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루옹 마을에도 산타가 오실까

2022, 베트남 타잉화성 뿌루옹 마을에서

by 부탄

산의 기울기를 따라 부드러운 곡선의 논이 계단처럼 한 겹 한 겹 쌓여있다. 저기 아랫마을로부터 꽤나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걸어서 한참을 가야 하는 반대쪽의 고개까지 오르락내리락 꺾어진 선들이 끈임없이 이어져 있다. 한 해에 두 번씩 할 수 있는 벼농사 사이의 잠시 쉬어가는 시간, 머리가 잘린 채로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볏 집들이 황금색을 더 다채롭게 만든다. ‘엉덩이쯤 되는 저 높이의 황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일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걱정도 잠시, 저 멀리 이미 황금색을 붉은 흙으로 갈아엎고 있는 부지런한 농부가 보인다. 그 뒤로는 산 너머의 산들이 초록의 병풍처럼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황금의 들판, 붉은 흙, 초록의 숲이 어우러지는 것이 가히 장관이다. 너무도 오고 싶었던 곳, 그러나 길이 너무 멀고 험할까 혹은 산속 겨울이 너무 추울까 그간 엄두를 못 냈던 ‘뿌루옹Pù Luông 마을’에 드디어 왔다.


만두가 다니는 베트남 사립학교에선 새해 2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간의 짧은 방학이 주어졌다. 그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지난 1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온 내 친구 바람과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긴 겨울방학을 맞은 만두의 친구 꽃솔이 한국에서 날아와 이번 뿌루옹 여행에 함께했다. 몇 년 전 우리 모자의 호이안 한 달 살이 여정에 함께 했던 꽤나 잘 맞는 여행 동무들이다. 하노이에서 차로 꼬박 4시간 반, 굽이진 산길을 달려 도착한 마을은 골짜기마다 각각의 숙소들이 서로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마을의 주류 소수민족인 ‘흑 타이(Thái Đen)족’ 주민들에게도 큰 위화감을 전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중 우리가 고른 숙소는 동화에나 나올 법 한 트리 하우스였다. 예닐곱 채의 작은 나무집의 테라스와 공용 식당에서는 마을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노이에서 수공예로 아이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주인은 숙소 곳곳에 바느질과 목공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비치해 손재주를 뽐냈다. ‘꽉 차게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것처럼 이 숙소는 상업적인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현지를 존중하고, 조용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먼저 간 이들의 소개로 알음알음 찾아오는 특별한 곳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머무는 5일 동안 우리를 제외한 서양인 여행자 세 커플이 각각 하루씩 왔다 갔을 뿐, 나머지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넓은 숙소를 제집처럼 뛰어다녔다. 매니저 주이Duy 아저씨는 아이들이 더 편히 놀 수 있도록 볕이 나는 마당에 부러 돗자리와 방석까지 깔아주셨다.

마당 돗자리와 방석 위에서 마음껏 광합성 하는 아이들


주이 아저씨는 20년간 하노이와 호찌민 등의 대도시에서 5성급 호텔을 관리하던 호텔리어였다. 오래전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호텔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참 좋은 사람 같았다고 했다. 국빈과 유명인사들을 가까이서 볼 정도로 화려했던 호텔리어의 삶을 뒤로한 채 그는 5년 전 이곳 산으로 들어와 시바견 ‘쏘Sổ’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전 직업이 그러했듯 온몸엔 배려가 배어 있었고, 이 평화로운 곳에서 얻게 된 듯 계산되지 않은 미소를 항상 머물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저씨와 함께 일하는 동네 주민들인 타이족 직원들은 하나같이 너무 친절했고, 채식을 하는 이와 아이들까지 별도로 고려해서 준비해 주시는 식단은 매끼 신선한 재료들로 다양하고 푸짐하게 맛볼 수 있었다. 매일 산길을 10킬로씩 달린다는 아저씨를 따라 마을 산책을 했다. 영상 10도만 되어도 벌벌 떨어야 하는 습하고 추운 겨울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하노이에서 너무나 그리웠던 따듯한 햇살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매연으로 가득한 하노이와 다르게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가 불어왔고, 고요하고 넉넉한 대자연의 풍광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은 분명 우리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기에 딱 인 곳이었다.




