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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Oct 29. 2024

콧대 하나로 인간과 외계인으로 나뉜다

거의 10년 동안 사진 찍을 때면 항상 뒷모습만 고집했었다. 증명사진마저 뒷모습으로 하고 싶을 만큼 앞모습이 자신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못생긴건 아니고 눈 밑이 유독 신경 쓰여서였다. 밤새 울고 난 것처럼 깊게 패인 눈 밑에 지방이 뭉쳐 불룩하게 튀어나와서, 눈 밑에 먹물을 쏟아 부은 것 같이 그냥 까맣고 볼록했다. 혹부리영감님의 혹이 내 양쪽 눈밑에 대롱대롱 달려있는것 같다는 친구의 뼈때리는 한마디에 충격에 빠져 나는 그 날로 눈밑 수술을 검색했고 여러군데 상담 받지도 않고, 제일 유명한 곳에서 가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을테니. 


차가운 금속 침대에 누워있으니 심장이 북처럼 쿵쿵 울렸다. 낯선 기계 소리와 희뿌연 조명 아래, 반짝이는 수술 도구들이 영화 속 한 고문장면처럼 느껴졌다. 극도의 공부가 밀려왔다. 더군다나 수술도중 무의식에 손을 움직일까봐 두 손은 꼼짝없이 묶여버려 꼼짝 못하니 공포는 점점 깊어져만 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며 긴장을 풀어라 하셨다. 시간을 멈춘 듯 고요한 수술실에 잠시나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될 무렵,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잠시만 눈 감으시면 됩니다." 


그 순간, 마취주사가 놓아졌고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이상한 꿈을 꿨다. 몇 분이 흐른 후, 다시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각막 보호 렌즈 때문에 세상이 뿌옇게 보이니 답답하고 무서워 미칠 것 같았다. 누군가 내 얼굴에 손을 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공포심이 극에 치닫을때쯤 무서운 생각이 불쑥 들었다. 분명 수면마취라고 했는데 내가 도중에 깨버린걸까. 원래 깨면 안되는건가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는 와중에 일단은 의료진들에게 내가 깨어났다는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서프라이즈! 저 깨어났쪄염!"이라 말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괜히 "나 깨어났소 의식이 돌아왔소"라 알려주기 위해 의미없는 신음을 했다.


아야 아야. 

날좀보소 곡소리 발사.


의료진들이 아무 반응이 없자 혹시 음악노래에 내 목소리가 묻혀 못들었나 싶어서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강하고 격렬한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야야ㅑㅑㅑㅑ

날 좀 봐주소 날 좀 봐주소. 나 깨어났쪄염. 


그러자 의사 선생님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기윽코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환자분, 마취된 상태인데 왜 앓으시죠? ....이상하네. 어디 불편하세요?"



머쓱.

내가 깬걸 진작에 알고있었나 보다. 아이고 민망해라. 의사 선생님 말대로 마취 덕분에 아픈 건 전혀 없었다.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날 호구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은 느낄수 있었다. 그냥 입다물고 있을껄 괜히 나댔다. 




수술이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수술대에 앉았다. 건네주는 손거울을 받아 들고 수술을 마친 나의 얼굴을 마주했다. 부어오른 눈꺼풀과 볼, 그리고 아래쪽으로 실밥 6개가 매기 수염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거울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대고 보니 특히 쌍꺼풀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부어있었다. 화들짝 놀라 의사 선생님께 소리쳤다.


"쌍꺼풀도 서비스로 해주신 거예요?"


프로포즈보다 더 깜짝 놀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서비스.

의사 선생님은 이게 뭔 신박한 개소리인가 싶은 얼굴로 눈이 부어서 그렇게 보이는거라, 친절하지만 불친절한 어조로 대답하시고는 쌩하니 나가셨다. 생각해보면 수술 상담부터 수술 후까지, 의사 선생님은 늘 수술대만큼이나 차가운 분이었다. 여러 환자를 상대하시느라 필요한 사실만 전달하시고, 여분의 친절은 베풀지 않으시는 대쪽같은 분이셨다. 북극처럼 차가운 의사선생님의 뼈때리는 민망에 부은얼굴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수술 후 4일째가 되니 아바타 캐릭터처럼 콧대가 사라지면서 정말 못생겨졌었다. 콧대 하나로 사람이 인간과 외계인으로 나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콧대는 온데간데없고, 얼굴은 마치 부풀어 오른 반죽이 푹 꺼진 것처럼 납작해져 있었다. 혹시 이대로 콧대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관리하고 경과를 보러 병원에 다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붓기가 빠진 나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시고는 덤덤하지만 미세하게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환자분, 진짜 수술 잘됐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수술은 잘됐다. 눈 밑 푹 꺼진 부분은 지방으로 빵빵하게 채워져, 피곤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얼굴이 밝아졌다.'선생님 덕분입니다요 감아아아암사합니다'를 듣고 싶어하시는 건지 계속 내 얼굴을 보며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을 연발 하셨다. 숨쉬듯 자연스럽게 본인 실력 셀프 칭찬을 하셨다.


뉘예뉘예. 

슨생님 실력이 좋으셔서 성공적입니다. 

과연 명의이십니다.


됐냐.

이 만큼의 감사인사로는 부족한건지 의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아 너무 잘됐는데? 

환자분 진짜 잘됐습니다. 

환자분도 보이시지요?

생각보다 진짜 잘되셨어요. 본인도 만족하시죠?

아, 너무 잘됐어. 좋아. 아주 좋아.


크아, 나에게 취한다.

I like me, I like 나의 실력의 표본. 

본인의 실력에 감탄하시었다.



알겠다고요. 감사하다고 했잖소. 혹시 내가 본인의 성형1호 환자인가 싶은 기묘한 의심마저 들었다. 어떤 결과를 생각했길래 저렇게나 감탄하는 걸까. 멋쩍게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얼른 나가는 나의 뒷통수에 대고 '참 잘됐어. 아 좋아' 라며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잇몸을 보이며 활짝 웃어주셨다. 왠지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 이력서에 성공적인 수술 사례 컬렉션처럼 자랑스럽게 내 비포&에프터 사진이 붙어있을 것 같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내가 대한민국 성형 의학 연구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다.



근데 내가 봐도 진짜 잘되긴 했다. 












* 성형수술은 신중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거쳐 진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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