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보다 먼저 도려냈어야 할 놈

7. 데이트 폭력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by 붱맛스튜디오

내 몸에 진짜 암세포가 뿌리내리기 훨씬 전부터, 마음에는 거대한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서적 학대'였고, 그 시커먼 얼룩을 지우기 위해 내 영혼에 표백제를 들이부으며 버텼다.


당시의 나는 사랑을 '받아주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상대가 힘들다 하면 들어줬고, 바쁘다 하면 기다렸고, 예민하다 하면 이해하려고 했다. 노력하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내 자존감을 싼값에 넘겨버린 노예 계약이다.

"너 왜 나를 흔들어."


그가 내게 던진 첫 번째 가스라이팅은 역설적이게도 고백의 순간에 찾아왔다. 드라마 <상속자들>의 명대사 ‘나 너 좋아하냐’와 같은 수동적이지만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조차 내 탓으로 돌리는 작업멘트.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비겁한 문장이다.


당시에도 '성인(Saint) 병' 중증이었던 나는 그 말을 '내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증거'로 오해했다. 나쁜 남자로 보이는 이 사람의 비뚤어진 마음을 내가 치유하고 고쳐놓겠다는 오만한 구원자 환상. 불행한 연애의 시발점이었다.


본색은 빨리 드러났다. 술에 취한 그의 입에서는 ‘병신 같다’, ‘쌍 X’, ‘ㅆㅂX’, ‘ㅈㄹ’ ‘꺼져’ 같은 천박한 언어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습관이라며 뱉어내는 그 말들에 내 존엄은 매번 난도질당했다. 일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금세 빈정댔다. “야, 됐다, 애썼다.”


문자창이 열리면 설레는 게 아니라 고객 불만 대응 창구에 앉은 상담원처럼 긴장부터 했다.


우리의 데이트는 격투장처럼 살벌하게 끝날 때도 많았다. 지하철 역 한복판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기도 하고, 손에 쥐고 있던 샌드위치를 냅다 바닥에 던지기도 했다. 한 번은 운전 중에 장난친답시고 내 손등을 꼬집길래 참다가 그만하라고 화내며 한 대 쳤더니, 분하다며 내 머리통을 손으로 갈겼다.

그때 충격은 잊히지가 않는다. 이성을 잃고 나도 그대로 운전하던 그놈 대가리를 때렸다면, 우리 둘 다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며칠 뒤면 전혀 다른 얼굴로 갈아 끼우고 반성한다고 매달리는 그의 이중성에, 나는 아주 가끔 보이는 선한 모습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랗고 병신 같은 희망을 걸었다. 맹수가 배부를 때 온순하다 해서 반려동물이 될 수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말이 지나치게 많았다. 삼국지보다 상세한 인생 서사와 지인들의 역사에 나는 수험생처럼 경청해야 했다. 하품을 하거나 집에 가자고 하면 버럭 화를 냈다. 귀가 피곤했고, 감정이 피곤했다. 짜증과 시비로 사람을 질리게 하다가도, 갑자기 나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모욕하고, 달래고, 애교 부리고, 다시 상처 주는 안전바 없은 롤러코스터를 너무 오래 탔다.


그는 나를 자신의 ‘상처 입은 남자’ 코스프레를 위한 관객으로 썼다. 50일을 만난 여자와 3년을 만난 여자의 에피소드를 무한 반복했고, 내가 괴로워하면 "너는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라며 나를 깎아내렸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타인의 연애 연표를 청취하며 자존심이 상했다. 왜 타인의 그림자와 경쟁해야 하지. 불쾌하다고 말하는 순간 속 좁은 사람이 될까 봐, 그 시궁창 같은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에는 박사학위라도 딸 수준으로 무척 예민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유치원도 수료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부끄럽지만 그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 의리이자 헌신인 줄 알았다. 그의 논문과 취업 스트레스를 받아내느라 내 시간과 감정은 늘 후순위였다. 난 취업을 앞둔 사람에게 ‘이별의 스트레스’까지 주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독자들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안다. 이해를 구하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때 ‘성인(Saint)병’ 환자였다.


사랑해서 못 놓은 게 아니라, 들인 감정의 비용이 아까워 못 놓은 것에 더 가까웠다. 희생이 커질수록 사람은 관계를 더 고급스럽게 해석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개고생 했는데 설마 그냥 쓰레기 같은 연애였겠어? 하고. 유감스럽게도, 개고생 한 연애는 그냥 말뜻 그대로 해석해야 될 때가 많다. 운명 서사를 덧붙인다고 명품이 되진 않는다.


이별 후 몇 개월 뒤 ‘새 마음, 새 각오로 새 출발하자’라 적힌 쉰내 나는 그의 문자 메시지 문구. 70년대 반공포스터인 줄 알았다. 역겨웠다. 직접 사과할 용기도 없으면서 마지막까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 책임을 회피해 보려는 얄팍한 잔꾀.


지금 답장을 할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남겼을 것이다.


‘야, 냄새 나. 꺼져’


잘려 나간 가슴의 상처보다, 그가 남긴 흉터가 더 오래 쓰라렸다. 돌이켜보면 그 연애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욕이 아니었다. 그런 모욕에도 스스로를 설득하며 버틴 내 태도였다. 나를 파괴하는 괴물에게 순종하며 나의 '착함'을 시험했다. 난 예수가 아닌데 말이다. 아무도 메라고 하지도 않은 십자가를 끌고 굳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려 했을까.


내 인생의 절제술은 암세포가 아니라, 바로 지독한 연애의 얼룩이어야 했다.


사랑은 받아주는 능력이 아니라 모욕 앞에서 돌아서는 힘까지 포함해야 한다. 사랑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를 깎아 먹는 일을 헌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난 그 착각 속에 너무 오래 잠겨 있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순간에, 정작 나를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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