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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r 06. 2024

이런 귀한 미용실에 누추한 손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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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개발이 덜 된 옛스러운 동네에 살고 있다. 주민들 연령대도 높고 건물들도 오래된 곳이다. 대부분 단골 중심으로 운영되는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고, 그나마 대기업이라고는 파리바게트 하나뿐이다. 코로나 이후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분명히 어딘가에 사람들이 있을 텐데, 도로에는 차만 쌩쌩 오갈 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다이소 구경을 유일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다이소 중독자인 내가 다니는 길목에 오오오래된 미용실이 하나 있다. 도대체 어떤곳 이길래 매일 미용실 안은 아주머니들로 바글바글 하다.


 사실 간판을 보지 않으면 미용실인지 알수가 없다. 미용실인지 식물원인지 모를 정도로 가게앞은 온갖 식물이 가득하다. 그 뒤로 보일 듯 안보일 듯 작은 글자스티커로 염색과 영양 그리고 파마가 만원이라 적혀있다. 무조건 만원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염색과 파마가 만원이라니.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 건물주신가. 너무 저렴한 가격에 김종서로 들어갔다가 홍석천으로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의구심보다 궁금증이 더 컸다.


 지나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만원'이라는 금액에 혹할때가 많았다. 만원이라는 달달한 금액에 솔깃한 나는 언젠가는 굳게 닫친 저 문을 활짝 열고, 아주머니들 세상에 뛰어들어 한바탕 놀아보고 싶었다. 미용사 이모와 손님들 2-3명 정도만 있다면 1대 4로서 기싸움을 어찌어찌해서 비벼볼 만 한데, 요즘은 미용실에 손님이 더 많아진 걸로 보아 최소 1대 6은 각오하고 입장해야 한다. 유리창 너머 그들만의 리그가 궁금했지만, 선을 넘어가기에는 두렵고 부끄러웠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가 웬일로 하루는 평소보다 손님이 적어 보였다. 귀신에 홀린 듯 계획에도 없었지만, 미용실 문을 열고 드디어 입장했다.


끼이-익


오래된 철문에서 나는 쇳사리 같은 삑사리소리에 고구마를 까먹으며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과 미용사 원장님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마치 스키장에 나만 수영복만 입고 온 것 같은 이방인의 기분으로 조용히 묵례를 하고 쭈뼛쭈뼛 서 있었다. 셀프 염색한 듯한 새빨간 머리, 저걸 신고 어떻게 걸을까 싶은 방망이 같은 높은 굽의 슬리퍼, 살사댄스 의상처럼 화려한 보라색 망사형 윗옷, 앞이 제대로 보일까 싶은 까마귀날개 같은 속눈썹까지, 미용실 이모는 미용가위를 짤짤 흔들며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원장님의 강한 미용 명장같은 아우라에 쫄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염색약인지 파마약인지 고추장인지 머리에 뭔가를 덕지덕지 바르고 앉아 계신 세명의 아주머니들 모두 나를 보며 '저 년은 이곳에 웬일인가'라는 표정으로 내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쳐다보고 계셨다. 민망하게 양손을 포개 공손히 단전에 올려놓고 멀뚱히 서 있으니, 아주머니들 모두 나의 등장에 앞니를 굳게 닫아버리셨고, 소란스러웠던 미용실은 납골당만큼이나 조용해졌다. 이 틈에 원장님이 침묵을 깨고 한마디를 던졌다.


"뉴 페이스네?"

해석: 당신은 내가 한 번도 보고 듣지도 못한 새로운 면상이시네요.


그제야 눈알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던 미용실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어.. 여기 미용실 이모님이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염색하려고 왔어요."

옛다, 일단 칭찬 뻐꾸기 한번 날려주자.


