻔뻔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닌었다. 10년 넘게 알았던 인연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건 냉혈한 같아서 서로 삶의 니즈가 다른 만큼 그 정도의 거리만 두려고 했던 지난 몇 개월이 무색하게, 나는 그날로—거의 충동적이다시피—그녀를 언팔해버리고 말았다. 문화 충격과 정체성 혼란을 함께 겪었던 10대 시절의 애틋함이 나로 하여금 '흔한 유학생의 더 흔한 인지부조화쯤이야' 의리로 포장된 관용을 가능하게 했었다. 하지만 그 지킬 박사 같은 포스팅 하나로, 그간 내가 쌓아온 연대가 결국 눈부시게 화려한 그녀의 다중인격에 놀아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내가 잘나갈 때는 늘 내 주위를 맴돌면서도, 정작 내가 절실하게 친구가 필요해 손을 내밀었던 순간들에 '카렌'은 내 곁에 없었을까." 그 오랜 의문이 단숨에 해소되자, 그녀를 향한 배신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내가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카렌’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이 사실 자체가 그 감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여기까지 써내려오는 동안 내 안에 수많은 딜레마가 있었다.


의도: 타인의 삶을 이렇게 제3자 입장에서 낱낱이 온라인에 드러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대중의 반응: ‘인플루언서’ 또한 엄연한 밥벌이 직업으로 여겨지는 2025년도에 ‘카렌’과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불특정 다수에게 이 글이 불편하진 않을까.
자아 성찰: 가명으로 친구를 후려치기하며, 내 마음 속 응어리진 상처를 해소하려는 건 아닐까.
목적: 어떤 이에게는 내가 ‘카렌’일 수도 있고, 사회의 독이라고 판단하는 것들 중에 나 또한 한 번도 가담한 적 없이 결백하다고는 말 할 수 없는데, 굳이 이런 글을 공론화해서 얻고자 하는 게 뭘까. 카타르시스와 힐링? ㅇㅋ 그렇다면 내면의 치유는 정신과 의사에게서 받고 공감과 위로따위는 다음에 고교 동창들과 술자리 안주 삼아 털어내자. 이 글은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자.


그러나 이 글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어, 여러분이 어쨌든 여기까지 읽고 계시다면—나에게는 이 모든 딜레마를 뛰어넘는 결론이 생겨서다. 그리고 곧장 결론으로 달려가지 않고 이토록 긴 빌드업을 한 이유는, 앞으로 써내려갈 깨달음을 내가 직접 도출해내기까지 나 또한 이면에 서서 도덕적 우월성과 자격지심이라는 양날의 검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느꼈던 모든 날것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펙트럼이 넓어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이 글은 연설문이 아니라 그저 한 개인의 수필이란 걸 감안해주시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3. ‘예서엄마들’이 치룰 댓가와 기회비용

JTBC SKY캐슬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닭도 같이 알을 쪼아줘야 하듯, 의사가 그 직함과 커리어를 얻기까지는 단지 본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내부의 치열한 자기수련에 제일 힘든 건 알 속에 있는 본인이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고강도의 시간 투자와 지속적인 학습, 그리고 극단적인 체력 소진을 감당하기 위해선, 주변인의 헌신적인 조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부모가, 이후에는 배우자가 그 짐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의사라는 타이틀이 지닌 사회적 명예와 높은 ‘예상 수입(earning potential)’이라는 조합은, 대부분의 직업군을 압도하는 장기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 곁에서 함께 버티고 희생하는 조력자의 욕망과 정체성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나는게 보편적이다.


미국 기준으로, 의사가 되기까지는 학부생부터 시작해서 평균 12년, 펠로우십까지 합치면 15년까지도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막대한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는 미래의 본인 혹은 조력자가 감당해야 하고, 전문의가 되기까지 전공의 시절 평균 주 80시간의 병원 근무는 말 그대로 체력전이다. 남은 시간은 오직 다음 근무를 위한 '회복'에만 쓰일 뿐, 배우자와의 관계 유지나 가정 내 역할 수행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조력자는 오히려 의사 배우자를 의지하기는커녕, 그들의 삶을 온전히 뒷바라지 해내야지만 ‘한 집에 의사 한 명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의사 선생님 그림자에 가려지는 것도 모자라서


처음엔 염전노예만큼 박봉인 전공의를 외조하기 위해 덜 명예스러운 직업으로 돈도 벌어와야 하고,

(태생이 금수저라서 시댁과 친정에서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경우엔 그에 따르는 입김과 통제 때문에 오히려 가정의 온전한 독립성과 주체성을 약화시킬 할 가능성 농후)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이 몸만 와서 쓰러질 수 있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위한 살림도 해야하고,

(금전적 기여없이 집에만 있다면 내조를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때문에 심리적 소진 증가)


여기에 임신, 출산, 육아, 자녀 교육까지 얹혀진다면 정말 의사만큼 의사 배우자도 1인 3역을 수행하는 원더우먼 혹은 슈퍼맨이 되어야만 한다.

(의사가 새끼를 치면 모든 기대와 기준이 이미 상향화 되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봤자 본전)


결국,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고독한 일이, 바로 '슬기로운 의사 배우자'로 살아가는 일이다.


4. 이것은 (사모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사모‘가 과연 직함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건, 대부분의 직업군에는 그 직업을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환상이 짙게 드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철저한 뒷바라지를 요하는 고소득 혹은 전문직 배우자를 둔 모든 이들의 겪는 고충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머, 남편이 XXX세요? 부럽다."라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은 대게 예의 섞인 겉치레일 뿐이고, 그들이 굳이 ‘기득권’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고충까지 알고싶은 마음은 없다.

