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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04. 2024

부부동반 모임에 나만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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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지기 친구들 커플모임에 (반강제로) 참석했다. J와 K는 나의 노처녀 절친 H와 마찬가지로 고등학생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다. 직장일로 H는 모임에 나올 수 없어 나만 6년 차 J부부와 곧 결혼할 K커플틈에 끼여 3시간 동안 결혼을 해야 하느니 자녀를 낳아야 하느니 하는 우리 친척들도 하지 않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고된 삶의 루틴에 대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어야 했다. 결혼이 정말 좋아서 추천하는 건가. 아니면 혼자 당한 게 억울해서 물귀신작전으로 나를 끌어드릴 목적인 건가.


자꾸 나이만 많아지니 나보다는 내 친구들이 나의 혼사에 더 안달이 났다. 나 정말 괜찮은데. 다들 왜 그리 걱정을 하는 건지. 평상시는 나의 대소사에 관심 하나 없더니 이제 와서 안절부절못하여 남편의 친구의 지인의 사촌의 옆집사람의 단골집 사장까지 언급하며 주변에 민증 1로 시작하는, 숨만 붙어있는 사람이라면 이 놈 저놈을 다 소개해줄 기세였다.


비혼을 선호하지만 나의 운명의 상대가 있다면 결혼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가도 뉴스에서 연신 보도되는 데이트 폭력이니 불륜이니 하는 자극적인 사건 사고들로 인해 결혼 안 하고 내돈내삶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한 살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는 장수의 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제발 사건반장이나 뉴스파이터, 결혼지옥, 금쪽같은 내 새끼 등등 결혼 및 출산을 혐오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싹 다 끊어라고 조언해 줬다.




식사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기분이 업되서 지금처럼 자주 모여서 좋은 자리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예비신랑인 K남편이 우리에게 잘 보이고자 말 나온 김에 지인과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며 밥상머리 앞에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 목록을 쓰윽 훑어보더니 비트코인 채굴하듯 결혼 안 한 총각들을 엄선해 줬다. 그러다가 한 명이 눈에 꽂혔는지 내게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남자를 팔아댔다.


일단 돈이 많단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해서 지금까지 10년이나 쉬지 않고 돈만 벌었고 아파트가 벌써 2채가 있다고 했다. 성격도 너무 재밌고 사람이 센스와 위트가 있어서 누구든  함께하면 즐겁다고 했다. 다만.... 못생겼다고 했다. 별명이 두꺼비라고 했다. 아... 별명을 듣고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와버렸는데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뒤늦게 본인 친구들끼리는 친근하게 파충류로 별명을 짓는다면서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변명을 늘어놓았다. 두꺼비뿐만 아니라 여치, 나방, 도룡용도 있다고 했다. 내 친구의 예비신랑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걸까.


음.


나는 내 주제 모르고 상대방이 잘생기면 좋겠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기에 나에게 재력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외모는 영원히 존재한다. 잘생긴 게 좋다. 이렇게 나의 이상형을 말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K와 J가 혀를 끌끌 차더니 외모는 순간이고 재력은 영원하다고,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뭘 모른다며, 남자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무조건 나의 의사 따위는 필요 없고 만나보라 했다. 자기들 소원이 우리 셋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라 내게 외모만 포기하면 그 꿈이 실현되는 건 한순간이라 했다. 그리 말해놓고는 정작 본인들은 괜찮은 남편을 만났다. 씨이이발. 왜 나만 외모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는 얼마나 못생겼는지 자기들이 먼저 본 다음 소개팅을 진행시킬 것인지 아닌지 판단한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남편의 핸드폰을 먼저 건네받은 K는,

난 아무 말 안할라요

묵비권 행사


K가 이렇다 저렇다 아무 반응 없이 애꿎은 안경만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돌직구파 J가 핸드폰을 어서 달라며 오른손을 방정스럽게 떨어댔다. 우리들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본인이 선구안을 가졌으니 친히 살펴보겠노라며 핸드폰 화면을 마주한 순간,

아이고야.

