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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Jun 21. 2024

가을이 가출 사건

자유인가 방임인가

내가 요즘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백두대간 산자락에 농막 짓고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놀고 있다는 거.. 이 강아지의 이름이 바로 '가을이'다. 이 녀석이 나에게 무한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준다.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차차 하기로 하고.. 이 사건은 며칠 전의 일이다.


최근에 우리 산에서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잡초가 무성해서 다닐 수 없는 작업로에 잡초를 제거하고 길 너비를 확장하는 공사를 했다. 우리 산의 해발 350m 부근부터 가장 높은 정상(해발 약 470m)에 이르는 작업로 주변에는 1960년대 말 나의 할아버지께서 지금의 내 나이셨을 때 약 1만여 그루의 편백나무 묘목을 심으셨다. 이번에 작업로를 정리한 덕택으로 울창한 편백나무가 줄지어 있어서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 속으로 걸을 수 있는 편백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며칠째 아침마다 1시간 정도 편백나무 숲길을 가을이와 산책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16일 일요일 아침 6시 잠에서 깨어 옷을 챙겨 입고, 가을이와 함께 편백나무 숲길을 향해서 출발했다. 올라가는 길에 가을이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가끔 이곳저곳 수풀 속으로 빠져나가려는 듯 기웃거렸다. 하지만 '가을아 이리 와'하고 부르면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따라오곤 했다. 7시쯤에 길의 끝부분에 도착했을 때 뒤에서 따라오던 가을이를 보니 편백나무 숲 언덕 위 능선 쪽을 향해서 가고 있기에 '가을아' 하고 부르니, 내 쪽으로 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돌아서서 반대편 능선을 바라보며 '이곳에서부터 길을 어느 방향으로 더 공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가을이가 보이지 않았다.


<사진 1> 편백나무 숲길 맨 끝 능선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 내가 오른쪽 능선을 바라보는 사이에 왼편으로 가을이가 사라짐

그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가을이를 소리쳐 불렀지만 가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산책할 때도 가끔 어디론가 혼자 갔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했고, 심지어 어떤 때는 자기 혼자 농막으로 돌아가 버린 때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나타나겠거니 하면서 나 혼자서 산을 내려와서 가을이 밥그릇에 밥도 주고, 나는 샤워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가을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가을이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때서야 슬슬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가을이가 혼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시간은 최장 2시간이었다. 이미 2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건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을이가 가출 사고를 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까이는 지난 1월에 아버지 산소에 제초제 뿌리러 갔던 날, 가을이를 트럭에서 내려놓자마자 어디론가 달아났다. 영하 13도의 추위에 꼬박 하루 밤을 밖에서 자고, 다음날 오후 늦게에서야 경로당 할머니의 제보를 받아 제보받은 현장에서 가을이를 체포(?)한 경험이 있다. 그 24시간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가만히 집에서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오전 10시쯤 다시 옷을 챙겨 입고 가을이와 헤어졌던 곳까지 올라갔다. 이번에는 능선 위까지 올라가서 산너머 반대편 아래쪽을 향해서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어대면서 찾아봤지만 몇십 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산너머 아래쪽은 밤나무가 많아 비릿한 밤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산 아래 저만치에 비닐하우스도 보인다. 그보다 먼 아래쪽에는 약 1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도 보인다. 그쪽을 향해서 가을이를 부르고 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오르내리며 가을이를 찾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는 정말 완전히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와의 인연이 여기에서 끝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난 1월에는 아버지 산소까지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집을 찾아올 수 없었지만, 원래 개라는 동물이 냄새로 세상을 인식하는 동물이고, 이번에는 차를 타고 나간 것도 아니고 나와 걸어서 나가 산책하던 중에 제 발로 걸어 나갔으니 자기가 갔던 길을 냄새로 찾아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의 이름과 연락처가 새겨진 목걸이도 만들어서 채웠으니 누군가 발견하면 연락을 하리라..


