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가끔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도 그렇다.
삼십 년 남짓 살아오며 아빠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인 것 같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서 들었고, 이제는 나 역시 그런 보편적인 삶의 진리들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며 살아간다. 사필귀정, 연분지정, 콩콩팥팥, 될놈될 안놈안... 그런데 내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조금 모순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분명 이런다고 될 일들이 아닌데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더니 이뤄진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1) 트럼프 1기 시절, 미국의 이민 정책이 바뀌면서 취업비자로 버티는 게 힘들어졌다. -> 현 직장에서는 내가 너무나도 대체 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편이 필요했다. -> 졸업한지 1년 된 모교를 찾아가서 다짜고짜 "이 학교에서 배출한 100명의 예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있다. 그러니 나에게 창업비자 지원을 해달라" 며 비즈니스 모델을 피칭했다 -> 모교는 나를 위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론칭해주었다... 응? 이게 된다고?
2) 미국인 동업자한테 뒷통수를 한 번 세게 맞은 뒤, 사기업에 회의감을 느꼈다. -> "사회 개혁(?)에 기여하려면 유엔에 들어가서 인권법에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라는 목표가 생겼다. -> 대학원을 갈 수 있는 수준의 학부 성적도, 개연성이 있는 스펙도 없어서 일단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 IR 수업을 하나를 듣기 시작했고, 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 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 그 공기관에서 회장 역임중이던 오바마 대통령 직속 전 NATO 미국대사의 추천서를 받아내서 미국 내 국제인권법 1위 대학원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넣었다.... 어? 이것도 진짜 된다고?
3) 대학원 논문도 등록하고 취업도 간신히 성공했을 무렵, 문득 거울을 봤는데 왠 노처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세계평화는 잠시 접어두고, 내 삶의 평화를 찾아 뿌리부터 내리자." 라고 마음을 먹은 후 데이팅 앱을 깔았다. -> 뉴욕이라는 결혼 불모지에서 앱가동 한 달만에 결혼상대를 발굴해냈고(?), 세 달만에 사랑 고백을 받아냈고(?), 반 년만에 그를 한국으로 불러서 부모님께 결혼허락까지 받아냈다....와.... 이게 이렇게 된다고?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은 어떤 유학원에서도 빅데이터에 추가할 수 있는 정통성이 있는 방식은 아닌듯 하다. 나의 상상력, 추진력, 순발력, 설득력, 회복탄력성 등의 강점들이 작용한게 맞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복과 운도 한 몫을 했고, 나는 이걸 모든 걸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반대로 나에게는 소위 "남들 다 하는 일들"인데 이상하리만치 힘들었던 경험도 많았다. 분명 물 흐르듯 척척 진행될 법한 일들인데 그 흐르는 강물속에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들이 도대체 몇마리가 발작을 해야 이렇게 파도가 넘실대는건지 모를 정도로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래서 내가 최대한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서 그 채널들의 무분별한 소음들을 내면에서 잠재우는 것 뿐인데, 10번 중에 1번은 나도 모르게 필터링없이 그 말이 입 밖으로 생중계가 될 때가 있다. 또한 소음들을 걸러내는데 내적으로 에너지를 계속 소진하고 있다 보니, 정작 앞에서 교류하고 있는 상대의 소통에는 집중력이 흐려져서 했던 말을 기억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디폴트값의 지능으로는 이해가 충분히 될만한 일들도 머릿속 채널이 자꾸 휙휙 돌아가니 날실과 씨실이 한올한올 꿰어져 전반적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게 어렵다. 대신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각인되었던 정보들을—특히 공감각적인 심상들과 날짜, 시간, 데이터 등 수식의 값을—분석해내는 건 잘 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줄줄 암기하는 건 못하지만, 한 번 꽂힌 챕터나 소주제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디테일을 다 기억하고 분석해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곤 하는데, 사실 이건 천재성보다는 선택하지 않은 "선택적 암기력"에 가깝다.
