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준영 키노라이츠 대표
한국인의 직업은 두 개다.
첫 번째는 자기 본업이고, 두 번째는 영화평론가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3,000편이 넘는 영화를 감상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화 추천 자판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는 IMDB나 로튼 토마토, 메타 크리틱 같이 믿을만한 영화 가이드 서비스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없을까? 우리나라는 왜 포털의 평점 조작이나 알바 논란을 막지 못하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만 모아서 평점 통계를 내면 미국의 로튼 토마토 못지않은 전문 평점 서비스가 나올 것 같았다. 그게 키노라이츠를 창업한 이유다.
-키노라이츠 양준영 대표
'퇴근 후 영화 한 편' 마저 간단한 일이 아닌 시대가 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OTT가 너무 많아 하나의 플랫폼을 고르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인기 콘텐츠가 각 OTT로 흩어지면서, 한 플랫폼만 구독해서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모두 볼 수 없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 플레이에 곧 출시된 디즈니플러스까지, OTT 플랫폼의 다양화로 소비자들은 구독 플랫폼과 콘텐츠를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피로감을 느낀다.
키노라이츠는 보고 싶은 영화, 드라마를 어떤에서 볼 수 있는지 검색하고, 콘텐츠에 대한 리뷰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앱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 않아도 된다. 또, '1월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왓챠 신작 업데이트' 등 정보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뭘 봐야 할지 모를 때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키노라이츠의 검증을 거친 인증 회원만 올릴 수 있는 평점과 리뷰 시스템은 시간 낭비 없이 나에게 딱 맞는 콘텐츠를 고르는 기준을 제공한다.
양준영 대표가 김치오 COO와 함께 만든 이 서비스는 지난해 3월 정식 론칭했다. 대대적 광고 없이도 영화 '덕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8개월 만에 다운로드 10만 회를 돌파했다.
OTT 시장 커질수록 검색 수요도 늘어
국내에 OTT가 거의 없었던 2018년, OTT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넷플릭스조차 국내 사용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때문에 사업 초기 키노라이츠는 투자 회사에서 '누가 돈을 주고 영화/드라마를 보냐'라고 조소 어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TV를 대체할 만큼 OTT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시장은 뒤집어졌다. 키노라이츠는 넷플릭스부터 왓챠플레이, 웨이브, 티빙, 네이버 시리즈, 구글플레이 등 총 10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콘텐츠 정보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다행히 (스트리밍 업체로부터) 콘텐츠 정보 제공을 거부당했던 경험은 없습니다. 창업하기 전엔 대기업 하면 뭔가 딱딱하고, 프로세스에 종속되어 있고, 유연하지 못하고 고지식한 사고를 하는 집단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요. 막상 만나본 OTT 관계자분들은 놀라울 만큼 유연하고 센스 있으시며 젠틀하셨어요.
무작정 연락을 드렸음에도 가장 나빴던 반응이 무응답밖에 없었어요. 어찌 보면 저희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요. 제가 거창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업계에서 오래 일을 하며 인맥을 쌓아온 것도 아니기에 지금도 필요하다면 콜드 메일이나 콜드 콜을 보내면서 일단 부딪혀보고 있어요.
수차례 부딪히면 한 번은 열리더라고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무지 힘 빠지는 과정들을 반복해야 하지만, 돌아보면 재밌습니다."
이후 시장이 변화하고,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극장보다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이 키노라이츠의 OTT 통합 검색 기능을 많이 찾았다. 유저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능을 더 편하게 만드는 쪽으로 개발을 강화하면서 최근에는 OTT 통합 검색 기능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다.
초기에는 SNS 광고도 해보고 언론에 인터뷰도 하며 서비스를 알렸지만, 마케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예산이었다. 별다른 노하우 없이 온전히 인증 회원의 입소문 만으로 가입자 수를 늘렸다. 이후 특정 커뮤니티에서 앱 유저가 키노라이츠를 추천하는 게시글을 써준 덕에 유입 그래프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별점 테러 없는 리뷰 앱
"공신력 있는 평점을 통해 어떤 영화가 재밌는지를 알려줬으면, 어디서 볼 수 있는지도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내부적으로는 해당 기능들을 각각의 서비스로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콘텐츠를 고를 때 당면하는 두 개의 문제, 영어로 하면 What to watch(무엇을 볼 것인가), Where to watch(어디서 볼 것인가)는 이제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
키노라이츠는 OTT 통합 검색 서비스 외에도 공신력 있는 평점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준영 대표는 별점 테러와 알바 등 영화 평가의 조작이나 왜곡이 없는 신뢰도 높은 평점 시스템을 꿈꿨다. 검증된 회원의 평가와 리뷰를 평점 지수로 집계해 신호등이나 별점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신호등 평가와 별점 평가
작품성 높은 건 알겠는데.. 내 취향은 아니라면, 이 영화는 몇 점?
