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는 단어에 대한 솔직한 끄적임
언젠가 꼰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세워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잊어버렸지만, 그 날따라 내가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렸던 하루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그 날 휴대폰 메모장에 이런 문장을 적어봤다.
고착화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타인의 의식 및 행동을
재 정의하려는 행동이나 사람
그때부터 약 3년 정도 지난 지금, 다시 문장을 곱씹어보다가 몇몇 단어와 조건들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는
고착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타인의 의식 및 행동을 비판, 비난하며
이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 정의하려는
행동이나 사람
이것이 바로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꼰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삶의 명확한 기준점을 잡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백 배 나을 것이라고"
물론 그건 나도 동의한다.
주관적인 판단력과 생각이 명확하게 잡혀있어야 소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그 소신과 판단은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스스로에게 제한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위험한 결과가 예상되는 외부의 유혹이 닥쳤을 때, 그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바로 소신인 것이다. 이처럼 나의 생각과 주관, 소신 같은 것들은 그 방향이 온전하게 나를 향해 있을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형성된 생각과 주관, 소신을 바탕으로 누군가와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가진 것들이 당신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지향점에 그 사람이 많이 모자라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결코 아니다. 백 번 물어도 나는 백 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지향점이 각자 다른 것일 뿐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평생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고, 결국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방법이 어떻든). 그러나 그 사람이 보는 사람들, 돈을 모을 생각 없이 조금의 여윳돈만 생기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요즘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노후를 생각하지도 않고 지금 당장의 즐거움만 쫓아다니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처럼 하찮게 보인다.
당신은 이 짧은 이야기의 주인공과 그가 바라보는 사람들이 틀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당신이 지향하는 삶이 다른 사람의 그것이 다르다는 건, 받아들여야 할 상식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는 삶을 틀리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뿐이다.
이 생각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강요처럼 들릴 수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반박한다면 그마저도 OK다. 충분한 근거를 들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것은 나 또한 인정하는 바니까.
자유를 넘어 방종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의견은, 일반적인 상식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 상식에 반하는 삶이 낙오자 취급받는 경우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과 모두의 생각이 다른 사회에서 나와 다른 이를 쿨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대사를 빌어 한 마디 얘기하려 한다.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