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때 가장 강하게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그 통제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회피의 형태다.
중독이란 신체적·정신적으로 무엇인가에 의존된 상태이다.
신경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뇌는 쾌락과 고통을 같은 영역에서 처리하며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한다.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지지만,
이는 고통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고대 로마에서 ‘중독자’는 노예를 뜻했다.
기분을 전환시키는 물질이나 관계 등에 강박적으로 몰입하는 중독자의 의식 상태를 의미하며,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존재 — 바로 그것이 중독의 본질이다.
중독이 진행되면 우선 심리적·육체적 갈망이 생기고,
점차 중독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중독적 사고는 낮은 자존감을 근원으로 삼는다.
낮은 자존감은 부정적으로 왜곡된 자아상을 만들고,
이로 인해 자신을 무능하고 ‘사랑받지 못할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중독은 이러한 무능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중독은 흔히 의지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고통을 견디기 위한 선택이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겉으로 보면 자극만을 쫓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심연에는 마주하기 두려운 감정이 존재한다.
중독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통제의 얼굴, 다른 하나는 회피의 얼굴이다.
통제의 얼굴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어.”
이런 이들은 불안하거나 흔들릴 때 더욱 자신을 조이곤 한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중독을 심화시키는 이유는,
그 통제의 이면에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회피의 얼굴은 이렇게 속삭인다.
“이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한 가지 행동에 몰두하면, 마주하기 두려운 상처나 감정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을 마주하기보다, 무감각해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도박, 술, 쇼핑, SNS에 과몰입되는 순간 잠시 행복감을 느끼고,
힘든 감정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고통을 잊기 위해 찾은 위로는 또 다른 고통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중독의 두 얼굴은 다른 형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감정을 다루지 못해 생긴 고통의 왜곡된 표현이다.
누군가는 통제로, 누군가는 회피로 자신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자신을 잃게 만든다.
진짜 회복은 통제나 회피 어느 한쪽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까지 피하고 싶은 걸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고민하는 순간,
중독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얼굴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거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