개는 생후 1년이면 성견이 된다. 가을이를 데려올 때 2살쯤 되었다고 했으니 지금은 4살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에게 4살은 사람으로 치면 3~40대로 신체적으로 최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가을이를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루를 살더라도 묶여 살기보다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라.'라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풀어놓는 것이 진정 가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3번의 가출에도 불구하고 가을이를 줄에 묶어놓기보다는 내가 혼자 외출할 때 빼고는 농막에서나 산책할 때나 항상 풀어놓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집사람과 카톡을 하다가 오후 2시가 되어 다시 한번 산을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산을 올라갔다. 이번에도 능선 위로 올라가서 오전보다 멀리 능선을 오르내리며 산너머 아래쪽을 향해서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며 가을이를 찾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다.  


지난 1월 가을이를 찾은 곳은 가을이와 헤어진 곳에서 직선거리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고, 헤어진 곳에서 불과 300여 m 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동네 경로당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동네 경로당에 가을이를 찾는 전단지를 드리고 제보를 부탁드릴 수 있었고, 마침 오후에 동네 뒷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할머니가 보시고 전화를 주셔서 현장에 가서 가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이버 지도와 구글 어스를 켜고 예상이동 경로를 추정해 봤다. 능선에 올라갔을 때 보이던 비닐하우스까지의 거리는 약 300m이고, 산 아래쪽에 보이던 십여 호가 있는 작은 마을은 '저실'이라는 동네다. 2021년 산불이 났을 때 사람들로부터 산너머에 ‘저실’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실까지는 가을이와 헤어진 곳에서 직선거리로 약 1km이다. 저실까지 가려면 길도 없는 산속을 헤치고 300m를 나간 후에, 또 길을 따라서 다시 1km를 가야 저실이다. 이놈이 산을 넘어갔다면 저실 동네의 누군가의 집 앞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 17일 아침 일찍 트럭을 몰고 저실로 갔다. 저실까지 길이 있어 산을 넘어간다면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겠지만 차로 가려면 10여 km를 빙빙 돌아가야만 한다. 저실 동네를 기웃거리며 가을이를 찾다가 마을을 지나 능선 위에서 봤던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 근처까지 트럭을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가을이가 산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까지 산을 걸어 올라갔다. 차로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걸어갈만한 길이 있었다.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었다. 소리를 듣고 나를 찾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곳에 앉아서 10여분을 기다렸지만 기척이 없었다.


낙담하며 산을 다시 내려와 농막으로 돌아왔다. 가을이에게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채워줬지만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이상 목걸이를 볼 수 없을 테니 제보를 받으려면 전단지가 필요했다. 부랴부랴 가을이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전달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이 돼서 일단 2장만 인쇄를 해서 다시 저실로 갔다.


<사진 2> 포인핸드 앱으로 만든 전단지

이번에는 능선 위에서 봤던 비닐하우스 앞에 차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가을이를 찾으러 다녔다. 가을이를 찾지 못하고 주하해 둔 비닐하우스 앞에 다시 돌아오니 마침 비닐하우스에 어떤 분이 내차가 나가지 못하게 차를 막아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여차저차하여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왔다고 말씀드리며 전단지를 한 장 드리고 제보를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생김새를 자세히 보지는 못해서 이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오전 9시경에 당신이 감나무 밭에 약 치러 가던 중에 저 아래 펜션이 있는 곳 큰길에서 작은 하얀 강아지를 한 마리 봤다고 하신다. 그 녀석이 길 옆에서 튀어나오더니 도로에서 빙글빙글 돌더라고 했다. 가을이는 똥 마려울 때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습성이 있다. 가을이가 확실하다.


서둘러 펜션으로 달려갔다. 펜션은 저실 마을을 지나서 2~300m를 더 내려와야 하는 곳이다. 펜션은 큰길과 높이 차이가 5m 정도 되는 낮은 곳에 있었다. 펜션 마당을 둘러보는데 집안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서 창문 안쪽을 보니 노란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밖을 내다보며 짖고 있다. 펜션 문을 두드렸지만 사람이 없다. 펜션 마당에서 가을이를 부르며 휘슬을 불었지만 가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길로 펜션에서 가까운 계룡리 마을회관 경로당을 찾아가 한 할머니께 전단지를 드리며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전단지가 부족했다.


