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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딕비 Dec 12. 2022

문과 엄마 vs 이과 아빠

육아에도 문과와 이과의 차이가 드러날까?

얼마 전 막 말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와 함께 남편이 운전 중인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밖은 어둑했고 신도시의 빼곡한 아파트 숲 사이로 달이 보였다.

아이가 물었다. "저게 뭐야아?"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엄마 달이 왜 자꾸 따라와?"라고 물었을 때, "OO가 이뻐서 따라오는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던 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나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건 달이라는 건데, 우재가 이뻐서 하늘에서 계속 쳐다보는 거야."


내가 한 말을 이해해 보려는 듯 곱씹는 표정을 지으며 달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남편이 덧붙였다.

"저건 달이라고 지구 주변을 공전하고 있는 자연 위성이야."






나는 자칭 뼛속까지 문과 체질이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미적분이 등장하자 미련 없이 수포자의 길을 택했다.


공간지각력의 부재로 평생 길치로 살아왔다. 실제로 같은 장소를 다른 방향으로 다시 오면 새로운 장소로 인식한다. 평생 산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다. 나의 이런 모습이 익숙할 법한 측근들 마저 매번 새롭게 놀란다.


영문학과 국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기업 홍보 일을 담당하며 보도자료, 뉴스레터 등 홍보 콘텐츠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아이를 낳고서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남편을 미대 오빠 같은 공대 오빠라고 정의한다.

요리, 사진, 노래 등 나름 감성적인 장기가 많지만 중요한 순간엔 이과적 사고를 발휘한다.


남편의 숙적은 영어다.

수능이 끝나면, 토익 점수가 오르면, 취업을 하면 영어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버텨왔다고 하지만, 영어는 남편의 발목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최근에도 수학 파견 문제로 영어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다.

남편의 발목은 지금 아마 꽤나 너덜너덜한 상태일 거다.


남편은 화학 신소재 전공후 반도체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최근엔 회사 지원을 통해 머신러닝 전공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누구나 문・이과의 차이에 대한 유머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 학교 사생대회 포스터 부분 주제가 AI였는데, 문과생은 조류독감을 주제로 그려가고 이과생은 인공지능을 주제로 그려갔다는 등의 이야기다.


최근엔 tvN의 인기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현한 이과 대표(?) 임두원 과학자와 문과 대표 서지음 작가가 같은 질문에 상반된 대답을 해 웃음을 유발했다.


(이미지 출처: tvN)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표정이 킬링 포인트다.


(이미지 출처: tvN)

서지음 작가의 촉촉한 눈빛과 날리는 꽃잎의 조화가 보는 사람까지 설레게 한다.


이과와 문과의 차이를 다룬 콘텐츠가 꾸준히 다뤄지면서도 여전히 시선을 끄는 걸 보면 이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실감된다.






문과와 이과 사이엔 정말 사고적 차이가 존재할까?


2015년, 도쿄대 인지 신경과학과 히카루 다케우치(Hikaru Takeuchi) 교수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문과생과 이과생 사이 뇌부위 관련 구조적 차이가 있다고 밝힌다.


대학생 49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문과생은 우측 해마 주위의 백질이 이과생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고, 이과생은 문과생에 비해 내측 전전두피질 주위의 회백질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학 박사이자 과학 작가인 다케우치 가오루(Takeuchi Kaoru)는 자신의 저서 '문과생을 위한 이과센스'에서 이과생 대부분 '절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과생은 이론 구축과 실험을 통해 전례 타파를 위해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그런 과정에서 '전부'라든지 '확실'이라든지 '절대'와 같은 완전성을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대부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문(文)'의 어원은 '인간이 만든 무늬'다. 인간과 사회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 즉 지구상에 인간이 사라져 버리면 함께 없어져 버리는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이 '문과'이다.


'이(理)'의 어원은 '돌에 새겨진 무늬'다. 자연계의 원리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즉 지구상에 인간이 전부 사라져 버려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이 '이과'이다.



교육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언어로 표출된다.

우리가 장난스럽게 던지는 문・이과 차이에 대한 농담은 꽤 깊은 학문적 기반에 근거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육아가 내 삶의 8할을 차지했다.

30대의 육아는 20대의 연애처럼 나와 동반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연애할 때도 문・이과적 성향 차이로 다툰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아이가 말이 늘어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나와 남편 사이의 문・이과적 사고방식 차이가 드러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이걸 내 글쓰기 소재로 삼기로 했다.


앞으로 '문과 엄마 vs 이과 아빠' 시리즈를 연재하며 '뼛속까지 문과'인 나와 '미대 오빠 같은 공대 오빠' 남편의 사고방식과 육아 방식 차이가 드러난 에피소드를 소개할 계획이다.


현재 26개월인 아들이 이런 환경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또 각자의 분야가 아이 양육과 교육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꾸준히 공유해 보려 한다.




참고자료

Hikaru Takeuchi et al., Brain structures in the sciences and humanities (Brain Struct Funct., 2014)

한국일보 '문과(文科)와 이과(理科)의 탄생'

다케우치 가로우, 류두진 옮김, <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 위즈덤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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