나의 침 바른 칭찬 한마디에 원장님은 마음을 활짝 여시고는 추우니까 일단 난로 근처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미리 앉아계시던 아주머니들은 원장님의 착석 명령에 하나같이 분주하게 착착착 엉덩이를 정리하시더니 난로 앞에 명당자리를 뚝딱 만들어주셨다. 적응 안 되는 '불필요한 과한 친절'에, 가스불을 안 끄고 온 것 같다고 뛰어나갈까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난로 위에 잘 구워지고 있는 떡사리가 너어무 노릇노릇해 보여 일단 앉아는 있어보자 싶었다.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대놓고 왔다리 갔다리 하며 미용실을 구경하면 혼날 것 같아, 고개는 정면을 유지하되 눈알만 요리조리 굴려 주변을 살폈다. 도대체 언제 붙였을까 싶은 빛바랜 외국 모델 포스터들, 미용실 원장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금으로 만든 휘황찬란한 장식품들 (황금붕어, 황금돼지, 황금코끼리 등등), 색종이로 접은 꽃으로 장식한 액자, 그리고 뻐꾸기가 정각마다 나올 것 같은 굉장히 큰 쾌종시계까지. 내가 30년 전에 봤던 옛 동네 미용실과 다르지 않았다. AI가 판치는 시대에 이런 올드한 곳이 여전히 존재하다니. 왠지 염색약도 30년 전 것을 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손님이 많은 것을 보아서는 제품 회전율은 빠를 것 같아 안심했다.


이 미용실에는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마치 독무대처럼 모든 사람들이 어떤 방향에서든 쳐다볼 수 있도록 가운데 떡-하니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염색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끝나자 이모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무슨 색?"


갑작스러운 반발 어필. 원장님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고, 없던 무대공포증이 생겨버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다크브라운이요."


그랬더니 원장님은

"다크브라운이 뭔 색인지는 나는 모르겠고, 일단 앉아."

뭐지. 

그럴 거면 왜 물어보셨나요.


단두대 같은 미용의자에 앉으니 그제야 나라는 새로운 존재를 받아주기로 하셨는지 아주머니들의 봉쇄된 목젖이 서서히 풀려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많아서 부럽다느니 생머리가 이쁘다느니 키가 커서 보기 좋다느니. 젊은 아가씨가 미용실에 오니 분위기가 화사해진것 같다고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셨다는 식으로 칭찬일색을 하시더니 내가 염색과 동시에 마스크를 벗으니,


어…


갑자기 다시 조용해지고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애기 엄마네?


마스크 때문에 헷갈렸다고... (뭘?) 요즘은 마스크 때문에 나이를 가름할 수가 없다고 젊은 학생으로 착각했다고 까르륵 까르륵 즐거워하셨다. 마스크 탈의로 졸지에 귀한 곳에 방문한 누추한 사람이 되었다. 결혼안했다고 하면 나이를 물어볼것이고, 왜 결혼을 안했냐부터 시작해서 출산률이 어쩌고 저쩌고 할것 같아 그냥 애기엄마라 부를때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원장님이 나의 두상에 뭔가를 펴바르는데 도대게 이게 뭔지 설명조차 없었다. 무슨색인지 설명은 해주셔야 될 거 아니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거울을 통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주머니들과 눈을 마주칠까 봐 눈을 한껏 내리깔고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체감상 3분정도 염색약을 떡칠한 기분이었다. 충분히 머릿결에 안착될 때까지 뒤에 이모들 옆에 앉아 있으라 해서 이모들 사이를 다시 비집고 앉았다. 다른 분들의 머리를 보니 하나같이 나와 같은 색의 염색약이 덕지덕지 떡칠이 되어있었다.


아.

이곳은 한 색깔밖에 없구나 씨이발.

선택의 권한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곳이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단골로 보이는 할머니가 오시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어있던 가운데 의자로 가서 착석하셨다. 미용실 원장님도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익숙한 듯 가위로 할머니 머리를 착착 잘라주셨다. 5분 걸렸으려나. 컵라면 익는 시간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할머니의 없는 머리숱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단정하게 잘라 주고는 스펀지로 등을 가볍게 툭툭 털어줌으로써 커트가 끝났단 걸 알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거울을 보고 머리결을 한번 쓰윽 정돈하고는 '좋다' 한마디 하곤 돈도 안 내고 그냥 쌩-나가셨고 원장님도 다음에 또 오세요 라는 말만 하고 쿨하게 보내주셨다.

뭐지. 왜 돈을 안 내고 가는 거지.

미장원 연간 회원권을 끊으셨나.


도대체 이곳은 뭘까.

혼란하다 혼란해.



다음 타자로 먼저 염색약을 바르고 기다리고 있던 키 작은 아주머니의 샴푸 차례가 되었다. 원장님이 수도시설이 있는 구석탱이로 데리고 가자, 거울 쪽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빗자루를 들고 와서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앞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당연한 듯 사사삭 쓸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 야무지게.

이삭줍는 여인들처럼 허리를 있는대로 굽혀.

노예처럼.

