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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Feb 22. 2019

20. 트레킹 마지막 날

드디어 떠오르는 해를 보다.

2/17 오늘은 트레킹을 마치고 Pokhara로 돌아가는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잠이 깼다. 롯지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을 한잔 받아다가 커피믹스를 타서 들고 롯지 마당에 나왔다. 드디어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떠나는 나에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주는 선물인 모양이다. 2/10 Matkyu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이래로 매일 일출시간에 맞춰 일어났건만 한 번도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했는데, 트레킹을 끝내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가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 오캠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던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이 보인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아침 햇살을 받아 줄지어 늘어선 산봉우리들이 차례로 서서히 황금빛으로 빛나다가 다시 은빛으로 바뀌는 모습은 눈을 호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트레킹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Anup Gurung 씨가 추천한 2월이라는 시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가 확인한 날씨 통계로도 1월보다는 2월에 더 흐린 날이 많다고 나와서 좀 께름찍했는데 Anup Gurung 씨가 워낙 단호하게 2월이 더 낫다고 하는 바람에 2월로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최종 결정은 결국 내가 한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오롯이 나의 몫이다.


오늘은 오캠에서 1시간 정도 걸어서 Kande로 내려가서 Pokhara 시내 호텔까지 차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일정이 없기 때문에 서두를 일도 없으니 점심까지 오캠 롯지에서 먹고 가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눈길에서 더럽혀진 옷가지를 털고 스패츠를 닦는 등 장비를 정리하는데, 어제 ‘뿌셔뿌셔’를 먹던 여자애가 자기들은 지금 Pokhara로 간다며 인사를 한다. 나에게 “오빠”라고 하며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들고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애교를 부린다. 언제 꼭 룸비니에도 오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첫 설법을 한 바라나시, 그리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를 포함하여 불교 4대 성지 중에 하나다. 사실 이번 겨울 방학에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인도의 불교 4대 성지 방문, 둘을 놓고 어느 것을 먼저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트레킹은 하루라도 젊을 때 해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트레킹을 선택한 것이었다. 언젠가 네팔 룸비니를 포함한 인도의 불교 4대 성지도 둘러볼 계획이다. 인도나 네팔이나 분위기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네팔 경험도 있으니 인도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


점심까지 먹고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장비 정리도 대충 끝났고, 인터넷도 계속 안되니 브런치 글을 정리할 수도 없고, 오캠에 별달리 둘러볼 곳도 없어서 모한에게 10시에 출발해서 Pokhara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오캠을 내려오면서 모한한테 이번에 ABC를 못 가서 내가 아무래도 한번 더 와야 할 것 같으니 다음에도 가이드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날씨 좋을 때, 3월이나 12월에 오라고 한다. 농담 삼아 모한에게 지금은 정식 트레킹 가이드 라이선스가 없는데 다음에 왔을 때는 라이선스를 가진 정식 가이드가 되어있을 테니 일당도 비싸고 짐도 안 들어주지 않겠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같은 비용으로 짐도 들어주겠다고 한다. 정말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 친구와 트레킹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그동안 나를 편안하게 잘해 주었다.


나는 여행사에 가이드겸포터의 일당으로 $25를 주는데 회사에서 얼마를 받느냐고 물으니 그거는 얘기할 수 없다고 한사코 얘기를 안 한다.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반쯤 떼고 받는 것 같다. 가이드는 회사에서 받은 돈에서 자기가 롯지에서 먹고 자는 비용을 써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트레커와 같은 값을 내는 것은 아니고, 네팔 국내선 요금이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의 요금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듯이 트레커보다는 훨씬 작은 비용을 낸다고 한다. 가이드 팁을 최대한 넉넉하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하산을 시작해서 11시에 Kande에 도착했다. 다른 곳보다 내리막 계단이 그리 급하지 않아서 비교적 빨리 내려온 듯하다. Kande에서 Pokhara로  들어가기 위해 탄 차는 현대차는 현대차인데 국내에서는 못 보던 소형차다. 아마도 이게 현대가 인도공장에서 만든 것인가 보다. 티코 같이 작은 차가 이 무지막지한 비포장 수준의 네팔 고속도로를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심지어 트럭을 추월까지 해가면서 Pokhara 호텔에 12시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럭셔리 여행으로 컨셉을 바꿨다. Kuti Resort는 하루 $50불이 조금 넘는 4성급 호텔이다. 그동안 머문 롯지 중에는 오캠 Angels Heaven 롯지가 제일 비싸지만 $15이 채 안 되는 곳이었는데, 하루 만에 3배 이상을 올렸더니 밑바닥 인생에서 상류층으로 신분상승이 된 느낌이다. 이 호텔 1층에는 미지근한 물을 채운 대형 목욕탕 크기의 수영장이 하나 있는데, 그래서 호텔 이름에 Resort라는 말을 넣었나 보다.


