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베트남 꼰뚬KonTum성에서
베트남 중서부 고원 '부온 마 투엇(Buôn Ma Thuột)'에 간 것은 오래 전부터 코끼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왔다는 '에데(Ê đê)족'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을 입구부터 훈련된 코끼리가 줄지어 관광객들을 맞는 모습은 생태 관광을 기대했던 나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코끼리를 태워준다는 주민들을 피해 나는 마을 초입만 빠르게 쓱 둘러보고 나왔다. 그리고는 마을의 유일한 정류장인 마을 입구 슈퍼 앞에 앉아 마을로 들어오는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빌려온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펼쳐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중 '꼰뚬 고아원'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고아원'은 내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2년간 지냈던 베트남 북부의 하노이나 그 근교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 고아원의 아이들 대부분은 베트남 54개 민족 중 전체 인구의 1%도 안되는 '바나(Ba na)족'이라고 했다. '바나 족'을 만난 건 하노이 민족학 박물관 속 모형들이 내 경험의 전부였다. 나는 고아원에 방문해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큰 고민 없이 꼰뚬으로 가는 미니 버스에 올랐다.
'부온 마 투엇'에서 북쪽으로 230km, 약 4시간 반 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니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국경을 접한 고원지대 '꼰뚬'이 나타났다. 꼰뚬 시내의 중심에는 나무로 만든 지 100년이 넘은 '꼰뚬 대성당(Saint Mary's Cathedral of Kon Tum)'이 있고, 그 바로 옆에 1976년에 한 수도원에서 설립한 '빙선VinhSơn 고아원'이 있었다. 그곳은 부모가 없거나, 장애가 있거나, 가정환경이 열악해 보호자와 함께 지낼 수 없는 약 120여명의 아이들이 수녀님과 봉사자들의 보호 아래 함께 지내고 있는 곳이었다.
가끔 한국 수녀님들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한국인 여행자가 이렇게 혼자서 불쑥 방문한 건 흔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한국 아이돌 '소녀시대'의 '유리'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한국말을 하고 베트남 말도 조금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환대와 관심을 주었다. 아이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한국 연예인들에 대해 물었고, 내 앞에서 좋아하는 한국 가수의 신곡들을 줄줄이 불러댔다. 한국어 원어민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보려는 열성 학생들도 생겼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3개월째 이곳에 머물고 있는 프랑스인 봉사자 필립 아저씨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바나족의 지붕이 높고 뾰족한 특별한 집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고,고아원 뒷뜰에서 하는 축구에 껴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온갖 재롱에 과장되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고, 아이들이 미사를 볼때는 한켠에 서서 나름 진지한 그 모습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금새 아이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고, 꼰뚬성에 온지 며칠간 다른 일정 하나 없이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씩 3km씩 강을 따라 걸어 고아원과 숙소를 오가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잘 그을린 갈색 피부에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과 긴 속눈썹을 가진 아홉 살의 남자아이 빙Bình은 며칠 새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너셕이었다.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처럼 빙 역시 '어떤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스스로를 '베트남 사람'이 아닌, '바나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야무진 아이였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아챌 정도로 총기가 가득했고, 그 나이 아이들처럼 엄청 까불대지만 무언가를 배울 때면 그 큰 눈은 더욱 빛났다. 빙은 텔레비전에서 얼핏 본 한국의 b-boy 댄스도 곧잘 따라 췄고, 혼자서 흥얼흥얼 팝송을 부르기도 했다. 그 노래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고운지 옆에서 훔쳐 듣고 있던 내가 한번만 더 불러달라고 부탁하면 이내 쑥스러운 듯 입을 다물고 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계단에 앉아 놀고 있던 나는 옆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빙에게 '너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영상에 담아 언제든 기분 좋게 꺼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 진심이 통한걸까, 마침내 빙은 긍정의 미소와 함께 예고도 없이 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어마썬샨~ 마온니썬샨~
유맥미해삐~ 왠스카어그레~
윌네버노딜~ 하멋아러뷰~
프리돈테잌~ 마선샨어웨이~
옆에 있던 친구들의 짓궂은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빙은 중간 중간 율동까지 곁들여 끝까지 노래를 불러줬다. 그 청량한 목소리와, 노래를 부르는 내내 보여준 그 반짝이는 미소를 서둘러 영상 속에 담으며 나는 뭔지 모를 울컥함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감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유어마썬샨(you are my sunshine)' 노래였다. 꼰뚬을 떠나는 날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벌써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감동의 여운을 깊이 담아 둔 다음 날, 고아원 마당 한켠 놀이터 그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5~6명의 덩치 큰 미국인들이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 가이드와 함께 고아원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을 한없이 가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그들은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들으며 고아원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나왔다. 그네에 앉아 있던 나와도 눈이 마주쳤는데 아마 베트남 직원 쯤으로 인지한 듯 작은 미소를 보였다. 그들은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었다. 손님들을 맞이하던 고아원 수녀님 한 분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일사분란하게 아이들이 모였고 익숙한 듯 손님들을 향해 대열을 맞췄다. 큰 아이 한 명이 구령을 외치자 아이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유어마썬샨~ 마온리썬샨~....”
어?? 어디서 들어봤던 노래인데... 빙이 나에게 들려준 그 노래와 그 몸짓 이었다. 빙이 나에게 어렵사리 불러준 그 노래는 매번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 합창과 군무였던 것이다. 내 옆에서 같이 그네를 타던 빙도 어느 샌가 그 대열 안에 서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빙이 어제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모습과 오늘 손님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이 장면이 내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미국인들은 고아원에 후원금과 선물을 전달했다. 어린 아이들은 간식과 장난감 선물을 받고 기뻐했으나 큰 아이들은 기뻐할 겨를도 없이 헤치지 않은 선물 보따리를 건물 안 어딘가로 옮겼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한낮의 더위를 잊게 만드는 노을이 마을 전체를 감쌌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닥브라(Dakbla) 강물이 유독 반짝반짝 빛났다. 빙의 눈망울처럼.
이제 열아홉이 되었을 청년 빙은 지금 어떤 눈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