마을 구경을 시켜주며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이들이 가장 절실하게 믿는 종교는 바로 베트남의 국부인 ‘호 아저씨(호찌민 주석)’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북부의 많은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이나 성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베트남의 인민위원회, 보건소, 마을회관, 학교 등의 여느 공 기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호 아저씨’의 초상화가 모든 집마다 걸려있었다. 소수민족 마을이기 때문에 정부의 사상교육이 더 철저했을 것이고, 산속에 위치했기 때문에 외부와 더 단절된 채 다른 종교나 문화를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호 아저씨를 종교처럼 숭배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날 리는 만무했다. 그나마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느낀 건 우리 숙소의 식탁 위에 통나무를 얼기설기 쌓아 올리고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별한 과일인 쏘Sổ로 받침을 만들어 놓은 이색적인 트리와 타이족 전통 가옥 천장에서 빛나는 전구들, 그리고 저녁시간 골짜기 반대쪽 어느 숙소에선가 틀어놓은 캐럴 소리가 우리 숙소까지 퍼져 들리는 것 정도였다. 길거리에 내놓은 대형 스피커로 종일 캐럴을 틀고 아이들 선물 판촉에 열을 올리는 장난감 가게들, 누가 누가 크고 화려하게 만드나 경쟁하듯 트리 장식을 하는 아파트와 쇼핑몰들, 이벤트를 위해 이곳저곳 산타 복장을 하고 바삐 움직이는 남자 어른들, 유치원과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꾸민 꼬마들, 코로나 이후 근 3년 만에 화끈한 연말을 맞이하기 위해 들떠 있는 어른들로 가득한 시끌벅적 하노이를 벗어나 이렇게나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이 오히려 기대되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트리

동갑내기인 만두와 꽃솔은 여전히 산타를 믿고 있는 눈치였다. 만두는 밖에서 만난 건 누군가 산타 옷을 빌려 입은 가짜 산타고, 진짜 산타는 늘 잠자는 사이에만 다녀갔기 때문에 산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꽃솔은 한국의 친구들로부터 산타가 없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지만, 매년 집으로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간 그 산타가 거짓일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친구들의 의심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꽃솔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는 진짜 산타를 만났고, 또 지난번에는 차창 밖에 날아가는 루돌프를 직접 봤어. 그게 바로 산타가 있다는 증거야!’ 존재 여부에 대해 혼돈이 오기 시작하는 시기인 만큼 아이들은 더 철썩 같이 믿고 싶어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자세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하노이에서 들고 온 작은 트리와 휴대용 램프 아래 직접 쓴 편지와 직접 만든 쿠키 하나씩을 숙소 테이블 한편에 잘 올려놓았다.


“엄마, 산타가 여기 숙소까지 오시겠지?”

“글쎄. 산타는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하노이에서 여기에 온 것도 아시지 않을까?”

“근데 여기는 산이 너무 꼬불꼬불해서 찾기 힘들 거 같은데….”

“그래도 만두랑 꽃솔이 이렇게 편지도 썼으니 오실 거야.”

부디 우리 숙소에도 잘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새벽, 여전히 창밖에 어둠이 남아있는 그 이른 시간에 만두가 평소보다 빠르게 잠에서 깼다. 만두는 침대에서 스스륵 빠져나와 트리 앞으로 가더니 산타의 흔적을 발견했다. 테이블에 놓인 것 중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하나 집어 들더니 휴대용 램프의 불빛을 비추며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다른 침대에서 깨어있던 내가 슬그머니 다가가니 만두가 상기된 얼굴로 카드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선물은 꽃솔이 깨어나면 같이 풀어보기로 하고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크리스마스의 이른 아침은 고요했고, 만두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마 후, 잠에서 깬 꽃솔이 산타의 흔적을 발견하는 소리가 들리자 만두는 재빠르게 나무집으로 뛰어갔다. 산타는 아이들이 준비했던 쿠키를 모두 먹었고,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를 포함한 카드와 선물을 놓고 갔다. 꽃솔의 선물은 루돌프 인형, 만두의 선물은 공룡 카메라였다. 둘 다 모두 편지에 쓰고 그렸던 선물이었다. 아이들은 카드를 읽고 또 읽었다. 산타가 우리가 이곳에서 여행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서로에게 친절하며, 새로운 것에 용기 있게 도전하며 여행하기를 바라는 산타의 마음이 적혀있었다. 꽃솔은 ‘역시 산타는 있었어!’ 라며 안도했고, 만두는 이 산골까지 산타가 잘 찾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만두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시던 직원 아주머니들께도 ‘어젯밤에 우리 숙소에도 산타가 왔어요!’라고 알렸다. 아주머니들은 무슨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날 오후 아이들은 새 친구 ‘비Vĩ’를 만났다. 비는 숙소에서 일하는 타이족 직원 아주머니의 아들인데 만두, 꽃솔과 같은 나이였다. 당직인 엄마를 따라 숙소에서 놀고 있던 비 역시 흔치 않은 또래 친구들의 등장에 무척 반가워했다.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 만두가 꽃솔에게 통역을 해주며 간단한 소통을 시작했으나 사실 아이들이 노는 데 언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금세 숨바꼭질도 하고 어제 시장에서 사 온 풍선을 가지고 놀며 즐겁게 어울렸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이 숙소 곳곳이 아이들에게는 큰 놀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새 친구와 시간을 보내던 만두가 갑자기 큰일이라도 난 듯 엄마를 부르며 달려왔다.


