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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m Localinsa May 26. 2020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에 진실하기 때문이다

너무 날카롭고 투명하여 삶이 아픈 당신을 위한 생존법

죽는 것만 생각해 버리고 마는 건
살아간다는 것에 진실하기 때문



J-pop 아티스트 나카시마 미카의 2016년 앨범에 발표된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의 노래 구절이다. 노래 속 주인공은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생각한다. 이 차이를 모르겠다면 “죽음을 앞두니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는 문장과 “죽을까 하다가 살려고 하니 어떻게든 살아졌다”라는 문장을 비교해 보면 된다. 전자가 마치 죽음에 대비되는 상태로 진전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표명한다면, 후자는 그렇게 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판단이 되는 것이다. 즉 이 노래는 죽음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편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어지는 판단 또는 선호에 대한 것이다.


이 노래에서 표상되는 "나"는 매사에 쉽게 극단적 우울감에 빠진다. 부둣가에 먹고 살겠다고 떼로 몰려드는 갈매기들, 가혹한 겨울 속 추위를 뚫고 피어난 살구꽃을 보고 죽으려고 생각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상의 풍경조차도 나의 존재를 뒤흔드는 엄청난 하루의 상징이 되고 만다. 어떻게든 생명을 고집하는 역동적인 "생"의 증거들을 보며 떠올린다. 자신은 이 나이가 되도록 충분히 치열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 왔을까?  세상 만물(에 내 우울한 마음이 부여한 상징)들은 “내가 죽으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에 힘을 더한다.


보통보다 예민하기에, 자멸적 성격으로 이어진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오오바 요조는 남들보다 너무도 예민한 감각을 타고 났으며, 다른 사람들은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은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견디지 못해 미쳐 버릴 지경에 이른다.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자신의 예민함을 감추며 삐에로 가면을 쓴 채 살다 결국 20세를 겨우 넘긴 나이에 자살 시도를 한다. 약물과 알콜에 중독되어 각혈까지 이르던 자신에게 가족이 보낸 곳은 결핵 요양소가 아니라 정신 병동이었다. 자신이 정신 병원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요조는 스스로에게 "인간, 실격"이라는 선언을 내린다.


미카의 노래 속 죽으려는 "나," <인간 실격> 의 주인공 요조와 같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본질적 성정 때문에 특정한 과거의 경로들을 밟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좌절시키는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세상에 조화될 수 없는 말썽품이라는 극단적 결론에 가까워진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좌절, 불행, 무쓸모의 연속이라는 지극히 우울한 생각. 예민하여 우울한 우리는 자연히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Photography by Jinwhan Shim (c) 전서은


죽지 못해 어떻게 산다 해도 많은 예민쟁이들의 삶은 너무도 불편하고 불행하다. 소설 속 요조는 망가져 있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가르쳐 준 여인이 단골 고객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처럼 주변에 극단적인 사건이라도 발생한다면 예민한 자신을 솔직히 드려내고 지원과 존중을 받으려는 것마저 사치이고 안일한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해버린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에드거 앨런 포, 빈센트 반 고흐 등 세기의 예술가들 중에 술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자멸적 루트로 빠졌던 위인이 괜히 많은 게 아니다.



민감해서 힘들더라도, 닥치고 그냥 살면 안돼?


사실 과거의 불행이 어떻든간에 어떻게든 산다는 선택지를 택할 수도 있다. 오늘의 내가 실격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오늘의 선택을 과거와 다르게 한다면 미래에는 지금의 좌절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 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전면으로 부정되어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을 사는 방식을 바꾼다는 건 과거의 행동으로 인해 현재의 내가 세상의 필요에 부적격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쿨하게, "잘못된 삶을 살았던 거지"하고 넘기기에는 과거에 나의 진심과 열정들은 너무도 진실했다.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를 모두 끊어냈다.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마음을 비웠지만 그 결과, 새로운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다. 새롭게 무언가를 채워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생존하기 위해 체득한 냉소와 초연함은 나를 괴롭게 한다. 이미 나는 과거에, 지독히도 열정적으로 타올라서 일반적인 사람의 그것을 뛰어 넘는 사랑이란 그릇의 용적을 지니고 있으니까. 사랑에 배고픈데, 더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다.


Photography by Jinwhan Shim (c) 전서은


예민한 개인은 생각보다 매우 많다

 

너무나 투명하고 민감한 신경, 지나치게 비관적인 사고방식, 남들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느끼는 외로움.... 내 얘기처럼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혼자가 아니다. 민감한 신경을 타고난 개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뉴욕주립대 교수인 일레인 아론 박사는 25년 간 민감한 성격을 연구해서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을 정립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HSP는 무려 전체 인구 5명 중 1명에 달한다.


