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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연 Mar 01. 2024

01. 초보의 이끄미

워킹맘의 숨 쉴 시간, 달리기



회사 동기가 사보에 ‘나의 취미를 소개합니다’ 코너를 기획했다며, 달리기에 대한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쯤 된 시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뭘 쓰는지 물어보니, 역도부터 뜨개질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역도같이 독특한 취미도 아니고 뜨개질처럼 아기자기한 것도 아닌데, 달리기에 대해 쓰면 누가 읽을까 살짝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기는 담당자답게, 괜찮으니 자유롭게 써달라고 말했다.


사실 그전까지 사보는 거의 읽은 적이 없었다. 남들도 그럴 테니 부담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동기가 써줄 사람 섭외하느라 고생할 테니 나라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으로 A4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써서 보내주었다.

 

내용은 평범했다. 먼저 팬데믹으로 실내 체육시설이 문을 닫아 야외 달리기를 시작하였다고 서두를 열었다. 물론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대내외적 동기를 구구절절 쓰려면 몇 장이 되겠지만 독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때 갖추어야 할 장비와 러닝 자세를 간단히 설명하고, 런데이라는 달리기 트레이닝 앱을 추천하였다. 런데이는 초보자도 쉽게 연속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트레이닝 앱으로 나도 8주간의 기초 훈련을 마치고 나니 신기하게 쉬지 않고 30분 이상 뛸 수 있게 되었다.


러너들의 바이블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도 찾아 넣었다. 생각나면 한 번씩 읊조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문장이니까 말이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때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내 생각보다 사보는 영향력 있는 소식지였던 것이다.


프로젝트 하나가 원만하게 마무리되어 이사님이 수고했다고 회식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처음 먹어보는 일품진로가 의외로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이사님이 내게 물으셨다. “사보 글 잘 읽었어. 그런데 언제 뛰는 거야? 나도 한번 해볼까?" 꽤 놀랐다. 아, 그렇게 바쁘신데 제 글을 읽으셨다고요. 목차를 보고 본인 직속 직원들의 동향도 살피시는 걸까. 물론 기꺼운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렸다.

      

사보에 글 기고를 부탁했던 동기도 신기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 글을 보고 다른 동기인 수진 언니가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쓴 글을 보고 런데이 앱을 깔고 러닝화를 사고 달리기를 시작했단 말인가. 누군가의 톡 하는 건드림에도 마음이 넘치는 걸 보면 그 언니도 어지간히 답답했나 보다 생각했다.        


나만 보면 "요즘도 달리기 해요?" 하고 묻는 회사 동료도 생겼다. 나는 다른 동료들의 취미를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달리기가 뇌리에 남을 만큼 특별한 운동인가 싶었다. 물론 그저 즐거운 대화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로부터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사보는 나만 안 읽었던 듯 생각보다 주변의 반응은 컸다.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달리는 게 그렇게 신기합니까?” 내가 헬스나 필라테스 같은 실내 운동을 꾸준히 한 걸 아는 사람들도 러닝을 한다고 하면 반응이 사뭇 달랐다. 조금 궁금했다. 자외선 차단에 신경 쓸 것 같은 사람이 사계절 야외에서 뛴다는 게 의외였나, 아니면 다들 본격적으로 건강에 신경 쓸 때라 그랬을까.      


나는 보통의 생활인으로, 부상이라도 입으면 안 그래도 외줄 타는 듯한 워킹맘의 일상에 지장이 갈까 봐 10km 이상은 뛰지 않았다. 매일 뛸 수 있을 것 같은 때에도 무조건 하루 뛰고 하루 쉬는 (하뛰하쉬) 룰을 고집했다. 1년여 정도 하뛰하쉬를 하였으면 욕심을 더 낼 법도 했지만, 무리하지 않는 건 기록을 내는 것보다 중요했다.


전문 러너도 아니고 내공이 깊지 않은데도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달리기에 대해 물었다. 아는 대로 답해주긴 했지만, 고작 한 발 앞서가는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말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었다.


계속 답을 해주다 보니, 오히려 그래서 더 내게 묻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km를 뛰는 울트라 마라토너에게 기초적인 걸 물어볼 수 없지 않을까. 숙련된 러너들은 생초보 때의 어려움은 다 잊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애초에 운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사무직 직장인인 우리와 타고난 몸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거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 의미는 너도 똑같이 회사 다니랴 애 키우랴 사는 거 부대끼는데 어떻게 달리기를 지속하는지, 그게 속풀이는 되는지 경험에서 나온 팁을 말해달라는 게 아닐까. 초보의 이끄미가 꼭 굉장한 고수일 필요가 없다면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러닝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 고수들에게는 당연해서 시시할지라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쓸만한 그런 얘기가 내게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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