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주 벗밭 회의록
안녕하세요, 벗밭입니다.
요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개를 좀 더 자주 위쪽으로 올려보는 것 같아요. 까만 하늘에 떠 있는 동그란 달 때문인데요. 완전한 원에서 조금 깎여나간 달의 모양새가 마치 정월대보름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왕 정월대보름 이야기를 꺼냈으니, 음력으로 조금만 더 날을 세어볼까요.
내일은 절기상으로 우수(雨水)가 되는 날이에요. 비와 물이 나란히 적힌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대요. 날씨가 많이 풀려서 얼음은 물이 되고 새싹도 피어난다는데요. 그렇다기엔 날씨가 너무 춥네요. (롱패딩 못 잃어..)
그래도 오늘은 움츠린 어깨를 조금 펴고 따스한 바람을 조금 찾아보려고요. 어쩌면 거짓말처럼 봄이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
벗밭 드림
이번 주 벗밭은 홍성에 있는 홍동마을 농가 중 '논밭상점'에 다녀왔어요. 허브와 식용꽃, 고구마 등을 키우세요. 저희는 애플민트 수확에 참여했는데요, 계속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해서 다리가 오늘까지도 당겼지만, 애플민트의 상큼한 향을 원없이 맡을 수 있었어요.
논밭에서는 유기농 식용꽃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패랭이, 팬지꽃 등 정말 종류도 다양해요.
'꽃 따러 가요'라는 인사를 직접 하게 되니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더라고요. 봄이 오면 꽃을 따다 화전을 해 먹어야겠어요. 여러분은 올해 봄을 어떤 방법으로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작은 공간에서도 작은 텃밭을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지난 한 구독자분께서 보내주신 제안이 마침 저희의 이번 주 안건과 비슷했어요.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든 사람이 작은 농부가 되는 일상'이라는 우리의 작은 꿈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어요. 도시의 제한적인 주거 환경, 서로 다른 삶의 환경 안에서 어떻게 작은 농부가 될 수 있을까요?
벗밭은 어디에서든 '내가 키워서 내가 먹는', 내키내먹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고 있어요. 내키내먹은 어떤 의미일까, 도시에서 내가 생산부터 직접 경험해본다는 것은 어떤 감정과 연결될까 매일 생각하죠. 그래서 가장 먼저 돌아보았어요. 벗밭이 ___였던 시간을요.
우리가 경험해본 내키내먹, 앞으로 심어보고 싶은(시도해 보고 싶은) 내키내먹은?
당근: 저는 직접 먹을 것들을 키워보고 싶었지만, 땅이나 농사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농장으로 여행을 다녔고, 8개월간 다양한 농장들을 돌아다니며 함께 농사지었어요. 나름 저만의 밭을 가꾸고 싶어서 화분을 들고 다니며 저의 식탁에 소소하게 보태기도 했죠. 직접 키운 바질로 페스토를 만들어 나누어먹고, 작은 방울토마토를 한 알 겨우 먹는 일들이 큰 행복이었어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매번 식탁 위에 직접 키운 것들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이것 또한 저의 농사, 내키내먹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자주 죽이고, 무언가 키워내는 일에는 서툴지만 계속해서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일을 반복할 거예요. 올해는 움직이는 화분에 당근을 심고, 벗밭의 텃밭에서 함께 구황작물을 길러보고 싶어요!
감자: 저는 가족과 거주를 분리하게 되면서 기숙사, 원룸, 하숙, 친척집 등 다양한 곳에서 지냈어요. 항상 언젠가는 옮길 수도 있는 집, 방학 혹은 학기 단위로 바뀔 수도 있는 집이었어요. 따라서 내가 사는 동네 혹은 집에서 뭔가를 키우는 시도를 별로 해보지 못했어요. 선물 받아서 키웠던 친구들도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세상을 떠나기도 했죠.
하숙집에 지내면서 몇 개의 작물을 키운 경험이 있어요. 씨앗부터 키운 새싹도 있었고(사실 물을 제때 주지 않아 새싹이 힘을 잃고 죽어서 다시 심어야 해요..), 다육이와 토끼 선인장, 그리고 타임민트와 애플민트도 있어요. 허브 분갈이를 한번 해줘야 하는데 방이 좁기도 하고 적절한 시기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미루고 있어요. 저는 창가에 가까운 책상에 두었다가 창문이 있는 복도와 같은 곳에 옮기면서 키우는데,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도시에서 지낼 땐 흙이 있는 땅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는 것은 더 어려워요. 올해 저의 작은 목표는 제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함께 화분텃밭을 작게 해보고 더 나아가 구에서 지원하는 공공텃밭과 같은 곳에서 작게나마 심어보고 작물을 잘 키우는 법을 조금씩 어깨 혹은 화면 너머, 혹은 직접 다른 분들께 배우는 것이랍니다. 혼자보단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재밌겠죠?
펭귄: 로즈마리, 루꼴라, 상추, 방울토마토, 콩나물. ‘내키'의 경험을 모두 꼽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겠네요. 먹을 수 있는 작물을 많이 키워봤지만 모든 친구들이 식탁에 오르지는 못했어요. 말라서 떠나기도 했고, 진딧물의 공격을 받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단연 신기했던 건 콩나물 키우기였어요. ‘눈 깜짝할 새'라는 문장을 저는 콩나물을 통해 경험했거든요. 따뜻한 방에 콩을 놓아두고 잠깐 숨 돌리고 돌아오면 콩깍지가 벌어져 있고, 또 줄기가 길어져 있더라니까요! 저는 24시간을 하루 주기로 살아가지만 콩나물의 하루는 6시간, 아니 그보다 짧은 3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보았어요. 또 새싹에서 열매까지 꽤 오랜 시간과 시선을 들여 키워야 하는 다른 작물과는 조금 달라서, 무사히 콩나물 요리까지 시도해 볼 수도 있었고요.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애플민트를 키우고 있어요. 주방 창틀에 올려두고 틈 날때마다 흔들어보면서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 마실 날을 꿈꾸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