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샤갈, 가슴이 없어졌어요!

3. 책임감이라는 독

by 붱맛스튜디오

책임감은, 내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때 가장 매혹적인 독이 된다. 5개월의 과정 끝에 간신히 움켜쥔 새로운 직장이었다. 이직 후 1년 반 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와 신뢰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까 봐, 암이라는 선고보다 ‘병가 보고’가 내게는 더 큰 고역이었다.


아마도 일도 사회생활도 잘하는 이미지로 남고 싶었던 것 같다. 남자 리더들은 예상대로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며 당혹스러워했다.

나는 회사와 동료들에게 큰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미안함을 상쇄하려 더욱 악착같이 인수인계서와 마무리 업무에 매달렸다. 겨우 두 달의 공백일 뿐인데 병가 신청, 산정특례 등록부터 보험 처리까지, 한 달 내내 이직 서류를 준비할 때보다 더 바빴다.

내 휴대폰 최신 목록은 병원 상담원과 HR 담당자들의 번호로 채워졌다. 챙겨야 할 서류는 보고서 더미보다 높게 쌓였다. 그 와중에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괜찮아”였다. 나를 보고 어쩔 줄 모르는 동료들 앞에서 오히려 밝게 웃으며 그들을 다독였다.

진짜 괜찮았냐고? 그럴 리가. 스트레스로 불면의 밤은 늘었고 소화불량은 일상이 되었다. 의사는 수술 전 너무 많은 정보를 찾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밤마다 유튜브를 뒤졌다. 그러다 문득 밀려오는 공포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회적 가면을 유지하느라 억눌렀던 두려움이 밤마다 터져 나왔다.

첫날의 입원실은 특실로 예약했다. 특실과 6인실만 남아있는 상황에 간병할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에둘렀지만, 사실 20대 시절 6인실에서 겪었던 옆자리 할머니의 소동과 눅눅한 침대의 악몽으로부터 단 하루만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지극히 날 위한 마음이었다. 이 와중에도 겉으로 '착한 딸' 게이지를 챙기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특실은 쓸데없이 넓었고 소독약 냄새 섞인 냉정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손목에 놀이동산 이용권 같은 종이 띠를 두른 순간, 의사들이 들이닥쳤다. 가슴에 도안을 그리는 사람, 차트에 뭔가를 휘갈기는 사람,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수백 개의 문항지를 내미는 사람까지. 나의 고통이 의학의 진보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호기로움으로 기꺼이 사인했다. 의료진의 감사하다는 인사에 지나치게 밝게 웃으며 답하는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밀려왔다.

‘또 성인(SAINT) 병인가.’

수술 당일, 수술실 문 앞에서 오열하는 엄마를 뒤로한 채, 나는 ‘수리 공장’의 부품처럼 수거되었다. 은행 번호표를 쥔 듯 무기력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스무 명 남짓의 환자들은 식욕 잃은 좀비 같았다. 누구는 가슴을 열고, 누구는 다리를 고치는 거대한 공정 라인에서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스티븐 킹 소설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난 차가운 철제 수술대 위에 누웠다. 11월 중순의 냉기가 환자복을 뚫고 들어와 소름이 돋았다. 춥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옷이 훌렁 벗겨졌다. 사회에서 그토록 책임감 있게 굴었던 나는 이곳에서 그저 벌거벗겨진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입에 마취 호흡기가 씌워지고, 천장의 이질적인 자연 풍경 사진을 마지막으로 비로소 깨달았다.

책임감은 이곳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눈을 떴을 때,
나의 가슴 한쪽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 대단한 지방 조직도 아니었건만, 암석 절벽처럼 깎여 내려간 자리 너머로 배가 훤히 내다보였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밈을 빌려 그때의 충격을 표현해 본다.

이런 샤갈, 가슴이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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