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조차 참는 것이 미덕이려니

4 원시성이 넘쳐나는 입원 기간

by 붱맛스튜디오

암 수술 방법은 사전에 들었던 것보다 투박하고 원시적이었다. 넓게 퍼진 암세포 때문에 전체를 들어내고 피가 솟구치던 유두까지 없애야 한다기에 엄청난 첨단 기술이 동원될 줄 알았더니, 실상은 상한 고기 부위를 잘라내듯 깨끗하게 절제하는 식이었다. 레이저나 로봇 기술이 판치는 시대에, 유부 주머니에 당면 소 채워 넣듯 확장기를 집어넣고 본드로 붙여 마무리하다니.

수술은 다섯 시간 남짓 이어졌다.


가슴을 잘라낸 뒤 아무것도 없이 질끈 감은 듯한 평평한 한쪽 가슴은 기이했다. 상처와 연결된 피주머니(배액관)는 마치 몸속의 장기를 밖에 꺼내 걸어둔 것처럼 흉측했다.


수술 후에도 이런 투박한 시술 일정은 계속 됐다. 나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확장기 식염수 주입’ 시간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인공 가슴을 만들기 위해 수술한 가슴에 넣은 확장기 주머니에 식염수를 넣어 강제로 살을 부풀리는 작업이다. 살갗이 늘어나는 느낌은 마치 전신에 치아 교정기를 끼운 듯 팽팽하고 뻐근했다. 이름이 호명되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시술실 앞에는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퀭한 환자들이 줄지어 30분 넘게 대기하고 있었다. 긴 대기 끝에 마주한 레지던트 의사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 살갗 밑 자석을 찾아 주사 바늘을 퍽 꽂았다. 식염수가 밀려 들어오는 고통에 손바닥 땀으로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속으로는 쌍욕이 올라왔다.


‘야! 살살해!!! 이 어린놈의 쉐끼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통증이었는데 몸을 아주 살짝만 뒤척여도 갓 잘라낸 상처 위에 뜨겁게 달군 놋그릇을 엎어놓고 벅벅 긁어대는 느낌이었다. 고통이 한계치를 넘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저 '헛' 하고 짧은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수술 첫날밤이 가장 고비였다. 침대 밑으로 몸이 꺼지는 것 같다가도, 거대한 통증의 구름이 나를 공중에 매달고 휘젓는 것 같은 섬망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요의(尿意)가 느껴지는 건 또 무슨 신의 장난일까.


오줌 마렵다는 말조차 할 기운이 없어 엄마를 쳐다봤다. 며칠 밤을 새운 엄마는 긴장이 풀렸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소파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특실 소파는 왜 환자 침대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지. 특실이 쓸데없이 넓다는 건 정말 쓸모가 없어서다.


낙상 방지 침대 프레임을 톡톡 치고,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줴에액(Jack)..."을 부르듯 애탄 쇳소리로 불러봐도 소용없었다. 리모컨을 쥔 손가락 하나에 온 힘을 실어 TV 볼륨을 마구 올렸지만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참을 것인가, 힘을 뺄 것인가. 방광과 뇌 사이의 처절한 혈투가 한참 이어진 뒤에야 엄마는 벌떡 깨어 달려왔다. '지릴 뻔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모양이다.


입원 중 다인실로 옮겨진 뒤에도 수치심은 수시로 나를 공격했다. 핏기 없는 몰골로 휠체어에 앉아 병동을 산책할 때면, 땀에 절어 쿰쿰한 냄새가 나는 환자복이 나를 증명하는 전부인 것 같아 괴로웠다. 샤워는커녕 머리도 못 감은 채 사흘이 지나자 몸에서 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품 샴푸로 머리를 좀 감겨달라 엄마에게 부탁했더니, 거품 향기와 악취가 섞여 더욱 기괴한 냄새가 났다.


드디어 정식으로 머리를 감던 날, 나는 의사에게 외쳤다.


"교수님, 저 너무 행복해요!"


인간의 행복이란 이토록 사소하고 원시적인 결핍에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가장 서러웠던 건, 이 지옥 같은 순간에도 나는 옆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 봐 신음 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옆 자리 보호자는 반대였다. 환자의 남편이었는데 간병이 힘든 건지 일이 힘든 건지 잘 때마다 코도 심하게 골고 잠꼬대도 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지 그의 입에선 “이 쉬바아알~~’ 하고 욕이 새어 나왔다.

어느 날 그 보호자는 자다가 정말 시원하게 방귀를 뀌었는데, 봉창 두드리는 듯한 큰 소리에 놀라 나도 깼다. 환자인 아내는 더 놀랐는지 “아이코!” 짧은 비명을 질렀다.


보호자의 자유로움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방귀조차 참느라 속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지독한 허무를 느꼈다. 육체의 암보다 더 깊이 뿌리내린 '배려라는 이름의 자해'.


그 밤, 내가 필사적으로 방귀를 참았던 건 나의 마지막 자존감이었을까, 아니면 미덕이라 믿었던 미련한 습관이었을까.

병실 문턱을 넘는 순간 인간의 품위가 휘발된다지만, 나는 끝내 ‘착한 환자’라는 가면도 벗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몸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리하게 억눌러온 스트레스는 독이 되어 전신으로 퍼졌다.


나는 퇴원 후 몇 개월 뒤부터, 온몸에 붉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생전 없던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다. 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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