그런데 예민함 때문에 살아갈 자신이 없을 정도로 힘겨운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위에서 말한 지나친 섬세함과 예민함은 개개인마다 다양하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 따라, 성인이 되었을 때 부끄러움, 소극성, 불안감, 매사에 신경질적인 성격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증상을 통틀어 "감각 처리 예민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라고 칭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자살이나 자학적 충동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즉, 너무도 날카롭고 투명한 성정 때문에 좌절스러운 순간들을 겪었고, 그 결과 우울함과 트라우마, 삶에 대한 무기력함이 생겼다고 자신이 잘못된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민감한 성질 자체를 타고난 사람은 나 말고도 세상에 분명 살아들 가고 있다. 오로지 나만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그저 운이 조금 나빠 실패와 좌절을 더 많이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 더 민감한 탓에 그러한 실패를 마음에 더 깊이 각인한 탓일 지도 모른다.



예민하다는 것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앞서 "극도로 민감한 사람"의 개념을 정립한 아론 박사에 따르면, HSP의 특성을 지닌 사람은 신중한 일처리 능력, 공감능력, 직관 등에서 매우 뛰어난 경향이 있다. 이런 특성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직종에 따라 무척 선호되는 능력이다. 고위직이라면 뇌물과 같은 반정의적 행동에 얄짤 없이 No를 외칠 수 있고, 상담의라면 환자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돌볼 수 있으며, 예술가라면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영감을 얻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예민함을 유용하고 생산적인 특성으로 승화해,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비단 직업에서만이 아니다. 심리학 교양서 중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에서도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감각 과민증을 지닌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세상의 너무도 다양한 정수를 누구보다 진실하게 느끼고 흡수할 수 있는 축복을 지녔다고 말하기도 한다.


똑같이 여행을 해도 그곳에서의 기억이 오래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고, 똑같이 음악을 들어도 삶을 살아갈 희망이 되며, 똑같이 음식을 먹어도 천국을 맛볼 수 있고
똑같이 연애를 해도 나는 타이타닉 속 잭과 로즈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몰랐겠지만 (필자도 오래도록 몰랐지만) 남들은 이렇게 안 하는 게 아니라, 절대 이렇게 못 한다.


Photography by Jinwhan Shim (c) 전서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직 당신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당신같은 사람이 태어난 세상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
당신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 조금은 기대를 해 볼게



나카시마 미카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노래 속 "당신"이 누구일지는 해석에 맡긴다. 나를 상처입힌 걸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사과했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우울하고 예민하지만 아름답고 열정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여줄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내면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삶의 모든 측면에 진실하고 거짓없는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걸, 살아있다면 그 누군가 혹은 내 자신이 언젠가는 인정하고 사랑해 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살아있다는 데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마지막 노래 구절 때문에 미카의 이 노래를 희망의 노래로 많이들 기억하고 생각한다. 나의 진실함을 있는 한껏 발휘하면서도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아직 이 세상에 꺼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삶의 모든 측면에 진실하고 거짓없는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생각이 있다면 아직 세상과의 끈은 놓지 않은 셈이다.


내가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나 자신 그리고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든 발견하고 싶다. "나"는 사랑받고 싶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너무도 사랑을 주고 싶어 목말라 있다. 이 점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의 자화상을 투영하는 것 같다.


Photography by Jinwhan Shim (c) 전서은


"죽는 것만을 생각해 버리는 건 살아간다는 데 진실하기 때문이야." 이 노래에서 모든 걸 잊더라도 저 역설적인 한 구절만을 기억해도 좋다. 열심히 진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당신은 우울하고 죽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치열한 진심으로 살았던 당신을 분명 당신(의 일부), 그리고 당신을 지켜 본 누군가는 기억한다. 현실을 헤쳐가며 살아가는 데 누구보다 최적화돼 있지만 내면은 이미 죽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당신은 더 인간적이다.


그런 당신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본 글에서 "HSP"에 대한 내용은 "몹시 예민하지만 내일부터 편안하게"(나가누마 무츠오 지음, 이정은 옮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해당 책에서는 "과민성 까칠 증상"의 52가지 유형을 간략하게 한 장으로 설명하며 유형별 파훼법을 개조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글, 모델: 전서은(Pendy) / 사진: 심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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