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찍- 젖 나올 구멍에서 피가 샌 날
의사가 무심한 목소리로 수술 절차를 읊을 때, 머릿속에는 단 한 문장만 맴돌았다.
'아, 나 진짜 망했나.'
섣부른 희망 따위는 건네지 않는 의사 앞에서, 나는 멍하니 병원 벽의 얼룩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람들은 처음 발견을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시작은 속옷에 묻어난 아주 작은 핏방울이었다. 처음엔 어디 긁혔나, 아니면 피지가 터졌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횟수가 잦아지니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가슴을 한번 꽉 움켜쥐어 보았다.
찍—.
젖이 나와야 할 유두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눌렀다.
찍—.
장난감 물총에서 나오듯 힘차게 뻗는 핏줄기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기분이 싸해졌다. 지금처럼 오픈소스 AI가 없을 당시엔 네이버 검색창이 내 주치의였다.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유관암’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화면을 채웠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당장 조직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예약했다.
의사는 길쭉한 갈고리 같은 기구를 들고 오더니, 돼지고기 살점 떼어내듯 '탕, 탕' 총 쏘는 소리를 내며 내 살점 여러 군데를 쏘아댔다. 영화 <옥자>를 보면 어떤 느낌인 지 알 거다. 비명도 안 나왔다. 이런 무식한 기계 같으니라고!
조직검사 당일 나는 연차를 쓰고 '호캉스'를 간다고 둘러댔다. 진짜 호텔을 예약했다. 조직 검사 후 호텔 침대에 누워 욱신거리는 통증을 안고 밤새 끙끙거렸다. 비싼 돈을 뿌려놓고 고통에 절어 잠만 자다니. 이건 호캉스가 아니라 아주 고급진 '호스피탈(Hospital)'이었다.
2주쯤 지났을까. 친구와 딤섬을 먹고 있었다. 마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는 원장이 곧 직접 전화를 할 테니 꼭 받으라고 했다. 대개 문제가 없으면 문자로 통보하는 게 일반적인 법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곧이어 원장이 전화했다.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됐어요. 상피내암으로 보이긴 하지만,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기가 세 보이던 여자 원장은 어색하게 안쓰러운 연기를 섞어가며 의뢰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눈앞의 딤섬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대학병원에 가기 전, 나는 사고를 친 아이처럼 부모님을 앉혀두고 고백했다.
"음, 근데 있잖아. 나 병기가 낮은 것 같긴 한데, 유방암 이래."
충격을 받은 엄마는 횡설수설했고 아빠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채운 채, 슬픈 소처럼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순례. 30대라는 젊은 나이 때문에 앤젤리나 졸리가 받았다는 브라카(BRCA) 유전자 검사도 병행해야 했고, 유방 확대 촬영술과 MRI를 찍어대며 몸을 훑었다. 유방 확대 촬영술은 모든 성인 여성들이 경험했을 법한데, 치욕스럽다.
가슴이 크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등 뒤에서 간호사가 등에서부터 가슴까지 살을 모아 모아 기계가 유방을 찹쌀모찌 짓누르듯 꽉 잡고 검사한다. 마치 벽에 온몸을 딱 댄 것처럼 벌거벗은 상체는 부족한 가슴 살을 앞으로 모아내는데 온 역량을 집중하고, 내 고개는 처량하게 꺾여있다.
찍—.
흰색 유방촬영술 기계에는 내 유두에서 나오는 피가 사방으로 튄다. 저걸 닦아야 하는 간호사에게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어머머’를 남발하며 괜한 호들갑을 떨게 된다.
대학병원 두 군데에서 동일한 진단이 내려졌다. 0기 상피내암.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다. 한마디로 여성호르몬이 과다한 상태인 것이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은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약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암세포가 넓게 퍼져 있어 오른쪽 유방을 '전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예후가 좋다고 한창 말하더니 대신 다 잘라낸다고?
한 의사가 내 가슴 상태를 이렇게 비유했다.
"0기이긴 하지만, 환자분 가슴은 암세포가 자라기 너무 좋은 '감자밭' 같은 환경이에요. 언제 어디서 감자 씨앗이 툭 터져 나올지 모르는 거죠. 6cm가 넘는 부위에 퍼져 있어서 부분 절제는 안 됩니다. 통째로 밀어내야 해요."
내 몸이 감자밭이라니. 귀여운 비유라고 생각하면서도, 환자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의사의 노력이 오히려 딱하게도 보였다. 결국 나는 내 지분으로 된 감자밭 하나를 통째로 폐기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다. 엄마는 의사 앞에서 결국 꺽꺽거리며 울음을 터뜨렸고, 간호사는 익숙한 듯 조용히 티슈를 내밀었다.
의사들은 마치 여러 번 읊어 외워버린 시 구절을 낭송하듯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공감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밀려오는 혼란 때문에 어떤 절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사들은 어차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환자들 반응에 익숙해 보였다. 그들은 기다려주는 대신,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기계적으로 쏟아냈다.
10여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병을 얻고 다시 치료하는 데 쓰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수술대 위에 올라갈 준비를 하나 둘 씩 했다.
경력 입사 1년 반. 들어가는 데만 5개월이 걸린, 나름 간절했던 회사였다.
당장의 커리어도 걱정이었지만, 이 상황을 남자 리더들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곤혹스러웠다.
"저, 유방암이래요."
너무 직설적인가 싶어 다른 말을 생각해본다.
"저, 가슴에 문제가 있대요...?"
"상체 어느 부위에 암세포가 있다 합니다..?"
하필 부위 이름도 참... 유방이라니, 좀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