다시 농막으로 와서 전단지 5장을 더 만들어서 다시 저실 마을로 갔다. 저실 마을 초입에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한 집이 눈에 띄었고, 사람 소리가 났다. 젊은 남자 두 명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전단지를 주며 제보를 부탁하고 나왔다. 저실은 10여 호의 작은 마을인데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은 몇 집 없어 보였다. 빈집이거나 집을 비우고 들에 일하러 나가셨는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펜션 근처 포도밭에 계신 분들께도 전단지를 드리고 농막으로 돌아왔다.


농막에 도착하고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서 아까 전단지를 준 점심 먹던 젊은 남자 중에 한 사람이 전화를 했다. 자기 삼촌이 사부리에 사는데 전단지에 있는 그런 강아지를 봤다고 하셨다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한다. 한달음에 그 총각이 알려준 포도밭으로 갔다. 그랬더니 삼촌이 봤다는 곳은 여기가 아니고 다른 포도밭이라고 하면서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갔다. 그곳은 가을이가 최초 목격되었다는 펜션에서부터 또 1km나 더 멀었다. 마침 포도밭에 삼촌이 없어서 삼촌을 찾아 차를 타고 다시 1.5km를 더 들어가서 사부리 마을 안쪽 삼촌집으로 데리고 갔다.


차를 타고 이리저리 깊은 산속 마을로 끌고 가는 것 같아서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삼촌과 숙모는 어제 오전에 사부리 포도밭과 군부대 근처에서 전단지에 있는 놈과 똑 닮은 놈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고모는 자기가 지난주 목요일에 구미에서 왔는데 그때부터 그놈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말씀하시는 포도밭이나 군부대는 가을이와 헤어진 곳에서 직선거리로도 무려 3km가 넘는 먼 거리이고, 봤다는 시기도 헤어지기 전이어서 비슷하게 생긴 다른 놈이 이 동네를 돌아다니는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삼촌은 전단지에 바로 그 놈이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마을에서 천천히 차를 몰고 나오다가 군부대 앞 길 가에서 휘슬도 불고 가을이를 불러봤지만 가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임업진흥원 교육 동기생 모임인 산들21 김부회장님이 내일 아침 충남 홍성 유고문님 마늘밭에 마늘 캐는 일을 도와주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요즘 한낮에는 날이 뜨거워서 일하기 힘드니 오늘 홍성 가서 자고 내일 새벽에 마늘밭에서 마늘 캐고 10시쯤 일 마치고 점심 먹고 오자는 얘기다. 지난주부터 얘기했던 일이라 거절할 수도 없어서 일단 3시 반에 농막을 출발해서 내 차로 대전에서 김부회장님을 픽업해서 홍성을 가기로 결정했다. 고속도로를 달려 대전을 지나 홍성을 가는 중에 5시경 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하얀 강아지가 포도밭 근처에 있으니 와 보라는 연락이다. 만약 아까 내가 군부대 앞에서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었을 때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나타난 놈이라면 닮은 다른 개가 아니고 진짜 가을이 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차를 돌려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왔고, 옆자리에는 김부회장님이 타고 있으니 돌아갈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홍성을 가는 길이라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내일 오후에 갈 테니  먹이도 좀 주고 유인을 해서 그때까지 멀리 도망가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18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유고문님 댁 마늘밭에 갔더니 마늘은 이미 다 캐 놓은 상태이고, 캐 놓은 마늘의 줄기를 자르는 일이 남았다고 한다. 9시까지 마늘밭 일을 하고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고는 다른 분들께 사정 말씀을 드리고 가을이를 찾으러 다시 농막으로 돌아왔다. 이 때는 이미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점심도 못 먹고 삼촌한테 전화를 해서 지금 바로 가겠다고 하고 포도밭을 찾아갔다. 삼촌 말씀이 오늘 오전까지도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더라고 하셨다. 고모가 목요일에 봤다고 해서 좀 이상하지만 자기가 보기에는 전단지의 그놈이 분명하다고 다시 힘주어 얘기해서 희망을 가지고 포도밭에서 군부대가 있는 삼거리까지 걸어가며 휘슬을 불고 가을이를 불렀다.


