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자기소멸을 택한 어린아이
“본인을 가두고 있는 걸 아세요?”
나긋나긋하지만 묘하게 서늘한 상담사의 질문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복직 후 어느 날, 온몸을 뒤덮은 알레르기 때문에 찾아간 상담실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평범하고 티 안 나게 1인분을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환자’의 탈을 벗고 ‘커리어 우먼’이라는 더 크고 단단한 탈을 뒤집어쓴 채로.
처음에는 상담실의 어색한 공기가 힘들어 습관적으로 농담을 해댔다. 슬픈 이야기를 물어도 웃으며 답하고, 원인을 물을 때마다 “내 탓”이라고 일축했다. 치유를 받으러 온 건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하는 무대에 오른 건지 나조차 헷갈렸다. 상담사는 나의 인위적인 밝음을 간파한 듯, 크게 동요하지 않는 적당한 미소로 나의 ‘괜찮은 척하는 벽’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회사 일 때문에 화가 난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훨씬 더 오래된 감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억울했다. 당장 나를 괴롭히는 상사와 후배 때문에 죽겠는데 왜 자꾸 과거를 들추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의 나는 어제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억울함, 수치심, 버려질까 봐 먼저 웃는 습관, 누가 나를 싫어할까 봐 내가 먼저 접어버리는 버릇... 그것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성인(Saint)병, 그 지독한 잠복기는 유년 시절 전체였다.
사람들은 어린 나에게 늘 ‘어른스럽다’고 칭찬했다. 연년생 장녀인 나는 엄마의 불안을 먹고 자랐다. 나는 엄마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고성능 안테나였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숨을 죽였고, 엄마가 울면 내 슬픔을 뒷마당에 묻었다. 엄마가 화를 내면 죄책감에 울며 자발적 반성문에 가까운 일기를 적어댔다.
‘나는 바보 같은 딸이다. 엄마를 또 화나게 했다.’ 학창 시절 내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겠니?”
화가 날 때마다 나의 학교생활까지 비난하던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밖에서만큼은 절대로 새지 않는 바가지이고 싶었다. 전학만 네 번을 다녀야 했던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선생님의 칭찬’과 ‘친구들의 인정’을 구걸하는 생존형 사교성을 익혔다.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 참는 법만 늘어난 비극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유치하고 잔인하며,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한 번씩은 따돌림을 겪었다. 내가 ‘나댄다’고, ‘공부 욕심이 너무 많다’고 친구들은 나를 무리 밖으로 밀어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사건보다 감각으로 남아 있다. 특유의 도시락 냄새, 복도의 차가운 공기, 내가 나타나면 수군거리다 갑자기 조용해지던 교실의 그 소름 끼치는 정적.
사춘기 시절, 척추측만증으로 목부터 골반까지 감싸는 플라스틱 보조기를 차고 다녔던 건 수치심의 정점이었다. 짝꿍이 내 등을 쳤다가 ‘퉁’ 소리가 나자 갑옷이냐며 깔깔대던 기억. 보조기 안에 갇힌 내 몸처럼, 내 마음도 점점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 멀쩡하다고, 성격 좋으니 제발 같이 놀아달라고 빌고 싶었던 그 간절함이 나의 '착함'을 비정상적으로 키웠다. 아주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대학생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그 시절의 상처를 털어놨다. 하지만 돌아온 건 생각보다 더 차가운 문장이었다. “네가 바보같이 굴어서 그래. 네가 잘난 척해서 그런 거야. 친구 없는 건 결국 네 탓이야.”
그날 이후, 나는 더 악착같이 착해져야만 했다.
착함의 정의도 모른 채 남보다 먼저 양보하고, 더 많이 참아주고, 모욕을 당해도 웃어넘기는 쪽을 택했다.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 사람들이 나를 ‘착하다’고 해줬으니까. 그 말은 한동안 내가 문제없는 인간이라는 증표이자 훈장이었다.
하지만 그 훈장은 곧 족쇄가 되었다. ‘좋은 사람은 화를 내면 안 된다’, ‘성숙한 사람은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자기검열이 나를 옭아맸다. 나의 ‘착함’은 대단한 도덕심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버려지지 않기 위한 본능이자 비굴한 생존 전략이었다. 무리에 남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익힌 처절한 기술이었다.
“그때의 어린아이는 아주 차가운 동굴 속에 혼자 갇혀 있어요.”
상담사의 말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씩씩해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달려왔지만 정작 그 아이는 캄캄한 동굴 속에 버려져 있었다.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 참는 법을 택했고, 그렇게 나 자신을 가두며 살아남았지만, 결과적으로 나 자신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성인(Saint)병.
착한 척하다가 나부터 갉아먹는 병.
그것은 타인을 향한 헌신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지독한 자기소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