생각이 뇌를 거치기전에 바로바로 입밖으로 튀어나오고 간헐적으로 흡수된 정보를 드립으로 승화시킬수 있는게 사적인 자리에선 임기응변이 될 수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근데 이스라엘이 두 달 전 비슷한 맥락의 폭력을 저질렀을 땐 우리나라가 규탄했었는데 왜 미국은 우리가 규탄하면 안 되는거에요?" 외교부 신입 6개월차에게는 충분히 들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외교적 맥락과, 나의 위치와 상대의 위치 및 TPO가 숙지되어 있으면 이런 질문은 고위참사관과의 미팅에서 뱉어낼게 아니라, 후에 혼자서 심사숙고해서 리서치를 해 본 후에 조심스럽게 여쭙거나 알아서 해소해야 할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하루에도 열 번 씩 갑툭튀하는 의식의 흐름을 단속 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하고, 나름 성공률 90%를 자부하는 골(입)키퍼지만, 사회생활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입단속을 실패해도 6개월이면 120번의 파울이니, 옐로우카드, 레드카드, 나아가 또라이 프리패스까지 획득하는데 참으로도 용이한 약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고, 속이 이미 시끄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데시벨이 높은 장소를 힘들어하며, 주변인들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 내 "선택적 암기력"과 모임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질 때는 공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저렇게 말 실수를 한 번씩 하면 공간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되기도 해서, 나도 통제가 불가능한 내 뇌의 불협화음 때문에 내 자존감도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인사이드아웃 2를 관람하면서 나는 남사스러울만치 끅끅대며 울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는 기쁨, 버럭, 슬픔, 까칠, 소심, 불안, 당황, 부럽, 따분—이 아홉가지 주요감정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느낀다는 것, 둘째는 라일리가 공황발작을 겪은게 그녀의 의지부족이나 성격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머릿속에서 통제불능이 된 '불안이'의 잠식 때문이었다는 것, 이 두 가지에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의 연재할 다른 챕터들에서 더 깊게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지만, 나의 깊은 감정의 폭으로 인해 내 심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것보다 더 괴로운 건, 내 과한 감정표현이 나의 의도와 다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할퀴어 버릴 때이다.
내 감정선이 무슨 뮤지컬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듣기도 했고 실제로 연기학원 원장님이 내 감정 몰입력을 보고 나보고 대회를 나가보라고도 했는데 (오열만 잘하고 배우의 다른 기본소양을 위해 노력할 간절함이 없어 6개월만에 깔끔히 포기^^) 이런 나의 단면만 보고 ‘X나 또라이네‘ 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맙다. 1) 뇌의 기능적 차이 이유로 인해 인간관계 유지에 이미 배터리 소모가 많은 편인데, 그들이 먼저 편견을 가지면 나도 굳이 배려나 해명할 이유가 사라지니 절전 쌉가능! 문제는, 나의 약점을 알고도 여전히 나를 지지해주는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내 불안, 우울, 화가 과잉반응을 일으켜 또다시 생채기를 낼 때다. 그리고 기쁨, 열정, 연민, 공감, 애정에 대한 과몰입도 잘해서, 회사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손익계산 없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퍼주고 '호구' 소리를 듣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면들을 종합적으로 객관화해보면, 온탕냉탕 오가며 병주고 약주고 1인 5역 북장구 솔로이스트보다는, 노잼일지언정 예측 가능하고 묵묵히 자기 역할 하는 사람이 훨씬 수용하기 쉬운 존재다. 결국 나는 멀리서 보면 재밌고 필요한 거 뽑아먹기엔 유용한 사람이지만, 가까이 두고 사랑하기엔 결코 쉬운 사람은 아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한 번 만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이빨을 닦고, 커피를 만들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시간 맞춰 출근을 하는게 성인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데 나에겐 조금 더 힘들다.
