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라는 평판, '최악의 빌런'으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
그날 아침,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려던 나는
갑자기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중요한 미팅이 있던 날인데,
도저히 씻을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널브러진 채로 회사에 연락하고
급하게 연차를 냈다.
비즈니스 매너를 그렇게 중요시하던 내가,
거래처에 연락도 없이 미팅에도 나가지 못했다.
정상적인 판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내 몸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속이 울렁거려 욕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데,
전날밤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 어제 토하다가 피가 섞여 나왔었지 아마…’
전날 밤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나는
술을 몇 잔 더 들이켠 뒤 그대로 잠이 들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동네 내과가 있다.
늘 걸어가던 그곳에 도저히 내 힘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급히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혈액검사를 한 뒤, 오후에 보자고 했다.
병원 근처 카페에 있는데,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빨리 병원으로 다시 오라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
결과를 들으러 간 진료실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내 또래의 젊은 의사가,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의사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냐고,
어쩌려고 그러셨냐고..'
협진 의뢰서를 줄 테니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입원하라고.
그랬다.
손꼽아 기다렸던 길었던 연휴..
나는 작정하고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하이볼에 취했다.
안주 없이 넷플릭스를 보고 하이볼을 마시며,
남의 시선 없는 집구석에서 홀로 취하며 즐겼다.
5일 동안 나는 홀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급히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바로 입원하자고 했다.
‘아니, 지금 의료대란이 끝나지 않았는데..?
대학병원은 중증환자도 뺑뺑이를 돌린다던데,
날 이렇게 쉽게 입원시켜 준다고?’
의아해하고 있던 참에 응급실 의사가 다가왔다.
동네 내과 의사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하고..
간수치가 1,500을 넘어섰고,
염증 수치는 30이라고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생전 처음 보는 수치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나는,
응급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입원실로 올라가
입원실 침대로 옮겨졌다.
환자복을 혼자 입지 못해 간호사가 도와줬다.
간호사 여럿이 번갈아 가며,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왔다.
처음 보는 굵디 굵은 바늘을 내 손목에 찌르더니
여러 개의 통을 교체해 가며 내 피를 뽑아가고,
더 굵은 바늘로 내 팔의 정맥을 찔러 링거를 꽂고 갔다.
그렇게 나는 해지기 전 잠이 들었고,
자정이 되어 그 어둡고 고요한 밤에
이송용 침대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그렇게 난생처음 MRI를 찍었다.
한 밤에 느껴지던 차가운 기계 바닥,
심장까지 울리는 시끄러운 기계음..
나는 지금도 그 차가움과 소음을 잊지 못한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마자 잠이 덜 깬 채로
또 피를 뽑혀야 했고,
정신을 조금 차리고 나서 회사에 연락했다.
당일에 전화해 5일간의 연차를 통보했다.
그렇게 인수인계도 없이,
'해결사'였던 나는 최악의 빌런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생 남의 시선에 그렇게 구속받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내 생각’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1억이라는 연봉과 점점 멀어졌다.
더 이상 나에게 대기업의 타이틀과 연봉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빌어먹을 ‘남의 시선’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