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신설한 국내 스타트업 법인은 10만 8874개로 역대 최고치였습니다. 벤처 투자 금액도 정점을 찍었죠. 수치로만 보면 엄청난 확장세입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지속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난 3월 10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고성장 기업 비율은 6.5%에 불과합니다(고성장기업은 단시간에 매출, 직원 수 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기업을 뜻합니다).
영국(12.9%), 이스라엘(11.4%)보다 현저히 떨어지는데요. 특히,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5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은 27% 수준입니다. 프랑스(44.3%), 영국(41.1%)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죠.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스타트업도 상당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좀비 기업’, ‘좀비 스타트업’이라고 말하죠.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탈(VC) 투자 시장의 정부 자금 의존도는 62%에 달합니다.
미국(17%), 영국(24%), 프랑스(45%), 일본(36%)과 비교하면 아찔하죠. ‘정부 자금이 없다면, 창업하는 스타트업도 없다’로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에 저희 스케일업팀은 지난 2018년 하반기부터 스타트업이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성장(Scale-Up)’을 돕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지난 8월부터 서울먹거리창업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 등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새롭게 대구대학교도 합류해 이제 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한 도전을 같이합니다.
이번에 대구대학교와 함께 소개할 스타트업은, '무인보관함'을 거점 삼아 생활물류 서비스 최전선에서 발로 뛰고 있는 스타트업, ‘스토리박스(대표: 김형욱)’입니다.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 또는 결합을 뜻한다. 무슨 뜻일까. 쉽게 생각하자. 인터넷/모바일로 주문한 상품이 내일 아침 우리 집 앞에 놓여있다. 아마 현대인이 가장 반기는 소식 아닐까. 집 앞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 말이다.
택배상자는,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이 오프라인으로 나타나는 가장 좋은 사례다. 이미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O2O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자. 그럼 누가 인터넷 속 상품을 집 앞에 옮겨 놓았을까. 주인공은,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들의 택배 기사, 배달원이다. 오토바이(이륜차), 소형 자동차, 1톤 화물차 등을 이용해 전국을 촘촘하게 누빈다. 요즘에는 간밤에 주문한 신선식품을 다음날 새벽에도 가져다 놓는다.
이른바, ‘생활물류’의 시대다. 생활물류는 생활 화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거나 소비자로부터 회수해 폐기할 때까지 이루어지는 운송∙보관 등이다. 그리고 이에 부가되어 가치를 창출하는 분류∙포장∙정보통신 등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생활물류 서비스는 택배, 배달대행, 퀵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IT 기술 발달과 함께 소비 패턴과 유통 채널은 매우 빠른 속도로 다양하게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산업 경계를 지우는 -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를 지우는 - 신산업도 다수 등장했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최근 정부 역시 기존 수출입 제조업 지원 위주 산업정책 기조를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산업 육성정책으로 전환하며, 물류 산업에 새로운 발전동기를 부여했다. 특히, 맞춤형 생활물류(택배, O2O 등)를 중심으로 신물류 서비스 수요 급증은 새로운 부가가치와 고용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국내 택배 시장은 지난 2008년 2.4조 원 규모에서 전자상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지난해 5.2조 원으로 커졌다. 서류 및 식음료 등 오토바이 이륜 배송 물류 시장은 10조 원 규모로 늘었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등은 새로운 물류 서비스로 나타났다. 참고로 2015년 1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8년 12월 기준 40배 성장한 4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산한다.
생활물류와 기존 물류의 차이점은 '개인 소비의 온라인화'다.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소매 거래액 규모는 300조 원에 달한다. 이중 온라인 소매 거래액 규모는 100조 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다가오는 2023년 50% 이상인 189조 원이 온라인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상한다. 빠르게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소비 현상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스토리박스가 도전하고 있는 영역이다. 스토리박스는 생활물류, 생활배송 서비스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김형욱 대표는 “스토리박스는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해드리기 위해 뜁니다. 고객의 시간을 대신 뛰는 서비스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탁 배송과 의류 수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이를 스스로 ‘생활편의 서비스’라고 말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세탁과 의류 수선 배송 서비스. 김형욱 대표는 이를 스토리박스의 생활편의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스토리박스만의 서비스일까? 세탁 배송 서비스는 이미 시중에 너무 많다. 많은 스타트업이 각각의 장점을 내세우며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스토리박스만의 차별점, 장점이 필요하다.
이에 김 대표는 “저희는 무인보관함을 바탕으로 고객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인보관함이라는 거점을 바탕으로 세탁, 의류 수선 등 다양한 생활편의 서비스로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전국의 1인 가구, 맞벌이 가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인 가구, 맞벌이 가구는 많이 바쁘죠. 회사와 집안일을 매일,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가구를 생각해보시면 됩니다”라며, “무인보관함을 하나의 거점으로 활용해 세탁, 의류 수선 등 다양한 생활편의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2018년 8월, 스토리박스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김형욱 대표는 '빨래가 귀찮다. 귀찮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 세밀한 계획은 없었다. 당시에 '세탁특공대'. '리화이트' 등 다양한 세택 대행과 배송 서비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민만 늘어나던 때였다.
