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크림보다 싼 노동력

6. 좋은 사람은 부리기 더 편하다

by 붱맛스튜디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의 먹잇감이었다.

일은 늘 부탁하는 얼굴로 시작됐다.

"이거 한 번만 봐줄래?"

"네가 많이 해봤잖아."


그게 심부름이건, 업무에 관한 것이건 그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며 선배와 후배의 자연스러운 역할이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 나는 무디고 우직한 애였다.

시키면 하고, 싫어도 티 안 내고, 웬만하면 웃어넘기는 사람. 회의실 정리, 땜빵 잡무, 야식 주문, 마감 직전 뒷수습까지 전부 내 몫이 됐다.


나이 든 막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야근할 때 메뉴 주문은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만큼 복잡했다. 누구는 도시락, 누구는 김치찌개, 누구는 햄버거. 메뉴만 제각각일까.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패티부터 소스와 사이드 메뉴까지 깐깐하게 주문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저녁 업무 시간은 알차게 까여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성실함보다 ‘부리기 편한 사람’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꽤 오랫동안 생활 밀착형 노동을 담당하는 무수리처럼 기능했다.


기자 시절 만난 한 여선배는 '호구 레이더'를 누구보다 빨리 간파한 사람이었다. 립스틱을 늘 진하고 두껍게 바르는 그는 늘 목에 뭔가를 걸친 것처럼 인위적인 나긋한 말투를 썼고 교양과 천박함 사이 어딘가에서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 했다.


비극적 이게도 그 선배에게 배운 건 업무가 아니었다. 그는 밤 시간에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 이야기와 비극적인 과거사, 자기를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한탄을 쏟아냈고, 난 후배라는 이유로 긴 통화를 끊지도 못한 채 듣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면 내 밤은 늘 누가 훔쳐간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일할 때 여성성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해."


주변에 남자들이 많은 문화에서,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며 건넨 그의 조언이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회에서의 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곧잘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취재를 할 때면 옷이 더욱 얇아졌고, 술자리에서 부장 허벅지에 손을 올리거나 등을 쓸어내릴 때 난 시선을 피했다.


저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내가 유난인가, 말을 꺼내는 순간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내가 되는 건 아닐까.


조직은 늘 그런 식이었다. 누군가 선을 넘으면 제지하는 대신, 못 본 척하며 분위기로 눌러버렸다. 침묵이 반복되면 사람은 자기가 잘못 느끼고 있다고 믿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남자 선배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길들였다. 그들은 늘 “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했다. 보호가 아니라 가스라이팅의 예고편에 가까웠는데 말이다.


술자리는 거의 정기 구독 서비스였다. 선배들의 하소연을 듣는 건 기본 업무 중 하나. 회사 욕, 세상 욕, 자기 연민, 젊었을 때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한 서사가 몇 시간씩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꼭 “나 덕분에 네가 배우는 거야”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귀가 윙윙 울렸고, 몸은 멀쩡한데 기분만 심하게 더러워졌다.


처음엔 다 그런 줄 알았다. 선배의 보호 아래 있다고, 이 바닥을 버티려면 이런 시간도 감내해야 한다고.


또 다른 선배에게는 소중한 주말을 바쳤다. 거절하지 못한 결혼식 스냅 촬영. 굶어가며 몇 시간째 그들의 행복을 취재한 대가는 신혼여행지에서 사 온 핸드크림 세트였다.

본인이 샤넬백을 공수해 왔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건네준 고마움의 표시가 딱 거기까지였다. 내 반나절 노동력은 핸드크림 한 통보다 쌌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됐다.

난 그저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그들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수단이었다는 걸.


나에 대한 그들의 모든 태도는 대개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써도 넌 남아 있겠지’라는 오만에 가까웠다.


웃기고도 비참한 건, 그런 상황에 내가 점점 더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불쾌한 말을 들어도 웃는 타이밍을 알게 되고, 성희롱성 농담이 나와도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리고, 누군가 선을 넘으면 문제를 지적하는 대신 분위기를 수습하는 쪽을 먼저 택하게 된다. 좋은 후배로 남는 기술은 빠르게 늘었고, 그만큼 나는 더 편리한 사람이 되어갔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은 갑옷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누가 봐도 쉽게 부릴 수 있다는 명찰에 가까웠다.


시간이 흘러 만난 후배는 참 멋지게도 이를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이 구조를 훨씬 세련되게 활용했다. 난 후배에게도 편리한 도구였다.


처음엔 싹싹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애교도 많았다. 어느 정도 지나니 본색은 드러났다. 어려운 일이나 귀찮은 일은 슬쩍 내 쪽으로 밀어놓고, 눈에 잘 띄는 일만 본인이 챙겼다. 내가 정리하고 메워놓은 결과물 위에 자기 이름을 자연스럽게 얹는 재주가 있었다.


더 불쾌한 건 태도였다. 필요한 사람에게만 잘하고, 아니면 대놓고 하대하는 선민의식이 노골적이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실력을 평가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난 나한테 필요한 사람한테만 잘해. 선배도 그중 하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 앞에서 화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필요한 사람'이라 불러준 것에 안도하며 더 정성껏 뒤치다꺼리를 했다. 그 친구가 바쁘다며 인쇄를 부탁해도, 아프다며 잡무 뒤처리를 미뤄도 꾹 참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특별한 괴물이어서 내 삶을 갉아먹은 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오래 받아주었고, 너무 오래 웃었고, 너무 오래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애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몰라서 당한 게 아니라, 알고도 멈추지 못해서 더 오래 당한 것이다.

바뀌어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을 멈추는 것, 무디고 우직한 애라는 평판 뒤에 숨지 않는 것, 잡무와 심부름이 성실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 불쾌한 순간에 웃지 않는 것.


소품 역할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계속 서 있었기 때문에 유지된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0여 년 만에 배운 가장 비싸고 뼈아픈 레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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