“엄마아아아! 비네 집에는 산타가 안 왔대!”

“어? 정말? 음…. 왜 그랬을까?”

“정말이야. 우리 숙소에 산타가 왔다고 하니까 비가 진짜 놀랬어. 자기 집은 안 왔다면서.”

“아.. 그랬구나.. 산타가 비네 집은 깜빡했나 보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서 말해줘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아이들이 하노이에서 먹으려고 봉지에 담아 온 사탕과 젤리가 눈에 띄었다. 비가 좋아할 것들을 골라서 만두와 꽃솔의 손에 한 줌씩 쥐어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비에게 뛰어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고, 사탕 선물을 들고 온 꼬마 산타들을 본 주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선물 받은 사탕을 양손에 쥔 채 비가 다시 우리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왔다. 비와 만두와 꽃솔은 사탕을 나누어 먹으며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어울려 놀았다.


뿌루옹 마을에서의 다섯째 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내내 이렇게 비가 오고 스산했다는데, 우리가 와 있는 동안 해가 쨍하고 비치더니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였다. 겨울방학이 없는 베트남 공립학교에 다니는 비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만두와 꽃솔은 비와 함께 나란히 우산을 쓰고 숙소 입구에서 우중 산책을 다녀온 엄마들을 맞이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구들장 앞에 나란히 앉아 초콜릿 우유를 마시고, 숙소 아주머니들이 카사바를 넣어 만들어주신 따끈한 찹쌀밥 ‘쏘이Xôi’를 손으로 뜯어먹었다. 쬐고 있는 불 때문인지, 여럿이 모여있는 온기 덕인지 따듯해졌다. 투둑투둑 처마 어디엔가 부딪히는 빗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뿌루옹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이었다.

빗소리 들으며, 불멍하며, 초코우유 한잔씩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뿌루옹 마을에 며칠 더 있고 싶다고 했다. 만두는 여기서 살고 싶다고까지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러 만두가 산타에게 받은 어린이용 즉석카메라로 셋이 함께 사진을 찍어 비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만두와 꽃솔이 며칠간 엄청 찍어댄 덕에 흑백으로 프린트되는 두툼한 두 개의 종이 롤은 이제 단 한두 장 정도만 인화할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 만두와 꽃솔이 비를 가운데에 세우고 함께 어깨동무를 했다. 힘겹게 한 장이 프린트 되어 나왔지만 구겨진 종이 덕에 이미지의 반만 인화가 되었다. 남은 인화지로 뽑을 수 있는 사진은 단 한 장, 더 이상 실수하지 않아야 했다. 연달아 세 번 사진을 더 찍었지만 안에서 헛돌던 짧은 인화지는 나오지 않았다. 탄식이 이어지는 순간, 다섯 번의 시도 만에 아이 셋이 그려진 온전한 스티커 한 장이 나왔다. 지켜보던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어렵게 인화한 스티커 사진을 비에게 전했다. 사진을 한참 쳐다보던 비가 만두를, 그리고 꽃솔을 한 명씩 꼭 안아줬다. 꽃솔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였고, 만두는 그렁그렁 또 눈물을 보였다. 올해 뿌루옹 마을에는 분명 아주 특별한 산타가 다녀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