어떤 직장인이 좋아서 그걸 하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에 내가 일어나지 않아도 나 때문에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고 나에게 아무런 손해가 되는게 없다면 나는 침대와 물아일체가 될 자신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물아일체란 주말동안 집에서 배로 기어다니며 행복해하는 내향인의 빈둥거림이 아니라, 일주일내내 어질러진 집을 방치하고 누워서 폰만 보고있고 자책하면서 일어날 기력은 없는 우울증환자 느낌에 더 가깝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한걸까‘에 대한 자기혐오랑은 아직까지도 계속 줄다리기를 하는 중인데 이런 “게으름”이 나의 도파민 운반체 연결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나서부터는 뽀모도로, 리마인더, Body-doubling, 스탑워치, 타임트리 등 도파민을 활성화시키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기계적으로라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나를 훈련시키는 중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사실 여기에 있다. 나만을 위한 사회적 보상과 경제적 안정이라는 긍정적 강화는 더 이상 나에게 아드레날린을 심어줄 수 없었는데, 책임감과 의무감이라는 부정적 강화(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부담감은 상이 아닌 벌에 더 가깝지만 어쨌든 긍정적 보상과 대비를 위한 시적허용 감안 부탁)가 있을 때 내가 더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이다.
나는 단기적 목표가 있을 땐 경주마처럼 달릴 수 있지만,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장기전에서는 자주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대학교 때는 전공을 5번이나 바꿨고, 국토대장정, 유럽배낭여행, 보디빌딩, 마라톤, 한복모델대회 등 한 번 끝나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깔끔하게 다음 버킷리스트를 찾곤 했다. 허나 내 남편과 (미래) 가족을 위해서라면 삶을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 머릿속 도파민 불균형은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도 좀비같은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움직이게 된다.
그만큼 속도도 좀비처럼 느리기 때문에, 위기감이 없는 프로젝트를 끝내려면, 미리 계획을 잘 세워야 하고, 천근만근인 뇌를 깨워서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야근도 자주한다. 어쩜 이렇게 부지런한데 이렇게 느리고, 계획은 파워 J인데 실행은 파워 P처럼 막 쳐내고 있는지, 늘 용꼬리 잡듯 헐레벌떡 쫓겨서 살고 있는 내 삶은 진짜 레전드다.
나의 이런 스펙타클한 성향 덕분에 10대 땐 패기 넘치는 반항아이자 4차원 유학생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발을 내디뎌 20대엔 불의를 못 참는 액티비스트이자 신기한 교회누나로 우짜든동 살아왔다. 그리고 아비투스가 꽤 확립된 지금의 30대가 되어, 밥을 사고 조언을 건네는 입장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여전히 나와 타인에 대해 배우고, 조율하고, 타협하며 성장해 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이런 내 치부를 굳이 글쓰기 소재로 삼아봤자 나한테 득이될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민도 오래 했고, 연재를 결심한 지금에도 내가 본캐로 있는 회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없다. 아무리 '고기능'이라 한들, ADHD인들은 조직에서 자산보다는 짐이라는 편견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험한(?) 선택을 해보기로 결단한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내 브런치 유일한 지인 구독자이자, 내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를 다 지켜봐준 소중한 친구, 메가리자몽이 내 글을 기대하고 있어서, 나만큼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한 켠의 위로 아니면 작은 영감이 되었으면 해서, 마지막으로, ADHD 금쪽이를 키우느라 마음 졸이고 계신 부모님들이 계신다면 나의 깨지고 부서진 경험들이 그 분들의 자녀양육에 작은 단서나 도움이 되기를 바래서이다.
아직은 나도 시행착오 한가운데 있다. 쓰다 보면 그저 내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고, 때로는 TMI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은)해본다. 그리고 나를 위한 보상보다 남과의 약속에 더 중압감을 느끼는 나에게, 이 책으로 나는 **수익금은 전액 ADHD 어린이·청소년 발달 재활 치료재단에 기부될 것**이라는 선언도 해본다. 마지막으로, 혹여 연재가 늦어지더라도 인지와 실행을 중재하느라 늘 똥줄 타는 나의 험난하고 기특한 뇌를조금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사 기대치 하향조정 또한 해본다.
이까지 쓰는데 6시간이 걸렸는데 그 동안 밥 생각도 생리적욕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ADHD에 대한 글쓰기를 ADHD 하이퍼포커스의 정석으로 해내는 나를 보니 그저 헛웃음밖에 안나온다. 방광터지기 전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뭐라도 좀 먹으러 가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