오호통재라.


세상에 돈이 다가 아닌 게 있긴 있구나.

10년 동안 돈만 악착같이 번 이유가 여기 있었네. 두꺼비씨 아엠 쏘리.


나쁘진 않지만 내가 안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상당히 인성은 좋아 보인다며 마지못해 억지로 단전에서 끌어올린 거짓말을 하는듯했다. 행동은 대담할 것 같지만 속은 따뜻해 보인다고, 사진 한 장으로 두꺼비씨의 사주팔자와 조상운, 자녀운까지 읆을 기세였다. 역시 선구안을 가진 사람은 다른가보다. 두꺼비 얼굴에서 인성을 읽다니. 사실 소개팅 할 마음은 없지만 외모는 궁금해서 일단 나도 보여달라고 했더니 한사코 폰을 주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 외모보다는 성격이 잘 맞는 게 중요하다고 그냥 일단 만나보라 했다. 썩 내키지 않지만 참고는 해보겠다 하고 그 순간을 모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J와 K 둘다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다. 그래서 더 찜찜하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가볍게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아까 두꺼비사건이 마음에 걸렸던지 K 예비신랑이 뜬금없이 자기 아는 형님을 잊고 있었다며, 사진은 없지만 외모도 괜찮고 사업도 잘되고 성격도 좋은 분이 한 명 더 있다 했다. 나는 소개를 받을 때 항상 나오는 패턴을 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앞 2-3 문장은 장점과 듣기 좋은 말을 장엄하게 늘어놓고 마지막에 큰 단점을 하나 말해준다 마치 별거 아닌 것처럼.


이 사람은 돈도 많고 아파트도 2채고, 성격도 좋고 재밌는 사람이야 다만 두꺼비처럼 생겼어.


.... 와 같은 5G 수준의 급속도 마무리. 화룡점정이 아닌 다 된밥에 두꺼비 뿌리기 수준.


문득 사람들이 나를 설명할 때는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해졌다.


김분주는 키 크고 저금 잘하고 요리 잘하고 성격도 재밌어 다만 머리 정수리 냄새가 나.

김분주는 영어 잘하고 베이킹도 잘하고 성격도 활발하고 착해 다만 이빨이 누래.

김분주는 똑똑하고 센스가 있고 말도 잘하고 유쾌해 하지만 발톱이 앵무새 부리처럼 길어.


... 아 물론 진실은 아니고 예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아는 형님의 단점은 뭐냐고 물었더니 K 예비신랑이 슬쩍 눈치를 보더니 어렵게 입을 떼었다. 조건은 다 너어어어어어무 좋은데 단 한 가지를 내가 맞춰주기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상당히 쪼를 빼던 상황에 듣다가 참다못한 J가 중간에 치고 나왔다.


그래서 그 한 가지가 뭔데. 같이 살다 보면 서로 맞춰가는 게 결혼이야.


듣다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남은 한평생을 같이 지내는데 못 맞출 건 없다. 미워도, 좋아도 평생 내 편이 될 사람이 동반자 이거늘, 특히나 조건도 좋다고 하는데 뭘 못 맞춰주리오. 주저주저하던 K남편에게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 공세를 했다.


혹시 그분이 내 옷을 몰래 훔쳐 입고 흥분할 독특한 취향을 가진 분인가요?

... 아니요


혹시 그분이 정치적 색깔이 너무 짙어서 우리 부모님과 겸상을 못하나요?

... 아니요


혹시 그분의 부와 명예가 다른 사람들의 등을 야무지게 처먹고 이룬 업적인가요?

... 아니요


혹시 그분이 인터넷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밑도 끝도 없는 욕설을 하는 분인가요?

... 아니요


혹시 설마..

