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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우 Jan 31. 2023

대표님, 도대체 왜 그렇게
부지런하세요?

대표자의 무게 그리고 총무의 무게

오전 7시 30분. 회사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지나가던 대표님이 한 마디를 던진다.


"김 주임, 요즘 좀 늦게 오네. 김 주임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해야지"


당시에 다니던 회사는 자율근무나 유연근무제와 상관이 없다. 내가 지각을 한 것도 아니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 먼저 왔음에도 대표님에게 핀잔을 들었던 이유는, 내가 '총무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총무라는 단어가 가진 그다지 무거울 것 없어 보이는 이름에 담긴 무게를 설명하기 전에, 2년 동안 지켜본 대표님의 출근 후 동선을 먼저 소개한다.


대표님은 보통 아침 7시쯤이면 출근을 했다. 사장실에 들어가 근무복을 입고 당일 업무 준비를 한 후, 다시 사무동 밖으로 나간다. 바로 옆에 위치한 공장동 주변을 구석구석 다니고, 공장 내부로 들어가 근무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장을 돌아본다. 대표자이기 때문에 임원, 부장과 오전 8시부터 회의를 할 일이 많은데도 현장 점검을 거르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출근을 마친 7시 30분쯤에 대표님이 전화를 걸어온다. "김 주임, 여기 현장에 물 샌다. 와서 좀 봐라"(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공장은 구조상 '비'에 약하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누수 지점을 확인한 후, 유지보수 업체에 연락을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었지만, 매일 아침마다 이런 점검사항이 몇 건씩 생긴다. 공장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 이놈의 공장은 현장 이슈가 뭐 이렇게 많아. 일이 이렇게 맨날 생길 수가 있어?'라며 투덜거리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독선에 빠져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산부에서 뭔가 요청이 오면 '그 정도는 생산부에서 알아서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며 투덜댔고, 영업부에서 거래처 관련한 일에 대해 협조 요청이 왔을 때도 '매번 하는 거 왜 또 하는지 모르겠네'라며 투덜댔다. 그들 모두 각자의 업무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대표님이 아침마다 현장 점검을 할 때도 그랬다. 왜 괜히 실무자보다 한참 일찍 출근해서 핀잔을 주는지, 왜 그렇게 구석구석 현장을 다니면서 일거리를 만들어 오시는지. 나도 당장 아침에 해야 할 고정 업무가 있는데, 왜 그런 자잘한 일까지 얹어주는지 불만이었다. 내가 급한 일 끝내놓고 가서 보면 그만인데.


퇴사를 하고 나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지금도 하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예전 회사 생활을 돌아보게 됐는데, 예전의 내가 얼마나 철이 없고 고집투성이었는지 깨달았을 때는 참 부끄러웠다. 1인 기업가 혹은 프리랜서라는 겉보기에 낭만 있어 보이는 일들을 선망하면서 오히려 그런 직업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며 생존을 고민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위치는 기획, 마케팅, 홍보, 재무, 인사뿐 아니라 총무의 역할도 맡아야 하는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다. 제조업이라면 생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도 챙겨야 한다. 대표는 그저 멋들어지고 높기만 한 자리가 절대 아니다.




총무 담당자의 무게는 대표의 무게에서 기인한다. 한 번은 대표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총무 담당자는 경영자의 대리인이야. 그러니까 네 눈앞에 놓인 일만 처리하려고 하면 안 되고, 경영 관련, 현장 관련 이슈를 수시로 체크하고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일해야 돼" 그때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급한 일도 많고, 일개 사원이 그런 걸 알아서 어디에 쓰겠냐며 회의적으로 생각했었다. 안이한 생각이 가져오는 파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내 일에 대한 목적의식의 상실'을 꼽을 수 있다. 즉, 왜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순간 망각하게 된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도 하지만, 총무 담당자의 망각은 '회사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총무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전체적이며 일반적인 사무. 또는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뜻한다. '전체적'이며 '일반적'이라는 말을 두고 특장점이 없는 업무 아니냐, 잡무 아니냐며 낮잡아 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전체적이고 일반적인 업무를 맡은 것 자체가 총무의 특장점이다. 의미를 잘 보면 대표의 역할과도 많이 닮아있다. '전체의 상태나 성질을 어느 하나로 잘 나타냄'이 대표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다. 전체의 상태나 성질을 잘 나타내려면 그만한 정도의 역할을 맡거나 특성을 가져야 한다. 총무는 대표자의 이름을 대신하고, 그의 권한을 대리하여 일하는 중요한 자리다.




대표님이 아침마다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이유를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모습을 이해하기까지 숱한 반성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는 경영자로서 회사를 운영하는 데 막중한 책임과 부담을 안고 하루하루 일했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 착오가, 일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회사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마다 현장을 둘러보고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직원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회사 관련 대외 이슈가 있는지 등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려고 한 것은 대표자라는 역할에서 오는 무게감 혹은 압박감 때문이었으리라. 성향상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표라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에서야 감사드린다.


회사에서 인사나 총무를 담당하고 있거나, 앞으로 그런 일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개 말단 사원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대표자의 마음으로 일해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그 무게와 압박감은 결코 가볍지 않겠지만, 생각의 틀을 깨고 더 큰 그릇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한 번쯤 승부를 걸어봐도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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