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복이 온다더니

1. 프롤로그_가슴을 잘라냈습니다

by 붱맛스튜디오

12월. 고요한 오동도를 수면 위로 들어올린 여수 바다. 그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모든 게 꺼져가는 것이 아닌, 잠시 등을 돌리고 집 안으로 향하는 느린 발걸음의 노을이었다. 아주 잠시, 울렁이던 속이 가라앉았다.

내 에너지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고, 가라앉고 있는 나를 누군가 떠올려주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폐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생각들이 끊이지 않는다. 뭉터기의 가래가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것처럼.
"하, 시발."


속되고 걸쭉한 욕설을 내뱉어 본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엄마를, 느긋한 남친을, 공감 능력이 거세된 것 같은 주변 친구들을, 그리고 착하고 관용 넘치는 삶을 살아오는 척해온 나 자신에게 배덕감을 느낀다.


30대 후반. 암을 진단받고 주변에 사실을 알려야 했을 때 속내는 하나였다. 이제 더는 당신들의 지리멸렬한 하소연을 들어줄 만큼 내가 든든한 상황이 아니니 당분간 나를 차단해달라는 선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로'라는 말로 공격해왔다.


"아주 심한 건 아니니 다행이지."

"항암 안 하는 게 어디야."

"나 조직검사 하는데 나도 암일까봐 걱정이야."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는데,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네요. 의사가 무리하지 말래서 육아휴직 내려고요."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언어들이 고막을 때릴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상피내암. 0기.' 그 숫자 제로가 주는 가벼움이, 항암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타인의 확신이 나를 난도질했다.


대체 무엇이 다행이라는 걸까. 연습용 바구니에서 야구공 쏟아지듯 쉽게 던져대던 위로들.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너가 힘들까봐 연락 못 했어"였다. 그러면서 단체 카톡방에서는 자신의 작은 시술과 조직검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불안하다며 온갖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시발, 나는 한쪽 가슴을 잘라냈다고.
마음이 힘든지 누군가 물어올 때, 신체의 고통 앞에서는 마음을 느낄 수 없다고 답했다. 슬플 겨를조차 없어져 이대로 소시오패스가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아질 거야, 아물 거야. 그 마음으로 겨우 정신줄을 매었을 뿐이었다.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사회는 상대적인 시선의 화법을 좋아한다. 불행을 보며 감사하라고, 긍정을 강요한다. 남을 배려하고, 싫은 소리를 참고, 조직에서 내 몫을 해내며 꾸준히 '좋은 사람'의 지표를 쌓다 보면 인생이 보답할 거라고 세상은 말한다. 아주 모범적으로, 성실히 참아왔다. 나쁜 생각도 꾹꾹 눌러가며. 강제적 긍정으로 나에게 철갑을 둘렀다. 그리고 세상이 나에게 보낸 답장은 암이었다.


목구멍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짓눌렀다. 묻고 싶었다. 지금 이게 네 상황이라면. 너도 그 따위로 말할래?


나는 결혼과 육아를 다 마친 뒤나 은퇴 후에 이 소식을 맞이한 게 아니었다. 인생에서 미뤄왔던 거사들을 앞둔 채로, 커리어로나마 정점을 찍어야 하는 과중한 인생 과제 한가운데서 이 철문을 마주했다. 남들이 주말 브런치를 즐기며 여유를 부릴 때, 나는 신체의 일부를 쓰레기통에 버릴 준비를 하며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에서 깨면 새로운 사람이 될 거다는 다짐을 해본다. 더 이상 영혼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


수술 후 옆구리에 피주머니를 차고 거울 앞에 섰다. 한쪽 눈을 질끈 감은 듯 비대칭이 되어버린 몸. 터져 나오는 울음을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내 가슴을 앗아간 건 암세포였지만, 내 삶을 갉아먹던 건 암보다 무서운 '착한 사람 코스프레'가 아니었을까.


가슴 하나를 잃고 나서야 나는 결심했다. 잘려 나간 살점 대신, 내 마음은 전혀 다른 길을 향해 돋아났다.


"이제 착한 척은 그만두겠습니다. 힘들어서 못 해 먹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