호텔로 찾아온 여행사 라주 사장에게 트레킹이 2일 연장된 것에 대한 가이드 비용 초과분과 2/20 10시경 Kathmandu로 가는 국내선 항공권을 부탁했다. 네팔 국내선 항공권은 내가 직접 인터넷을 통해서 사는 것보다 여행사를 통해서 사는 게 더 싸다. 모한에게는 팁으로 4000루피 줬다. 그리고 모한과 허그를 하고 헤어졌다. 모한은 내일부터 앞으로 45일간 매일 오전에 3시간씩 가이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제 산사람에서 도시인으로 변신할 차례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때밀이 수건으로 때도 밀면서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히말라야 등반의 상징인 수염도 깔끔하게 밀었다. 면도 전, 면도 후, 헤어 드라이 후까지 3장의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안전 귀환을 알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어느덧 3시가 가까웠다. 출출한데 멀리 나가기도 귀찮아서 호텔 식당에서 닭고기 수프와 클럽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Ghandruk 롯지의 닭고기 수프를 상상했으나 호텔 주방장의 솜씨는 실망이다.


일단 밥을 먹었으니 호텔 근처를 둘러봤다. 주변에 한집 건너 호텔 아니면 게스트하우스다. 빨래 맡길 세탁소는 어디에 있는지, 음식점은 어떤 곳이 있는지, 여행사는 어디 있고, 슈퍼는 어디 있는지 등을 정탐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평이 좋았던 Tranquility Spa를 찾아갔다. 귀국길에 태국에 들러서 타이 마사지를 실컷 받고 가겠다고 방콕 스톱오버를 선택했지만 일단 지금 다리가 아프니 빨려 들어가듯 마사지샵으로 들어갔다. 트레킹으로 지친 근육의 피로를 푸는 딥 티슈 마사지 90분짜리를 4000루피에 받았다.


마사지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다시 호텔로 돌아오다가, 저녁식사 시간도 다 돼서 동네 분식집 같이 생긴 식당에 들어갔다. 넉넉하게 생긴 네팔 아줌마에게 “Momo, fried”를 주문했다. 지난번 Ban Thanty 처자가 해 준 튀긴 모모의 맛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네팔 아줌마가 해 주는 튀긴 모모의 맛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튀긴 모모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건 중국집 군만두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고기만두 튀김이다. 이런 맛있는 고기만두 튀김이 단돈 170루피라니! 내일도 또 와서 먹어야겠다.


모모 파는 분식집 옆에는 과일 라씨를 파는 집도 있었다. “Mixed Fruit Lassi”를 주문했더니 꽤나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한 후에 양동이 만한 스테인리스 머그 컵에 빨대를 꽂은 라씨를 가지고 왔다. 바나나, 오렌지, 수박 같은 과일을 생과일로 갈아 넣은 라씨가 200루피. 저녁 밥값보다 후식 값이 더 비싸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2/21 방콕으로 출발하는 국제선을 타기 위해 하루 전날인 2/20에는 Kathmandu로 이동해야 하니 Pokhara에서는 2일의 여유가 있다. 네팔 Pokhara는 스위스, 터키에 이어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사이트로 유명하다고 한다. 여기서 다른 건 못해도 패러글라이딩은 꼭 한번 해야 된다. 우선 내일은 그냥 늘어져 자고, 모레쯤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모레는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다. 내일 하지 않으면 또 날씨 때문에 패러글라이딩도 못하게 될까 봐서 저녁 7시에 라주 사장에게 카톡으로 내일 오전에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해 달라고 연락했더니 바로 내일 오전 9시 반에 픽업하겠다고 답이 왔다.


내일은 패러글라이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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