뭐지. 왜 청소하는 거지.

미용비가 싼 만큼 셀프 용역을 제공해야 하는 곳인가.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지.


파마를 하고 있던 옆옆 아주머니 차례가 돼서 독무대 의자에 앉으셨다. 나는 어느새 미용실의 이상한 시스템에 적응하여 난로 위의 떡을 주워 먹으면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데, 왼쪽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가 연신 미용실 원장님 칭찬을 소리내어 하셨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본인 혼잣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숨 쉬듯 미용사를 칭찬하셨다.


'원장님, 참 잘해.'

'어쩜 저리도 손이 빠르고 잘할꼬.'

'잘해. 참아아아암 잘해.'


믿습니다 믿고요. 들숨에 원장님 날숨에 최고. 1초 1 칭찬.

원장님이 심어둔 바람잡이인가 싶을 정도로, 불경 외우듯 미용실 원장님을 칭찬하는게 여간 찝찝했다.

가만히 보니 다들 각자 나름의 역할이 있는 듯했다. 미용사 원장님을 필두로, 떡 구워주는 아줌마 1, 칭찬 바람잡이 아줌마 2, 빗자루질 아줌마 3, 오는 사람들에게 미용가운을 넘겨주는 아줌마 4 등등. 소름돋게도 내가 미용실에 머무는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에 8-9명이 넘는 사람들이 로테이션 돌면서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완수하고는 떠났다. 왠지 나도 분위기상 일어나서 창문이라도 닦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첫 손님이니까 일단은 모르는척 떡만 주워먹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나온 파마 아줌마가 당연한 듯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나와서는 의자 밑에 달려 있는 드라이기로 셀프 머리 말림을 하셨다. 염색, 파마 만원에 서비스 비용은 포함되지 않나 보다. 그 사이에 내가 호명되어 머리를 감으러 갔다. 샴푸 의자도 오래된 것 같았다. 누운 듯 하지만 나의 목으로 힘을 주고 있지 않으면 왠지 목뼈가 뒤로 확 꺾일 것 같은 불편한 구조였다. 미용실 가서 머리 감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가장 기대하는 순간이었지만 원장님이 일부러 손톱을 톱니바퀴처럼 뾰족하게 관리를 하신 건지 아니면 스펀지 대신 사포를 사용하는 건지 두피를 긁어 샴푸 해주시는데 시원하다기보다는 머리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단골손님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이미 감각에 무뎌지신 건지 이 정도 샴푸질이면 못해도 한두 명은 출혈사태가 있었을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뉴스에 제보 안된걸 보니 다들 만족하는 모양이다. 원장님이 최선을 다해 머리를 감겨주셨지만 양쪽 귀속으로 물이 졸졸졸 들어갔다. 머리만 해준다고 했지 귀머거리가 되도 난 몰라 샴푸스킬. 귓바퀴에 물이 가득 차기전에 다행히 샴푸는 끝났다.


나 역시 셀프로 드라이를 해야 했다. 이미 다른 새로운 손님이 가운데 의자에 앉아 계셔 거울도 보지 못한 채로 창문 쪽 간이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고양이 세수하듯 대충 드라이했다. 참 이상한 곳이다. 다시는 안 와야지 계속 되뇌었다. 무슨 색으로 염색한 지도 모르고 귀 속에는 물이 들어가고, 손님이 알아서 눈치껏 스스로 해야 하고.


아 마음에 안 들어 언짢아.

다음부터는 돈을 더 주더라도 실력 있고 서비스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


이곳에 온 걸 후회하면서 드라이기를 제자리에 걸어주고는 고개를 들어 드디어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에.


내 머리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뭐야.


원장님. 이게 무슨 일이죠?

너무 예쁘잖아.

심지어 머릿결도 좋아졌다. 심지어 만원이다.

심지어 처음 왔다고 영양도 서비스로 해주셨다.


개꿀. 이 집이 염색 맛집이었네. 이제껏 의심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진정한 미용 명인이십니다.

왜 손님들이 그리 정성껏 이 미용실을 아끼는지 알 것 같았다. 쌍따봉 드리겠습니다.

믿습니다 믿고요. 원장님 잘해. 참아아암 잘해.


왠지,

내일 새벽에 미용실 앞을 빗자루로 쓸어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해요 한스헤어 미용실 원장님.

우리 오래 봐요.


 






+


이때까지만 해도 나 너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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