영화제에서 상 받은 좋은 영화지만 취향에 안 맞거나, 반대로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웃음 버튼인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에 대해 점수를 매겨야 하면 고민이 된다. 키노라이츠에선 두 가지를 따로 평가할 수 있다. 신호등으로는 작품에 대한 취향을 반영해 점수를 매기고, '별점'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별개로 평가하는 식이다. 작품성이나 연출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취향과는 안 맞는다고 여길 경우, 별점은 높게 주는 대신 신호등은 빨간색을 줌으로써 좀 더 정교한 평가가 가능하다.
이용자들이 초록색(좋아요)으로 평가한 것이 전체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백분율(%)로 산출해 점수가 집계된다. 66% 이상이면 초록색, 33~66% 미만은 노란색, 33% 미만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신호등 평가는 영화 검색 시 포스터 하단에 표시된다.
키노라이츠라는 서비스 이름은 이 신호등에서 왔다. 영화, 영화관을 뜻하는 독일어 Kino와 신호등(Traffic Lights)의 합성어인데, 신호등의 불빛을 등급으로 삼아 영화를 평가함으로 물론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콘텐츠를 가이드 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굳이 두 가지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양 대표는 "이러한 이원화를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고, 역으로 번거로워하는 분도 계시다"라며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분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신호등과 별점이 주는 의미의 차이는 대부분 구분하면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수치화된 평가 외에 텍스트 리뷰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단계라 서비스 대비 유저 간 상호작용(댓글)이 활발하지는 않다. 키노라이츠는 추후 이용자 간에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 계획이다.
인증 회원의 리뷰만 평점에 반영
키노라이츠에선 누구나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모두의 평가가 점수에 반영되진 않는다. 이용자들이 볼 수 있는 신호등 지수와 별점 평가는 '인증 회원'의 점수만 반영해 산출한다. 별점 테러와 알바 등 평가의 조작이나 왜곡을 막기 위해 키노라이츠 내부 기준을 충족하는 인증 회원의 점수 만이 실제 평점에 반영된다.
사업 초기에는 영화 블로거들을 모아 인증 회원을 꾸렸다. 이후 네이버와 티스토리 블로거, 브런치 작가 중 신뢰성이 있는 리뷰를 작성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콜드 메일을 보냈다. 대부분 긍정적인 답을 보냈다. 양 대표는 "우리의 취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확신을 갖게 됐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난 이후에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아도 먼저 서비스 내 인증 회원 신청을 통해 유입하는 수가 늘어, 지금은 심사하는 데만 시간을 쏟고 있다.
현재 키노라이츠에는 약 1,000여 명이 인증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소수 덕후들을 선발하는 데 집중한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보통 초기에는 허들을 두지 않고 모든 회원들의 평가를 받으며 회원 수를 늘리기에 집중한다. 이후 유저가 늘면, 그때 고객 세그먼트를 두며 성장을 유지·발전시킨다. 때문에 영화 덕후라는 일부 마니아층만 리뷰 작성을 하도록 하면 회원 수는 지지부진하게 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초기에 자신의 평가가 반영되지 않는 회원들의 항의도 받을 수 있다. 여러모로 서비스 확장 측면에서 불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와 같은 덕후들을 모은 뒤, '선발대'가 되어 콘텐츠를 가이드 해주자는 소신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연결하자'라는 저희 회사의 미션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해요. 또, 꼭 인증회원이 되고 싶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이 본 콘텐츠를 한 서비스에 모아서 기록하려는 의도로 평가를 남기는 분들도 있어요. 인증회원이 아닌 회원분들의 평가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구체적 수익모델은 없어,
'영화 덕후들 위한 진정성 있는 플랫폼'
"매우 부끄럽지만, 처음 법인을 설립할 당시 수익 모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제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세상에 내놓고 싶은 서비스가 있고, 그 서비스가 너무 유용할 것 같은데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아서 직접 만들게 됐죠.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 모델의 차이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서비스 만들어 사람 많이 모이면 광고든 뭐든 먹고 살 수는 있겠지' 하는 나이브 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앱 내엔 광고가 없다. 양준영 대표는 광고가 메인 수익모델 중 하나지만, 수익성 때문에 고객 경험을 크게 해친다면 지양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키노라이츠를 알아봐 주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 더더욱 그렇다.
"저와 팀원들이 먹고살기 위해 치열하게 수익 모델을 고민해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보다 앞선 과제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콘텐츠 덕후로서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다양한 OTT에서, 그리고 극장에서 폭넓게 즐기며 보석 같은 작품들을 발굴해 더 많은 유저에게 연결해 주는 그런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커머스 업체 쿠팡까지 OTT로 뛰어들고, 내년 하반기에는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론칭을 앞두고 있다. 양준영 대표는 "OTT 경쟁이 더 심화되고,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각각의 플랫폼들이 경쟁 우위의 요소로 독점작들을 유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며 " 각 서비스별 독점작, 신작과 스트리밍 예정작, 라이선스 만료작 등을 비교해서 알려주고, 동시에 검증된 평점을 통해 콘텐츠를 추천해 줌으로써 유저에게 지금 나한테 딱 맞는 OTT가 무엇인지 찾게 해주는 것이 저희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발전 방향"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제작 정예지 박은애 ㅣ 디자인 홍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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