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라는 이름의 성역(聖域), 혹은 감옥
상담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붱맛님은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분노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라요.”
우리 모녀가 싸울 때면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과녁 맞히기였다. 명중할 때까지 폭언을 던졌고, 엄마의 비아냥 섞인 표정을 보면 난 눈이 뒤집혔다.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한심하다는 듯 짓는 연극배우 같은 표정. “그래, 아주 똑똑한 따님, 잘나셨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자조 섞인 말에 나는 포효했다.
“제발 집사님, 기도는 그만하시고 가정부터 지키세요!”
종교가 죄지은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 ‘용서’라지만, 우리 집에서 그 단어는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값싼 면죄부였다. 밖에서는 성경을 읽으며 평온과 교양을 연기하던 엄마는, 내 앞에서만큼은 악령이 씌어진 듯 폭언을 쏟아냈다.
나는 20여 년 다닌 교회를 떠났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말해야 하고, 내성적인 나를 ‘공동체’라는 이름의 용광로에 쳐 넣는 생활은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의 중심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통제욕은 지독했다. 모든 불행은 내 탓으로 수렴됐다. 학창 시절 따돌림을 고백했을 때 엄마가 던진 “네가 바보같이 굴어서 그래”라는 말은 내 인생의 저주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에게 과도하게 친절한 성인(Saint)이 되기로 결심했다. 직장 빌런들의 무례함과 연애 빌런들의 욕설을 참아낸 것도, 결국 “네가 잘하면 무시당하지 않는다”던 엄마의 목소리를 이겨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20대 중반, 과로로 실려 간 응급실에서 엄마가 수련의에게 던진 첫 질문은 “우리 딸이 혹시 성병이냐”는 것이었다. 수련의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병 때문은 아니었지만,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엄마는 나를 더러운 죄인 취급했다. 당신도 '속도위반'으로 나를 가졌으면서도, 종교를 가진 후 엄마는 나를 정죄하는 눈빛으로 나의 20대와 대학생 시절을 묶어버렸다. 외박, MT, 여행... 나의 모든 자유는 엄마의 필터를 거치면 순식간에 불결한 ‘죄’가 됐다.
엄마에게 나는 인격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자 전시품이었다.
중학교 때 척추 교정용 플라스틱 보조기를 할 때부터 엄마의 헌신은 집착이 됐다.
“네가 아파서”라는 엄마의 모든 행동의 전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픈 딸을 돌보는 엄마'의 존재로 동정을 얻기에 좋은 명분이었다.
산책을 다녀와서도 지인에게 “딸을 운동시키고 왔다”며 반려동물이나 유아를 케어하는 듯한 엄마의 무의식적인 통제는 일상의 모든 일에 반복됐다.
옷차림부터 밥 먹는 태도까지 엄마의 원칙에 어긋나면 분노가 터져 나왔다. "너 제정신이니? 그렇게 입고 나가?" "너 음식 그렇게 남기지 말랬지! 누굴 닮아 이러는 거야?" 아빠에 대한 불만마저 80%는 나에게 쏟아졌다. “어쩜 둘이 똑같이 나를 미치게 하니.”
나이가 들어도 레파토리는 똑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엄마의 억울함이 짙어졌다는 것. “칠십 평생이 억울하다, 넌 딸인데 왜 엄마한테 대드느냐”며 울부짖는 엄마의 목소리에 숨이 막혔다. 나는 딸이라는 죄목으로 엄마를 괴롭히는 존재였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견뎌야 하는 자식이라는 굴레가,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형벌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헌신이 빚으로 느껴졌다. K-장녀로서 난 엄마를 챙기는 방향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주고, 엄마를 아프게 하지 않는, 엄마가 원하는 삶의 방향대로 살아주는, 모범적인 딸. 그렇게 자연스러운 통제 방식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순응.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효도’였으니까.
기이한 우리 관계의 절정은 유방암 수술실 앞에서였다. 침대 위에서 마주한 엄마는 하얗게 질린 채 오열하고 있었다. 나도 무섭다고, 나도 같이 울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은 울컥함이 치밀었지만, 내 안의 ‘성인병’은 1초 만에 엄마를 달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치환됐다.
“엄마, 나 금방 자고 일어날게. 걱정 마!”
전신마취를 앞두고 내가 내뱉은 마지막 말조차 엄마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약사발이었다. 정작 암에 걸려 잘려 나가는 건 내 가슴인데, 나는 끝까지 엄마의 정서적 간병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무기력한 나를 보며 바보 같다고 했다.
맞다. 나는 일종의 노예근성으로 엄마에게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담가가 말했다.
“엄마와 딸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혈 관계라 생각하세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힘은 어쩔 수 없지만, 딸은 엄마를 선택한 게 아니예요. 그러니 거꾸로 힘을 쏘아 올리려 애쓰지 마세요. 엄마에 대한 책임감은 버려도 됩니다. 엄마는 엄마라서 괜찮으니까요.”
정말, 괜찮은걸까. 나는 여전히 그 굴레 안에서 나만의 ‘자기만의 방’을 꿈꾸며, 끊임없이 엄마의 과녁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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