결국 이런 구조 속에서 사모들은 이래도 저래도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들의 환상을 조금이라도 지켜주는 응답을 하면 ‘Humble Bragging 시전하는 팔불출‘ 이 되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징징대는 소리를 하면. ’남편한테 감사할 줄 모르는 불만녀‘가 되고, 자기비하식 개그로 상황을 넘어가려고 하면 ‘사태 파악 못하는 억척스러운 아줌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결국 남는 선택지는 하나,

“아, 뭐 그렇죠.”

하고 웃으며 넘기는 것뿐이다.


이렇게나 괴로울 일이면 본인들이 의대에 떡하니 입학을 해버리면 되는데,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게 세상일이 아니기에 현실과 타협점을 찾은게 어쩌면 바로 이쯤이 아닐까 싶다.

https://www.youtube.com/shorts/TO1wrfiAvck

NETFLIX - 폭싹 속았수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는 결혼은커녕 연애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 의사라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나운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에서는 이혼하고픈 ‘카렌’의 고학력찐따남이 왜 그녀의 SNS에선 전리품이 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 역시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그리고 일상적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자기애가 강할 수록 공허함 또한 컸을테니,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단순히 ‘과시는 결핍’이라는 진단으로는 설명되지가 않는, 남루해진 자아에 타인의 부러움이라도 수혈을 하여, 점점 뒷배경과 물아일체되어 탁해져가는 자신의 명도와 채도를 다시 끌어올려보려는 안간힘.


어쩌면 그것은 ‘남편의 성공에는 나의 공헌도 있다’는 사실을 집적적으로 말할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분명 정당하지만, 타인 앞에서 당당하기엔 어딘가 애매한,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지분 주장, 뭐 그런 것 아니었을까.


5. 결론

멜라니아 트럼프 1999 뉴욕 닉스 농구경기

이미 글이 길어졌기 때문에 내 얘기를 더 얹기보다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트럼프가 2016년 미국대선에 당선되었을 때, 처음으로 영부인 멜라니아의 존재 또한 알게되었다. 불혹을 막 넘긴 아름다운 슬로베니아출신 모델과 고희를 맞은 돌싱 재력가의 다이나믹은 당연히 ‘Gold-digger’ 와 ‘Trophy-wife seeker’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본 1999년도 인터뷰에서, ABC뉴스 기자 던진 “사람들이 당신을 트럼프의 돈 때문에 만난다고 하면 상처받지 않나요?" 라는 질문에 멜라니아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한게 기억이 난다.


"그들은 나를 몰라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거예요."


사실 나는 미셸 오바마의 모든 행보를 지켜보며 동경했던 때와 달리 멜라니아의 존재에는 관심도 무게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트럼프 재선당선 이후 보게 된 이 인터뷰 속 멜라니아가 고수한 태도와 발언들에서 낯선 단단함을 느꼈다.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들은 그를 몰라요” 라며 우리 할배는 돈만 많은 할배가 아니라는 방어에 더 급급할 텐데 스물여섯의 멜라니아는 그런 프레임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만남의 대상이 아닌, 그 만남을 선택한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그 주체성은 마치 (그녀의 가치관이 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본인의 가치관을 타인들에게 설득시킬 필요도 인정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라고 대변하는 듯 했다.


인터뷰 대본을 사전에 누가 써주었다고 한들, 높은 자존감 코스프레로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도날드를 거쳐간 전여친들 중 한 명이 되었다면 이 인터뷰는 회자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나 트통령이 현재까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난폭한 행보와 공적인 물의를 많이 일으키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멜라니아가 두 번째 임기 또한 그의 옆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영부인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현재가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25년 전 인터뷰에 더 큰 울림이 실리는게 아닌가 싶다.


LA에서의 과거를 철저히 숨기고 결혼을 한 후, 성형사실이 밝혀지는게 두려워 임신과 출산은 하고 싶지 않다던 '카렌'과 이민자 슈퍼모델출신으로 20대부터 온갖 과거와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노출을 감내해낸 영부인의 현주소를 감히 같은 선상에 놓고 싶지는 않지만 마무리는 훈훈하게 해보려 한다.


어찌 됐건 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취집이나 신분상승이 목적이든 보상이든, 소위 ‘꽃뱀’들의 사랑도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다. (‘나를 포함한’ 넣으려다가 30대 아줌마가 자신을 꽃뱀이라 칭하는 건 자기객관화의 결여이고, 남편 또한 금수저가 아니라서 머쓱^^)


스스로 해가 되지 못한다면, 햇무리라도 반사시켜 자신의 후광으로 만들고픈—자기를 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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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우러러보는 일출의 주인공 곁에 딱 붙어있으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뜨거운 태양열로 인한 피부암의 가능성, 활활 타오른 잿더미의 뒷처리, 다른 행성들의 공전보다 자전이 더 중요한 해의 자기중심성, 그리고 일몰 이후 찾아오는 차가운 태양의 이면까지도 감수할만큼의—이타적으로 해를 품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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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거를 2세에게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타협하더라도 내 새끼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우월한 유전자와 안전한 출발점을 보장해주고자 하는—희생적인 내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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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해와 욕망, 희생과 보상이 얽힌—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사랑


글을 맺으며 내가 다짐하는 것은 하나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한 분석나의 잣대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려는 버릇은 오늘을 끝으로 놓아버리려 한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은 나의 인생, 남은 여정은 오롯이 내가 나를 보는 시선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랑의 형태에만 집중하며, 담담하게 그러나 진실하게 살아내기를 기원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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