마침 서울 집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금 며느리가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갔다는 거 알고 있느냐는 얘기다. 가을이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확인하지 못했던 카톡을 보니 12시 41분에 순기의 카톡이 와 있었다. 촉진제 맞고 분만을 시도해 보다가 어려우면 오후 4시쯤 제왕절개를 할 계획이란다. '와우!' 드디어 할아버지가 될라나 보다. 카톡을 접고 다시 군부대 앞을 서성이고 있을 때, 저만치 20여 m 거리에서 왠 꾀죄죄한 강아지 한 마리가 길에 나와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저놈이 가을이가 맞나 싶어 몸을 낮추고 가을아 하고 부르니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며 깨개갱 거리는 것이 아닌가!


<사진 3> 가을이 실종 사건 관련 주요 지점(구글 어스)

구글 어스에서 이 첨부 파일을 열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가을이를 안아 올리는데 아프다고 죽는소리를 한다. 오른손으로 아랫배를 잡아 올리는데 입질까지 시도하며 아프다고 난리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끌어안고 포도밭으로 와서 삼촌 내외한테 강아지 찾았다고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트럭에 가을이를 태우고 출발했다. 차를 탄 김에 가까이 추풍령 농협하나로마트에 가서 커다란 수박 2통을 사서 포도밭 삼촌에게 최초 연락해 준 총각에게도 한통 전해 달라고 말씀드리고는 농막으로 돌아왔다.


56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 가을이는 그 사이에 살이 쏙 빠져 엉덩이 뼈가 만져졌다. 오늘이 가을이 진드기 약 발라줘야 하는 날이라서 우선 진드기 약부터 발랐다. 산속과 풀숲을 헤집고 다녔을 테니 온 몽에 진드기가 득실거릴 것이 분명했다. 사료를 한 컵 주니 다 먹고 데크 위에 늘어져 자기 시작했다. 온몸에 붙어있을 진드기를 생각하니 도저히 집안에 들여놓을 수가 없어서 오늘 밤은 그냥 밖에서 재웠다. 이틀간 하절기 야외 기동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에게 우유와 사료를 듬뿍 줬고, 양껏 먹은 뒤 어마어마한 똥을 싸고 잠이 들었다.


<사진 4> 돌아온 탕아. 피곤한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데크에 앉아 있는 가을이

다음 날 가을이의 몸을 더듬어 보니 온몸에 풀씨며 검불이 붙어 지저분하기가 말할 수 없고, 왼쪽 허벅지를 어딘가에 찔렸는지 피가 났지만 말라붙은 상처가 있었다. 특히 배를 만지려고 하면 죽는소리를 하고 아파했다. 2022년 11월에 가출했을 때는 왼쪽 다리가 부러져서 돌아왔는데, 그때는 다리가 부러지고도 끽소리 않던 놈인데 이번에는 아랫배를 살짝 만 건드려도 깨갱거리며 만지는 손에 입질하려는 것을 보니 심각한 부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영동의 동물병원을 예약하고 데리고 갔다.


가을이를 진찰한 수의사선생님은 가을이의 중성화 수술도 해 주셨고,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대전 24시간 동물병원에서 수술하도록 연결도 해 주셨고, 수술 후 철심을 빼는 수술을 직접 해 주셨던 분이다. 가을이를 샅샅이 만지며 살펴보시고 배에 난 멍과 허벅지의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항생제 주사를 놓고, 소염제 처방을 해 주셨다. 그리고는 주인들은 강아지를 위한답시고 풀어놓지만 그게 절대로 강아지를 위한 일이 아니라 필요 없는 병치레를 하게 만드는 것이며 야단을 치셨다. 마치 5살짜리 아이를 산속에 방치하는 것과 같이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니 절대로 풀어놓지 말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심지어 도로에서 풀린 개를 피하려다가 차가 언덕 아래로 구르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수습비용을 개주인이 모땅 물어줘야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비록 가을이가 신체적으로는 성인에 준하는 완전히 발달된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마치 5살 어린아이처럼 앞뒤 생각 없이 호기심이 이끄는 데로 아무 데로나 가서 길을 잃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기억하기로 했다. 가을이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은 5살짜리 어린 아이를 거친 산속에 풀어놓고 돌보지 않는 것과 같다. 앞으로 가을이는 닫혀진 공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줄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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