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을 불러줄게

2009년의 인도 함피, 그리고 2010년의 베트남 무이네 모래언덕에서

by 부탄

일출을 보기 위해 찾은 ‘무이네(Mũi Né)’의 모래 언덕이었다. ‘무이네’는 베트남 중남부의 해안도시 ‘판티엣(Phan Thiết)’시에 속해있는 마을로 1995년부터 리조트 개발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 곳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었지만 그 바닷가 바로 옆의 붉은 모래 언덕도 유명했다. 평소 같으면 깨어날 기미도 없는 이른 시간,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간신히 숙소를 나왔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서 쎄옴(Xe Ôm, 오토바이 택시) 기사 아저씨를 찾았고 어둠 속을 달려 푹신한 모래 위에 바퀴가 멈췄다. 저 멀리 부지런한 서양인 여행자 두 명이 휑한 모래 위에 먼저 발자국을 내고 있는 게 보였다. 어둡고 고요한 새벽,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자 푹 꺼지는 발아래로 달빛에 반짝이는 짙은 색의 모래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해가 잘 보일 것 같은 모래 언덕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앉자 사방의 낮은 모래언덕들이 만드는 잔잔한 곡선들이 한눈에 보였다. 서서히 밝아지려는 틈 속에서 몸집이 작은 누군가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의 옆구리에는 원래 용도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커다란 널빤지가 들려 있었다.


“샌듄 보딩 히어. 투 헌드레드 싸우젼 동.”


아이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영업을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무이네 모래 언덕에서 보딩을 한다는 정보를 가이드북에서 봤던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갑작스러운 꼬마 상인의 출현에 놀란 내가 큰 반응을 하지 않자 아이는 익숙한 듯 새로운 제안을 했다.


“오케이, 원 헌드레드 싸우젼 동.”


외운 듯 술술 나오는 영업 멘트와는 다르게 아이는 내내 무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단해 보이는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는 내 시선을 곁눈질하는 듯 두리번거리며 준비해 둔 최후의 제안을 꺼냈다.


“오케이, 미 디스카운트. 유 하우 머치?”


아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이게 다였다. 아이는 내 앞에서 알고 있는 영업용 영어 몇 문장만을 반복했다. 순간, 수년 전 인도의 ‘함피(Hampi)’에서 만났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함피’는 유적지뿐 아니라 보이는 모든 것이 높고 낮은 돌로 덮여있는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어디든 조금 높은 마을 돌산 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면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돌인 듯, 마치 태고 적의 세상이나 영화 스타워즈의 혹성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처음 만난 곳은 함피 북쪽에 맞닿아 있는 퉁가브하드라(Tungabhadra) 강가에서였다. 내가 나무 그늘이 우거진 강가의 돌계단에 앉아 동네 아이들과 떠들고 놀고 있을 때 그 아이는 멀리서 한참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놀던 아이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제야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여덟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맨발의 남자아이는 아주 말랐고, 검고 매끈한 피부는 소처럼 껌뻑껌뻑 거리는 눈망울을 더욱 하얗게 보이게 해 주었다. 그 속눈썹은 어찌나 길고 풍성한지, 유독 눈이 예쁜 인도의 아이들 중에서도 아이의 눈은 더욱 빛났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나에게서 1미터쯤 거리를 둔 채 옆구리에 낀 엽서 한 뭉치 중에 두세 장을 꺼내 내밀었다. 다른 인도 아이들과 다른 서툰 영어가 들렸다.


“원 달라… 원 달라….”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아이 입에서 내 귀로 오는 그 사이에 소리가 흩어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의 엽서는 필요 없었다. 이미 함피에 와서 산 엽서 몇 장에 편지를 써서 친구들에게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국제우편을 붙이고 난 뒤였다. 나는 다시 계단에 앉아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두드렸다. 아이가 살며시 내 옆에 앉았다. 또박또박 내 이름을 말한 뒤 ‘코리안’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코리안?’하고 되물었다.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지도를 그렸다. 인도와 한국 그 사이에 네팔, 중국,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인도 주변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어설프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려고 했다. 가이드북에서 유라시아 지도 한 장을 찢어서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며 봤던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위의 인도에서 남부와 중부 사이에 몇 개의 점을 그리고 점의 끝과 끝에 남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와 이곳 ‘함피’를 표시했다. 점들을 이어 선을 긋고 그 위에 작은 버스 한 대를 그렸다. ‘한국’에서 ‘뭄바이’를 잇는 긴 점선 하나를 더 긋고 그 위에는 비행기를 그렸다. ‘슈우우웅-‘ 들고 있던 연필을 들어 비행기 소리를 내자 아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 흔들었다.


수첩의 새로운 페이지에 내 이름을 영어로 적은 뒤 아이에게 연필을 건넸다. 연필을 받아 든 아이가 멋쩍게 웃었다. 알고 보니 공용어인 영어나 지역 언어인 힌디어로도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 지나가는 아저씨들에게 아이의 이름을 힌디어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모르니 두 번 세 번 깨끗하게 적어달라고 말했다. ‘이게 네 이름이래.’ 꼬불꼬불 적힌 자신의 이름을 받아 든 아이는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었다. 나는 다시 연필을 아이에게 쥐어줬다. 연필을 잡는 것조차 서툴러 보이는 아이는 수첩에 코를 박은 채 열심히 손에 힘을 주어가며 글씨를 따라 그렸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강변에 앉아 있었다.


