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번의 낙방 끝,
날 입사시켜준 '고마운' 직장

5. 직장에서의 빌런들

by 붱맛스튜디오

퇴원 후 내 몸은 수술보다 더 격렬하게 항의를 시작했다. 얼굴부터 목, 손까지 두드러기가 돋아났다. 눈이 퉁퉁 붓는가 하면 입술 주변이 립스틱 바른 것처럼 붉어지고, 목에 지도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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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감정이 살갗을 뚫고 나온 것처럼 온몸은 가려웠다.


그런데도 내 손은 습관처럼 노트북으로 향했다. 병가 중에도 메신저 단톡방을 보고, 혹시 밀린 메일은 없는지, 중요한 내용을 놓치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몸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복직 후 멀쩡한 척 일하던 중에도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맞은편에 앉은 한 남자 동료가 나를 보고 너무 당황해한 적이 있다. 알레르기로 한쪽 눈이 부어가던 날, 나도 모르게 윙크하듯 눈을 찡긋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지독한 책임감이 직장의 빌런들을 양성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었다. 직장생활에서 ‘성격 좋은 직원’의 가면을 두껍게 썼다. 내가 밤을 새워 일할 때 상사는 당연하게 팀원들 야식을 배달하게 했고, 후배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들은 척했다. 난 매번 야식을 배달했다. 이용당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기보다, 눈치를 채고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스라이팅 늪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내 몸에 핀 붉은 꽃은 어쩌면, 나를 서서히 죽여가던 조직의 독소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다.


이 체질 변화를 말하려면, 조금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때 적어냈던 '기자'라는 꿈은 대학 전공 수업 앞에서 예고 없이 무너졌다. 수능을 두 번 치르고 논술까지 보며 어렵게 들어온 신문방송학이 이런 건가. 낯선 사람 앞에서, 발표 단상 위에서는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가 되어버리는 나 같은 성향에게 경찰서 취재와 같은 과제는 지옥 경험이었다. 첫 과제에서 난 보기 좋게 C를 받았다.


‘돈 안 되는 공부’만 한다는 엄마의 타박을 뒤로하고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했다. 질문을 쫓는 동안 나는 집에 가는 길을 찾은 패잔병처럼 잠시 화색을 되찾았다.


취업 시즌이 닥쳤을 때, 금융위기가 터졌다. 엄마 말대로였다. 현실은 냉혹했다. 다시 대학원이라는 안전한 핑계 속으로 숨어들었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합리화로 2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이미 '나이 많은 신입'이 되어 있었다. 가방 끈 길고 정치권 인턴 경력의 이십 대 후반 여성 신입을 반기는 회사는 없었다. 서류만 50군데 넘게 떨어졌다. 컨설팅 회사, 광고 회사, 출판사, 공공기관, 심지어 꿈에도 없던 여성복지기관까지 닥치는 대로 써댔지만 결과는 늘 ‘불합격’이었다. 나중에는 해탈에 이르러 기업 이름만 바꿔내기도 했다.


일반 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라는 현실 앞에서 슬그머니 과거를 미화했다.

“아 참, 내가 원래 기자가 꿈이었지.”

그렇게 뒤늦게 뛰어든 언론사 지원 끝에 잡은 자리는 어느 월간지 인턴이었다.


월급 70만 원. 식비 0원. 교통비 0원. 야근비도 역시 0원. 거의 무급에 가까운 열정페이였지만, 나는 광탈의 지옥을 유예시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돈을 안 준다고 해서 업무가 유의미했던 건 아니다.

기획, 섭외, 취재, 마감까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사지의 일상. 마감 때 자리에 앉아있다 보면 선배들이 불러냈다. 담배를 태울 때건,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건, 술이 당길 때건.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소위 ‘선배’들의 신세 한탄을 끄덕이며 들어주는 일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예스러운 문화를 간직한 그 직장에서 나는 기어코 1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누군가의 비극을 기사화하는 동안 정작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듣지 못했다. 50번의 실패 끝에 얻은 자리였기에, 그저 ‘입사시켜 준 고마운 회사’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했다. 나의 곰 같은 ‘우직함’과 몸 무게만큼 무거운 ‘책임감’은 그들의 가장 달콤한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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