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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억을 허무하게 날릴 뻔했다

by 김분주

부산에 자취방을 구하러 갔다. 갑자기 결정된 취업이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오피스텔 찾는 게 힘들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2025년 사주 덕분인지 예상치 못한 행운이 터졌다. 깨끗하고 마음에 드는 방을, 원하는 날짜에 이사할 수 있게 된 거다. (현재로선 너무 좋다!) 그리고, 나의 절친 H와 아래위층 이웃이 되었다. 이게 무슨 복인지... 정말 행운이 따랐다.


순풍에 돛 단 배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기분에 H와 오랜만에 남포동에 갔다. 꿈도 잘 꿨고, 집도 구했고, 로또를 사면 3등 정도는 할 것 같은 굉장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로또 한 장을 샀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걸 보니, 이곳이 바로 ‘로또 맛집’인가 싶었다. 기분이 묘했다. 왠지, 내가 1등이 될 것 같은 기운이 들었다. 2025년은 재물복 터진 다했으니 그게 바로 이게 아닐까.


자동으로 번호를 뽑아봤는데, 5줄의 번호가 비슷비슷했다. 1등과 2등이 동시에 당첨되면 어떡하지? 나는 행복한 망상에 빠져들었다. 번호는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1번, 10번, 11번, 44번이 있었다. 신선한 조합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밥을 먹고 쇼핑도 즐기고, 재밌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1시간 넘짓 가야 하는 버스길에 보습이 필요해 크로스백에서 립밤을 꺼내 바르며, 가방 속 로또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재물운이 좋다고 했으니, 이 로또가 그 열쇠인가 싶은 마음에 한동안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나는 스르르 잠이 들어 행복한 꿈을 꾸었다.


집에 도착해서, 남포동에서 산 쇼핑물건을 꺼내 부모님께 자랑하고, 계약한 집이 어땠는지 수다 삼매경에 빠져 3시간을 떠들어댔다. 가계부를 작성하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로또가 없어졌다.



아니, 도대체 어디 갔지? 아무리 가방을 뒤져봐도,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로또용지는 사라졌다. 집 안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원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로또 용지가 사라지다니! 어디서 떨어뜨린 걸까? 생각해 보니, 시외버스 안에서 봤던 게 마지막인 것 같다. 시내버스를 타기 전에 가방 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나서 답답했다. H에게 연락하니, 너무 아깝다며 3등은 무조건 될 것 같은 촉이 온다며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1등이면 어떡하지?

2등이면 어떡하지?


당첨이면 어떻ㅎ...ㅏ지ㅣㅣㅣㅣㅣ 으헤헤ㅔㅠㅇ


로또 용지를 주운 사람이 상금을 몽땅 들고 가는 건가?

내가 그 용지의 원래 주인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지문 검사라도 해야 하나?



수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촉이 좋은 편인데, 이번 로또는 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떨어뜨린 건 어쩔 수 없지만, 혹시 집에 오는 길에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싶어서 다시 길을 돌며 살펴보았다.


혹시 엘리베이터 틈새에 떨어졌을까?



바람에 날려 자동차 밑으로 들어갔을까?


혹시 하수구로 빠졌을까?



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20분 넘게 뒤졌지만, 어디에도 로또 용지는 없었다. 아, 이렇게 내 로또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구나. 생각을 떨쳐내려고 해도, 몇십억을 놓친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식욕도 없어졌다. 내가 탔던 352번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내 로또 내놔, 뱉어내.

의심 불신 의혹 못마땅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3일이 흘렀다. 로또 발표 날이 왔다. 결과가 궁금하긴 했지만, 만약 그 매장에서 1등이나 2등이 나왔다면, 난 평생 찝찝하게 살 것 같았다. 아빠는 결과를 보지 말라고 했다. 안 보면 오래 산다며 거듭 나를 말렸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은 이미 로또 당첨 판매점을 클릭하고 있었다.



토요일 밤 9시 확인.

1등, 부산은 없다.



어라?

2등 당첨판매점에 부산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산 그 집에서 2등이 나왔다.



씨이이이이이이이ㅣ발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수능 발표날보다 더 떨렸다.



내 거면 어떡하지?

59,746,664원을 날리게 생겼다.

눈물이 터져 나오고 가슴이 폭발하기 직전, 당첨번호를 확인했다.




어라? 난 아니네?


내 거랑 하나도 맞는 게 없다.

25억을 날릴 뻔한 게 아니었짜나!



휴, 다행이다.

손해 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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