다음 날,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다시 그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쭈뼛거리던 어제와는 달리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한걸음에 뛰어왔다. 아이의 옆구리에는 어제 팔려다 못 판 엽서뭉치가 있었고 반대 손에는 어제 내가 주었던 연필과 수첩이 들려 있었다.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신이 난 채로 수첩을 내밀었다. 아이가 보여준 수첩 안에는 힘주어 쓴 아이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엽서로 무거워진 어깨의 반대쪽에 아이의 꿈을 실어 균형을 맞추어 준 듯한 뿌듯함도 잠시, ‘내가 아이의 양 어깨를 더 무겁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와 나는 근처 슈퍼 앞에 나란히 앉아 오렌지 병 음료를 마셨다. 아이는 목이 말랐는지 빨대에 입을 대고 음료를 단숨에 쭉 마셔버렸다. 아이 한 손에는 여전히 이름이 빼곡히 보이는 수첩이 들려있고, 싱글벙글 인 아이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더욱 쓰렸다. 아이가 연필을 계속 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믿는 신 앞에서 아이가 생계 걱정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다.







무이네의 모래언덕 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널빤지를 들이 밀고 있었다. 내 옆 모래 바닥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앉으라는 시늉을 하자,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아이는 순순히 내 가까이 왔다. 아이는 들고 있던 널빤지를 둥글게 말아 모래 위에 세우고는 의자인 듯 그 위에 걸터앉았다. 바지에 모래를 묻히고 싶지는 않다는 의도가 보였다. 저 멀리 보였던 서양 여행자 둘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이 조용한 모래 언덕 위에는 아이와 나 단 둘만이 남아 있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채로 같은 영어 문장만 반복해서 이야기하던 아이에게 내가 베트남어로 물었다.


“네 이름이 뭐니?”


외국인의 베트남어에 순간 멈칫한 아이의 표정에서 그 또래의 '보통의 아이'가 보였다.


“제 이름은 ‘띠’에요.”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는 것을 인지한 아이가 잠시 후 다시 베트남어로 가격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띠? 어떻게 쓰는데? 여기 모래에다 써 줘 봐.”


어젯밤 내린 비에 젖어 살짝 굳어진 모래 바닥 위에 아이가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그렸다. ‘Ti.’


“’Ti’에요. 띠.”

“아, 네 이름이 'Ti'구나.”


그제야 경계심이 풀렸는지 아이는 환하게 본연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보통의 그 나이보다는 확실히 작은 체구를 가진 띠는 베트남에서 7학년인 13살이었다. 학교에는 다니지 않고 매일같이 이곳 모래언덕에 오며 아침 5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관광객들에게 슬라이딩을 할 수 있는 널빤지를 빌려주고 돈을 번다고 했다. 오늘 아침 4시 40분에 침대에 누워 눈을 뜰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내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띠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지금 이 시간에는 엄마도 일을 하러 나가있고 여동생 혼자만 집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너네 집은 어디니?”


띠가 모래 언덕 입구 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모래 위에 엉덩이를 붙였고, 그 사이 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는 내 옆에 앉아 매일을 봐왔던, 그리고 앞으로 언제까지 매일 봐야 할지도 모르는 모래 언덕 위의 그 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언덕 위의 일출이 누군가에게는 대자연의 신비와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는 매일의 고단한 하루를 여는 반갑지 않은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아도 매일 같은 시간에 꼬박꼬박 나타나는 태양이 띠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니?’라는 미안하고 뻔한 질문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해는 뜨겁게 눈앞으로 나타났고, 순식간에 사방이 밝아졌다. 아이는 조용히 일어나 큰 기대 없는 말투로 나에게 한번 더 제안을 했다.


“이거 타실래요?”

“미안해. 어젯밤에 비가 와서 여기선 탈 수 없어.”


사실 비가 안 왔어도 이른 새벽부터 뜨거운 태양 아래 혼자 널빤지를 타며 슬라이딩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띠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아무렇지 않게 터벅터벅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띠의 발등에 난 상처 위로 달라붙는 파리 떼들이 보였다.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니 옷도 해지고 빨지 못한 데다가, 어른 옷을 구해다 입은 듯 몸에 맞지 않은 큰 품세였다. 나는 결국 띠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했다.


베트남의 고산 지역에 가면 여전히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돕거나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곳이든 시골 아이들이 바쁜 부모를 손을 덜기 위해 일을 돕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결의 문제다. 베트남에선 전쟁 이후 부모를 잃은 많은 아이들이 일명 ‘째부이(Trẻ Bụi, 먼지 아이)’가 되어 길거리를 방황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연유로 고향을 떠나거나 집을 나온 아이들이 도시의 ‘째부이’가 되어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다. 하노이만 해도 이런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은 큰 다리 밑이나 강변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 지내기도 하고, 베트남 국가 행사 개최를 위해 '도시 미관 정리'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잡아서 도시 외곽에 있는 사회보호원에 강제 수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로 올라온 아이들 중에는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먹고 자고 일을 하며 부지런히 돈을 버는 경우도 있지만, 노숙을 하며 구걸 또는 다단계 조직의 판매책이 되어 영양실조, 마약, 매춘 등 많은 위협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한 띠가 만약 고향을 등지고 나가 도시의 ‘째부이’가 된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주변을 조금 둘러보다 오전 9시쯤 다시 그 모래언덕 입구를 지날 때였다. 책가방 대신 널빤지를 들고 있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30여 명의 또 다른 ‘띠’였다. 그 뒤로 몇 개의 바닷가의 흔한 시골집들이 보였다. ‘띠의 집은 아마 저기쯤일까?’ 나는 꿀 같은 낮잠을 잘 띠를 떠올리며 ‘아침으로 국수 한 그릇을 같이 먹자’고 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