그분이 부모님이 해주신 밥이 아닌 나라에서 제공해 주는 콩밥을 드시고 이름대신 숫자로 불리던 시절이 있으신 분인가요?

....


저년 왜 저래.

여보, 친구는 잘 가려가면서 사겨.

백세인생에서 고작 20년 지기 친구 따위는 버려도 돼. 걍 새 친구를 사겨.



변태성향도 아니고 정치에 미친 자도 아니고 사기 전과자도 아니고 악질 악플러도 아니니... 그럼 합격

그분은 나의 남편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딱히 큰 단점이 없는데 말을 못 한 이유는 뭘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J가 그냥 속시원히 알려달라고 말하니 그제야 K남편은 간신히 입을 뗐다.


... 교회를 다녀.





참나. 난 또 뭐라고.

너무 별거 아닌 이유여서 오히려 기운이 빠졌다. 나는 무교지만 상대방의 종교활동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할 입장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걸 믿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게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귀신이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이면 난 그다지 참견하지 않는다. 친구들도 별거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교회 다니는 게 어떠냐며.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조건은 여자도 반드시 같이 교회를 다녔으면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이 좋으면 나는 교회에 같이 가줄 마음은 있다. 일요일 아침 예배를 나가는 주변 지인들도 많기 때문에 새로운 한 주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겸 교회에 가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 짧은 찰나에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거 오케이.

이 만남 진행시켜.


하지만 곧 K신랑은 뒤에 다른 말을 덧붙였다.


.. 일요일 오전에 한번 잠깐 가는 거 아닌 것 같던데. 잘 모르지만 수요예배 금요일 밤, 그리고 행사 때마다.


갑자기 수능시험고사장만큼이나 조용해진 우리 테이블. 우리들 중 아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 없기에 이 상황에서 어느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것만으로 믿음을 굳건할 수 있지 않냐며 단순히 생각했다. 우리 주변 그 누구도 일주일에 여러 차례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 의아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종교의 벽 앞에서 또다시 연쇄질문마가 되었다.


혹시 그 남자분이 다니시는 교회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났나요?

.. 아니요


혹시 그 남자분 직업이 목사님이신가요?

... 아니요


혹시 그 남자분이 교회 지배인이신가요?

.. 아니요


혹시 그 남자분의 실거주지가 교회 앞으로 되어있나요?

.. 그만해라


그냥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신가 보다. 이번 만남도 실패.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책 갖다 주러 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내가, 일주일에 세 번 혹은 네 번이나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그럴 자신도 없다. 이 만남은 처음부터 불가했다. 나는 무교이기에 뭔가에 빠져서 마음에 평온을 얻는다는 게 부럽고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긴 하나 처음부터 무교이기에 그런 마음이 갑자기 생길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두꺼비와 기독교인을 만나기 에 커트해 버리고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이 부부동반 모임에 혼자 쓸쓸히 참석하여 네 컷 사진을 찍을 때 38선 마냥 가운데 우뚝 혼자 서있을 생각 하니 씁쓸하긴 했다. 친구들이 그냥 이렇게 혼자 늙어가지 말고 '나는 솔로' 프로그램에 신청해 줄 테니 나가서 공개적으로 구혼을 해보라 했다. 자기들 부부동반 모임 하나 하자고 나를 전국구 공개 개망신을 시킬 작정인가 보다. '이게 내 운명인가 보지 뭐'라고 단념을 하려던 찰나에, 이 모든 걸 잠자코 팔짱을 끼고 관람만 하고 있던 J남편이 핸드폰을 쓰윽 꺼내더니 갤럭시 S23 울트라 핸드폰의 커다란 화면 한가득 잘생긴 남자 사진을 보여주더니 '얘는 어때? 연결시켜 줄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와 소개팅을 했고 그날 이후로 나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다음 이야기로,








끗.






부부동반 모임 후 쓸쓸한 마음을 맥주대신 맥주사탕으로.

이거 먹고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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