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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yi Jung Oct 07. 2022

이태리 여행, 딱 한가지 컵라면을 가져가야 한다면?

여행 짐을 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지막에 넣는 것’이다.


흠... 뭘 덜 넣은 것 같은데...

사실, 여행 짐을 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지막에 넣는 것'이다. 처음에 넣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챙길 것이라는 거다. 그러면 왜 '마지막에 넣는 것'이 중요하냐고? 왜냐하면, 사실 그건 안 챙겨도 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안 챙겨도 무방하지만, 있으면 왠지 좋을 것 같은. 예를 들자면 기호식품 같은 것들이 차지하는 순서가 바로 캐리어의 마지막인 것이다. 가방이 꽉 차지 않았다면, 분명 무언가 빠트린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MBTI J 부부는 무엇이 됐든 비어있는 캐리어 공간을 채우고 싶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의 비어있는 구석도 채워질 것 같았다.


뭔 라면이야?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인천공항. 아내는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고 싶다고 했다. 평소의 남편이었다면, "촌스럽게 무슨 컵라면이야"라고 했겠지만,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 아니겠는가. 캐리어 공간도 넉넉하겠다, 남편의 마음도 한참 넉넉해진 참이라, 남편은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아내와 함께 흔쾌히 인천공항 지하로 내려갔다.


편의점에는 캐리어를 끌고 들어갈  없어, 남편은 입구에서 캐리어를 지키고 있기로 하였다. 아내는 마치, 다섯  아이가 할아버지  근처 슈퍼에 들른  마냥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바구니를 들고 편의점 구석구석뒤지기 시작했다.


비장미


그래, 육개장 사발면은 인정이지.

아내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마음을 정한 듯 하나씩 맘에 드는 것을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캐리어에 여유가 있으니 먹고 싶은 거 충분히 담아 오라 했지만, 아내는 딱 4개의 컵라면을 바구니에 넣어왔다.


"그래 육개장 그건 인정이지. 김치 사발면? 그냥 육개장이 낫지 않나? 오... 오징어 짬뽕 좋은데?" 무엇하나 그냥 넘어가질 않는 남편의 참견이 여기서도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말이 좋아 남편의 참견이라 하는 거지, 맘껏 고르라고 해서 실컷 골라 왔더니 이 라면은 어떻고 저 라면은 어떻고 첨언하는 남편을 보며 아내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남편의 마지막 한마디는 놀라울 지경이었다.


자기야, 나는 참깨라면 하나만 넣어줘

그런데 사실 놀란 ,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기 것도 사달라는 말이 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2015 당시, 베를린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었다. 장장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맥주를 마시며, 한국인의 탄수화물 일일 권장량 한계치를 한참은 넘기고 있었기에, 따로 면을 찾아 먹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한식을 찾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해외여행에 챙겨갈 컵라면을 고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젊었다...


너도 내 나이 돼봐

생각해 보면, 학부 시절 선배들은 모두 건강미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건강미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한참 부족했다. 생기가 넘친다고 할까? 밤새 술을 먹고 아침 8시에 오픈하는 카페에서 수다를 떨 때도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던 사람들이었다. 낮잠을 자고 나면, 저녁부터 다시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선배들이 마의 서른 살을 넘기고 삼십 대가 되자마자, 다들 약속이나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먹으면 다음  머리가 아프다는 , 가만히 있었는데도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 스무 살이 되는 , 모두가 술을 사러 편의점에 달려갔던 것처럼, 서른 살이 되는 , 모두가 건강 검진을 받고 병원다니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삼십 대를 맞이한 아내는, '하루를 밤을 새면 이틀은 죽어'라는 다이나믹 듀오의 가사가 이해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이젠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고, 여행 스타일도 많이 변했다는 말이 되겠다. 캐리어의 마지막 빈 공간에 이젠 컵라면을 넣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다음 캐리어의 빈 공간은 뭐로 채우지?

신혼부부의 다음 행선지는 정해졌다.   마음 한구석을 남겨두고 왔던 도쿄. 도쿄에서 가지고 오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꽤나  캐리어를 챙겨가게   같다. 그럼, 도쿄행 캐리어의  자리를 차지할 마지막 탑승객은 누가 될까? 아무리 MBTI J더라도, 캐리어의 마지막 순서만큼은 출발 직전에 정해야   같다.


, 그래서 라면은 먹었냐고? 당연하지. 여행의 아홉 번째 , 포지타노에서 하루종일 바다 수영을 하고 저녁에 숙소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말해 무엇할  아니라, 필력이 모자라서  엄두가  난다.  생각해 보시라, 이태리를 여행할 ,  하나의 컵라면만 챙겨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국물이 있는 라면이냐, 짜파게티류의 볶음 라면이냐에서부터 우리는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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