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보여행

by 류병우

1950년 7월 중순의 어느 날, 서울공대 4학년 학생이던 아버지는 서울 북아현동의 고종 형님댁을 출발하여 충북 매곡의 고향집을 향해 남하를 시작했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자신의 두 다리뿐이었다.

1977년 내가 아버지의 대학 후배가 된 후,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이 걸어갔던 그 길을 한번 걸어가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함으로써 아들이 아버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셨던 것 같다. 비슷한 심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그와 같은 길을 떠나겠노라고 얘기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이 평화로운 세상에 왜 쓸데없이 위험한 일을 하느냐'는 투였다. 아마도 당시 아버지에게 보인 나의 반응도 내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 길을 걸어간 후 66년이 지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난 금년 2016년 여름, 나는 그 길을 가보려 한다. 이런저런 직장생활과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사업을 정리한 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이 금전적인 여유를 만들어 주었으며, 작년부터 친구와 다녀온 몇 차례의 여행에서 체력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이 생긴 덕택으로..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아버지의 회고록이 있다. 아버지의 회고록은 1950년 6월 25일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그 해말 12월 중공군 척후병이 사살된 어느 날에서 중단되었다. 아버지의 625 회고록은 결국 그렇게 이야기의 결말을 짓지 못한 채 그렇게 끝났다.


2008년 어느 날 아버지가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가 어려워졌을 때, 나는 구술로라도 회고록을 마무리해드리고 싶어 몇 차례 녹음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날의 일은 마치 어제 일처럼 시간대별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내 아버지의 625는 전쟁이 끝나고 60년이 지난 그 시점에도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 같다.


군번도 없는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하던 중에 14후퇴 이후에 미군병사가 저지른 민폐를 고발한 민간인의 얘기를 통역한 사건으로 인해서, 범인으로 지목된 미군병사로부터 공갈 협박을 받다가 제대하게 되었다는 회고록 이후 이야기는 큰누나로부터 전해 들은 바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여행에서 가장 들뜨고 행복한 순간은 여행을 상상하며 짐을 꾸릴 때이다. 그래서 이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일찍, 거의 6개월 전에 비행기표를 사서 출발 날짜를 정하고, 출발 날짜가 될 때까지 자료를 찾고 책을 보며 여행을 계획하면서 짐을 꾸린다. 이번에도 캄챠카 여행에서 돌아온 후, 2개의 여행을 계획했다. 내년 초 이집트 여행과 이번 도보여행. 보통 3~4개월 전에 비행기표를 끊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것에 비하면 2주만에 결정한 이번 도보여행은 거의 즉흥이라고 할 수준이다.


아직 출발까지는 5일이 남았다. 5일간 더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