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26 -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에는 ‘한 길 사람 속’ 베토벤이 있다. 그의 가장 깊은 내면세계를 드러낸 장르로 평가받는 현악 4중주는 들을수록, 들어갈수록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의 음악은 고정된 하나의 경험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순간들의 흐름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굴절과, 시선의 깊이에 따라 다른 굴곡을 보여준다. 그렇게 베토벤은 아직도 낯설고, 여전히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베토벤은 삶의 큰 전환기마다 새롭게 변모하는 16개의 현악 4중주를 남겼다. 전통의 영향과 그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초기 작품 Op.18의 6곡과, 죽음과 대면한 후에 과감히 관습에 대항하는 중기 작품 Op.59 ‘라주모프스키 4중주’ 등 5곡과, 지상에서 천상으로 향하는 후기 작품 Op.127 등의 5곡이 그것이다. 이 세 시기는 시기 마다 각각 6년과 12년의 공백 기간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만큼, 양식과 사상의 변화가 더욱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인 <Op.135, F장조>는 1826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예감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베토벤의 마지막 고백 같은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인 동력이 되어 왔던 투쟁과 불굴의 의지보다는 관조와 해탈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후기 현악 4중주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으며, 5악장 · 6악장에 걸쳐 무려 7악장까지 확장되었던 악장 수는 다시 4악장 구성으로 되어 있다. 각 악장 역시 소박한 주제와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초기 작품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명료하다. 동시에 단편적인 선율을 발전시키는 기법과 유기적인 통일성에서 후기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2악장은 스케르초풍의 위트와 역동성이 느껴지는 악장이다. 3악장은 매우 느리고 조용하게 전개되는데, 맑은 슬픔이 담겨 있는 선율이 애잔하게 흐른다.
그런데 제4악장은 서두에 ‘힘들게 내린 결심’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문장이 붙은 동기가 쓰여 있다.
이 악장은 서주부터 코다에 이르기까지 이 동기를 사용한 문답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진행한다. 이 악장에 쓰인 암시적인 표제와 동기는 아직까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추측과 해석을 낳고 있다. 또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영화와 소설 등에 쓰이는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최후의 악장에 쓴 말에 실린 무게는 실은 그의 삶의 무게일 것이다.
후기 현악 4중주를 작곡하던 시기에 베토벤은 소리의 세계에서 완전히 차단됐다.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뿐이었다. 들리지 않지만 돌아갈 수도 없다는 생각이 차라리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까? 만년의 처절한 고독 속에 베토벤은 끝까지 그 소리에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그 울림에 수많은 이들이 형이상학적인 수식을 붙이지만, 오독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온 세상을 울릴 수 있는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베토벤은 귀가 먼 작곡가라는 특별한 운명에 선택됐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자유가 있었다. 도망치지 않을 자유이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그 자리가 바로 그가 끝까지 있어야만 하는 곳임을 그는 알았다. 베토벤은 자신의 치명적 불행으로 세계를 위로했다.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