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자기가 젊었다면 주택 관련 일을 하겠다며 3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조카에게 주택 상하수도든 방수든 조경을 배우라고 진지하게 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주택은 ‘돈 먹는 하마’ 임을 주택으로 이사 온 지 1년도 안 돼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주택은 때마다 계속 손을 봐야 했다. 그리고 별거 아닌 공사처럼 보여도 일단 업자가 오면 돈의 단위가 달라졌다. 그들은 노상 밑지고 해 준다, 인건비도 안 나온다, 등 엄살을 부리지만, 주택 공사는 빼도박도 못하는 수요가 계속 있고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알짜배기 사업임에 분명했다.
작년에 왔던 방수공사 업자가 들어와서 이제는 더 미루면 안 되겠다고 했을 때, 미자는 돈 걱정부터 앞섰다. 작년에 공사하고 싶었지만, 그때도 돈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외벽 방수 공사는 몇 백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미자 부부의 살림으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남편이 아들 강현에게 전화하는 것을 말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강현도 작년에 알고 있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집의 외벽에 방수공사가 필요하다는 것과 미자가 돈 때문에 선뜻 작정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필요하면 해야지, 할 뿐 자세히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오늘 저녁에 집에 들른다고 하네.”
남편의 말에 미자는 마치 젊은 날 면접 일자를 통보받은 때처럼 걱정과 반가움을 함께 느꼈지만, 그도 잠시, 백만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머릿속을 헝클어 놨다.
강현은 분명 부부의 자랑이자 긍지였다. 어려서부터 큰 말썽 없이, 부부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으며 대학까지 잘 마쳤고, 졸업하는 해 시중유명은행 입사에 성공했다. 그 사이 미자 부부 역시,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강현의 뒷바라지에 할 수 있는 힘을 다 쏟았다. 고액개인과외는 못 시켰지만, 유명하다는 학원은 남들 보내는 만큼 보냈고, 부부는 감히 입을 수 없었지만, 아들에게는 시중에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때맞춰 입히고 신겼다.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이었지만, 미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강현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어렵다는 유명은행에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고 감격에 겨웠다. 그것으로 그간의 노력과 애태움과 고생에 대한 보상을 다 받았다고 여겼는데.... 미자 부부의 가장 큰 바람은 그런 숭고하기만 한 부모로 남는 것이기도 했지만...
강현이 들어간 은행은 고액연봉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강현은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만 원짜리 빳빳한 신권으로 백만 원을 하얀 봉투에 넣어 가져왔다. 당연히 부부는 고마움에 감격했었다. 미자가 냉장고가 너무 오래되었으니 네가 하나 사줘라 하니, 얼마나 하는데?, 하고는 그 금액을 별말 없이 미자에게 송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외식을 하면 밥값을 잘 내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면 사주기도 했지만, 먼저 나서서 부모를 챙기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상황을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미자부부는 아들의 월급이 얼마인지, 그 월급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미자는 돈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가능한 꺼내지 않았다. 외식을 할 때도 2번에 1번은 미자가 냈다. 강현은 그런 엄마를 말리는 대신 엄마, 잘 먹었어. 하며 히죽 웃었다. 부부에 대한 강현의 관심이 옅어지는 만큼 아들에 대해 아는 것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지, 제 앞가림하면 되는 거지... 미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끔 아니 자주, 더 늙은 후, 경제력이 완전히 사라진 후를 생각했다. 아들 등에 빨대 꽂는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오르면 혼자 머리를 가로저었다. 부부에게는 아직도 갚아나가는 대출이 있다. 따져보면 그 대출도 강현에게 들어간 돈이지만 강현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결국 부부의 미래를 헐어 아들의 미래를 세워준 셈이었다.
속 모르는 친지들이나 주위 친구들은 부자아들 두고 무슨 걱정이야? 하며 웃었지만, 아들의 부는 부모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강현이 올 시간이 되자 미자는 자꾸 속이 탔다. 강현이 좋아하는 고등어조림이 짠 지 싱거운지도 혀끝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너 천만 원만 보탤래..? 천만 원만 줘라, 천만 원 정도 빌려줄 수 있니? 아들에게 할 말을 혼잣말로 구시렁거려 보았지만, 어떤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현이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안 되었다.
복잡한 미자의 머릿속과는 상관없이 집에 들어 선 강현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전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물론 부모의 안부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엄마, 지금 이 집 얼마나 하나? 나랑 같이 입사한 동기가 이번에 집을 샀대, 그것도 서울에. 지가 모은 돈에, 대출받고 나머지는 집에서 도와줬대”
그리고는 한참 동안 서울의 집 값과 서울에 집을 사 두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고 확실한 투자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도와줬대, 소리만 머릿속에서 공명음처럼 울렸다.
“나는 언제 집 사?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지?”
미자는 아들이 먹기 좋게 고등어 몸통의 굵은 가시들을 빼낼 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남편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