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라는 잔소리와 함께
이란 잔소리의 전제가 성립하려면, 상대를 위한 진심만큼이나 말하는 이의 마음도 조금은 아파야 한다. 살다 보니 그런 아린 마음은 커녕,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에게 굳이 나의 성장 서사 속 한자리를 내어주고 싶진 않다. 적어도 앞뒤가 투명한 사람은 거르기라도 쉬우니까, 그 정도 의미만 두며 선을 긋고 이 글을 시작할까 한다.
되돌아보면, 미시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나에게 총대를 메고 쓴소리를 해 주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내가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에 ‘스웨덴게이트’만큼이나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국의 ‘스몰토크’ 문화 역시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과 다르다고 느껴질 경우, 상투적인 예의만을 걸친 채 거리를 두는 태도, 혹은 오랜 친구와 마찰이 생겼을 때 “You do you.”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하고 감정은 뒷담화로 해소하는 방식 등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메소드로 보인다.
이는 단지 미국인만의 특징이라기보다, 사회적 거리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답습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이루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관찰과 해석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는, 곧 개인이 이를 어떻게 응용하고 객관화하며 분석하려는 의지를 갖추었는지에 따라 사회성의 깊이나 사회적 계급으로까지 연결된다.
여기서 핵심은, 미국에서는 타인이 감정노동을 감내하며 의지박약인 타인을 멱살캐리 해주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간섭이 없기에 편할 수는 있다.
더욱이 이 나라는 다양한 가치관, 민족, 계층이 공존하기에, 높은 지능이나 원대한 꿈 없이도,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고 최저임금을 받는 저소득층이라 해도 살아갈 수는 있다. (물론 이민자나 유학생에게는 도태되는 순간, 신분의 위협이 뒤따르기에 얘기가 달라진다.)
나 또한 15년간 타향살이를 하며 어느 형태로든 결핍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미국 물 좀 먹은 깍두기", 미국인들에게는 "100% 수용할 필요없는 외노자"로 나만의 길을 개척해오곤 했다. 그러다 내 인생에 틀, 기준, 그리고 전환점이 생긴 건 대학원 졸업 전후로 미국 내 한국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이다.
할머니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주시던 잔소리들을 다시 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니, 이젠 잔소리가 아니라 따끔한 피드백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들을 때는 정말 속이 뒤틀리고, 억울하기도 했던 이런 비판적인 요소들이 처음엔 아팠지만 돌아보면 내적 성장의 기초로 작용했었고, 이러한 극 T 빌런을 자처하며까지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신 분들이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
지난 3년간 나의 사고회로를 바꾼 대표적인 예로는:
2023 - "지금부터 인연을 만나기 위해 죽어라 노력을 해도 서른 다섯 전에 원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까 말까인데 누나 나이에 자아실현 타령하는 건 배부른 소리."
2024 - "팀원들이 해야 할 일들을 과장급이 야근하면서까지 자처하면서 대신 해주는 건 팀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 팀장의 리더십 결여. 본인이 착한척하는 건 회사를 말아먹는 일."
2025 - "시키는 것만 해오고 국제정세 흐름만 열심히 숙지한다고 해서 본인 가치가 올라가지 않음. 열시간 주구장창 공부만 할 줄 알고 비판적사고는 할 수 없다면 추후에 도태 각. 먼저 능동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이의제기를 할 줄 아는 것도 역량."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는 그들 덕에
a) 서른 다섯 이전에 원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고
b) 회사 말아먹기 전에 내 성향과 방향성이 맞는 곳으로 이직을 결단할 수 있었으며
c) 독자적으로 준비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 또한 조금씩 몸에 익힐 수 있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상대를 무조건 적으로 지지해주는 따뜻한 말들도 때로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타인의 위로로 올라가는 자존감은 타인이 부정하는 순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변수‘라 치면,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오롯이 내가 쌓을 수 있는 ‘상수’이며, 이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이들은 대부분 나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팩트 기반의 조언을 감행했던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내가 팩폭대신 이런 올려치기로 위로만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2023 - "언니는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에요. 언니가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죠!"
-> 자기객관화 실패 후 실버타운 입성. 편할 수는 있어도 행복할지는 미지수.
2024 - "어이구, 수고했네. 팀원들 생각하는 마음씨 하나는 역시!"
-> 팀원들에겐 호구로, 회사에겐 마이너스로, 결국엔 해고 통보
2025 - "음... 일단 잘 알겠고 열심히 하셨네요. 새 업무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 프로젝트 배치 점점 뜸해지다가, 조용히 정리해고
칭찬은 오히려 쉽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지만 고래에게 지금 필요한게 춤인지 생선인지 헤엄인지는 그 포유류에게 관심을 가져봐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무분별한 칭찬이나 아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갈수록 말은 신중하여야 하고, 고개는 숙여야 한다.
나 역시 부사수를 두었을 때 나의 편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를 위한 조언을—설령 주파수가 맞지 않더라도—단 한 번이라도 진심을 담아 건넨다는 것이 얼마나 큰 내공을 요구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단기적 위로 vs 장기적 권면 vs 침묵 이라는 선택지 중에서 어떤 말을, 언제, 왜 건넬지 판단 하는 것 역시 결국은 윤리적 고찰을 담당하는 지능의 영역이다.
내가 고등학교 12학년을 앞두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할머니는 당신의 남편을 모시는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는 꼭 외교관이 되어라.
여자가 커리어가 없으면 항상 남편한테 묶이 가지고 남편 죽을 때까지 같이 고생한다.
느네 애미애비가 니 공부시킨다고 얼마나 뼈빠지게 일하는지 아나.
은혜를 갚을라면 외교관이 되가지고 엄마아빠 호강도 시켜주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
이게 다 니 잘 되라꼬 하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a) 외교관은 호화로운 직업이라 여기셨고,
b) 딸과 사위 희생이 노후에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라셨으며,
c) 본인 세대가 겪었던 일들을 손녀가 답습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나는 대학원 1년차에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지만 (왜냐하면 외교관들은 절대 호화스럽게 살지 못한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좋든싫든 당신과 묶여있던 반쪽을 잃던 날,
본인 한 몸 추스리기도 힘들텐데 그 갸냘픈 목소리로
내 어깨에 얹어주신 잔소리의 중후함은
항상 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그 말의 본질은 즉슨, 세대를 관통하는 사랑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본인의 삶을 위한 적용을 하자면 이 두 가지만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A) "다 너를 위한 말"을 들을 때는 말하는 이의 표정을 먼저 살펴보길.
그들이 너를 내려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너의 짐을 잠시나마 함께 짊어지며 말하는 본인도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지 전자라면 흘려 보내고, 후자라면 감정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이길.
B) "다 너를 위한 말"을 하고 싶을 땐, 한 달 뒤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길.
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 게 좋을지
한 번쯤은 먼저 고민해보기를.
말보다 마음이 앞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