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인천

청춘을 품다

by 뷰티진

나에게는 3개의 고향이 있다. 태어나서 국민학교 5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상주', 초중고를 다녔던 `서울' 20대에서 30대까지 살았던 '인천'이다. 지금 나는 50대 중반 서울에 살고 있다. 3곳 다 소중하고 좋아하는 곳이지만 나는 20대부터 30대까지 살았던 인천을 좀 더 좋아한다. 내가 혈기왕성했던 20대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었고 재미있었고

행복했던 곳이다.


스무 살이 될 무렵에 우리 집이 가장 힘들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울에서 집을 구할 수가 없게 되어 갑자기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인천에서도'송도'라는 곳이다. 내가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 이제 막 근무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근무 끝나고 엄마가 준 주소로 나 혼자 찾아가야 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서 동인천역까지 90년대 초반에는 거의 1시간 걸렸고 동인천역에 내려서 또 버스를 20분 타고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나는 인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동안은 서울과 인천을 출퇴근하며 생활을 했고 병원에서는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정말 운이 좋게도 인천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천에서의 생활이 1년이 되어갈 즈음에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너 인천에서 월미도가 어디 있는지 알아?"

"아니 몰라."

나의 대답이었다.

"에구! 인천에서 1년을 살면서 월미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를 몰라." 엄마는 내가 1년이 되어가도록 출퇴근만 하고 주말에는 집에서만 기거하고 있는 나를 좀 답답해하며 말했다.


인천에서 새로 입사한 병원은 3교대하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직장이 멀었고 또 업무도 많고 야근도 밥먹듯이 하다 보니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출퇴근 만으로도 하루가 다 갔고 병원은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다 보니 더 그랬다.

어느 일요일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월미도를 갔다. 그때 처음 본 월미도는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앞은 바다 상가 건물들은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지금도 월미도에 가면 있는'예전'이라는 경양식 레스토랑에 가서 나는 함박스테이크, 엄마는 돈가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때 먹었던 함박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그날 이후 조금씩 눈을 돌리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직장의 친한 친구나 동료들과 월미도는 연인이 가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그런 거와 상관없이 정말 자주 갔고 '신포시장' '화도진 공원' '차이나타운' '인천대공원' 등 인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신포시장은 닭강정이 유명해서 자주 갔었고 차이나타운은 마치 옛날중국에 타임머신 타고 가있는 거처럼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송도에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라는 공원처럼 꾸며진 곳이 있고 우리 동네 근처여서 산책으로도 정말 많이 가곤 했다. 그러면서 직장생활도 자리를 잡아갔다.


그 당시 우리 병원은 정말 회식이 많았다. 일주일이 7일이면 3~4일은 큰 회식 작은 회식 이랬었다. 일은 힘들고 많고 야근도 밥먹듯이 했지만 친한 직장동료, 선배들하고 퇴근 후에는 맛집 찾아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볼링 동호회도 가입해서 볼링장도 다니며 힘든 직장생활 속에서 즐거웠던 일들도 많았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하루 종일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직장에서도 월드컵 얘기로 정신들이 없었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 식당에서도 월드컵얘기 퇴근 때는 아쉬워서 카페나 식당에 가서 동료들과 음식들을 먹으며 월드컵얘기만 했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이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고 나도 서울로 부서를 발령받게 되어 서울로 오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인천으로 갈 때가 가장 힘들었을 때라서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그때가 그리울 때가 많다. 인천에서 직장생활 같이 했었던 동료들과 지금까지 한 20년 넘게 모임을 하고 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우리는 그때의 얘기를 많이 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우리들은 나이가 다 들어가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그때의 모습들이 남아 있는 거 같다. 우리 가족은 인천으로 갈 때가 가장 힘들었을 때라서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그때가 그리울 때가 많다. 몇 달에 한번 모이는 이 모임도 많이 기다려지고 모임날에 인천으로 향하는 그날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인천에서의 일들이 카메라 필름처럼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