그러다 무인보관함을 개발, 판매하는 위키박스의 김규성 대표를 만났다. 무인보관함. 정신이 번쩍했다. 마침 위키박스 역시 무인보관함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8년 11월 27일, 무인보관함 위키박스를 활용한 비대면 세탁 서비스를 론칭했다. 위키박스와 스토리박스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당시 서울 영등포구, 구로구 주변 2400세대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설치한 무인보관함을 거점으로 세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추운 한겨울 아파트 앞에서 전단지와 할인 쿠폰을 만들어 홍보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한 분 한 분에게 손 편지를 보내며 열심히 뛰었다.
스토리박스는 그렇게 약 2년간 '경험'을 쌓았다. 세탁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검수 절차를 추가했고, 현재 세탁 과정을 확인하고자 하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앱을 업데이트했다.
무리한 확장은 지양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고객 목소리에 집중했다. 김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탁 서비스의 기본은 깨끗하게 세탁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걸 먼저 생각했습니다”라며, “기본을 지키면서 고객 요구사항을 하나씩 반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게 스토리박스가 추구하는 생활편의 서비스입니다”라고 했다.
기본을 지키자는 스토리박스의 목표는, 안정적인 매출 성장으로 나타났다. 2018년 12월, 스토리박스 매출액은 78만 3500원, 월평균 주문 100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5월 매출액은 2100만 원을 넘어섰고, 월평균 주문은 2700건으로 늘었다.
김 대표는 “매출 몇 배 증가… 이런 수치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서비스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스토리박스는 지난 2019년 11월,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세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존 세탁소를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세탁 서비스를 위한 선택이다. 세탁 서비스는 깨끗한 게 기본이다. 품질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시도했다.
김 대표는 "직접 세탁소 운영을 시작하면서 매출과 함께 영업이익도 안정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세탁물을 수거한 뒤 세탁물 상태를 검수하고, 세탁을 완료한 뒤 세탁물 결과를 검수하는 사전/사후 검수 시스템과 공간도 갖췄구요. 서비스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선택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스토리박스가 제공하는 세탁 서비스는 크게 배송팀과 검수/세탁팀으로 나뉜다. 배송팀의 출근 시간은 아침 8시 30분. 전날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무인보관함을 돌면서 세탁물을 수거한다(일부 방문 수거도 진행 중이다). 이후 12시까지 수거한 세탁물을 검수 공간으로 옮긴다.
점심시간 후, 검수를 끝낸 세탁물은 세탁소로 옮기고, 전날 세탁하고 다림질한 결과물을 다시 검수 공간으로 옮긴다. 고객에게 최종 전달하기 전 마지막 단계다.
현장을 누비며 배운 물류 처리 과정이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보내며, 계절별 세탁 서비스 데이터도 쌓았다. 김 대표는 “경험, 데이터를 통해서 자신감을 쌓았습니다. 무인보관함 거점과 세탁소, 의류 수선, 검수 공간을 오가는 최적의 동선도 찾았어요”라며, “바쁩니다.
움직일 수 있는 몸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작년 겨울 주문 자체가 없어서 추웠던 때와 비교하면 말이죠”라며 웃었다.
자칫 스토리박스를 세탁과 의류 수선 배송 전문 서비스 스타트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세탁 배송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목표는 무인보관함을 거점으로 연결하는 ‘다양한 생활편의 서비스’ 확장이다. 이미 몇 가지 신사업 모델도 검토 중이다.
무인보관함을 이용한 ‘세차 서비스’, 기존 셀프빨래방에 무인보관함을 설치해 전문 세탁과 의류 수선 서비스를 연계하는 ‘프랜차이즈 모델’ 등을 계획 중이다.
파트너사와의 협력 제휴도 활발하다. 아파트, 호텔, 면세점 등 건물 관리 전문기업 E사, 공유오피스 등 비즈니스 공간 서비스 전문 기업 L사, 스마트홈 서비스 전문기업 C사 등과 비대면 생활편의 서비스 시장 확대를 위해 논의 중이다. 또한, 전국에 설치를 확대하고 있는 무인보관함은 지속적인 거점 확보의 최전선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김형욱 대표는 아직 고민이 많다. 그는 “지난 2년간 영등포구와 구로구를 시작으로 세탁, 의류 수선 배송 서비스 강화에 힘썼습니다. 다행히 찾아주시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해결할 문제는 너무 많습니다. 서비스 지역을 늘려야 하고, 다음 서비스도 준비해야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습니다”라며 고민을 건넸다.
스토리박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날카로운 조언을 부탁드린다.
필자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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