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3화. '초민감자' 술로 만든 연봉 1억

술로 쌓은 모순된 커리어패스

by 은호

어느새 나는 맨 정신으로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맥주 한 잔’이었고,

‘소소한 즐거움’이었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포장하며 합리화했다.


술은, 유일하게 나를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였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마약 같은 존재였다.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신이 나를 빚을 때, 센서티브만 100스푼 정도 꽉 채워 넣은 게 분명해’


어린 시절, 늘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며 성장한 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남의 시선'에 구속되어 초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다가,

가장 먼저 가방을 챙겨 퇴근했다.


빨리 술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누구보다 빨리 걸어 지하철을 타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맥주를 사고,

차가운 맥주를 냉동실에 잽싸게 넣어 두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씻지도 않고, 캔맥주를 따서 급하게 들이켰다.


참 웃긴 것은, 모순적이게도 술을 마시며,

자기 계발 도서나 치유하는 에세이,

또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치유하는 글을 보면, 술에 취한 당시는

‘그래, 나는 일도 잘하고 인정도 받잖아?’

‘나는 일에 누구보다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야!’

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술에 취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블랙아웃이 습관적으로 찾아와,

전날 밤의 자신감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친 몸으로 출근길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해결사’라는 타이틀까지 얻으며

성과를 척척 만들어 냈고,

남들의 인정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무리 지은 그룹이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나를 험담하는 것 같은데..’라는

어처구니없는 의식 속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다가

또다시 퇴근 후 술 한잔..

정말이지 나조차도 나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채로

그렇게 10년 넘는 시간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웃긴 것이

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 꽃 같은 20대를..

중년 남성들의 가래 끓는 기침소리가 가득한 고시원에서

밤바다 술에 의존한 채 형편없이 살았는데..


회사에선 다른 가면을 쓰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20대, 연봉 1,800만 원의 서러운 계약직 신세에서

30대, 고급 오피스텔, 연봉 1억이 넘는 대기업 엘리트로

커리어패스만 보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성과를 쌓았다.


하지만, 성공을 자축하기도 전에,

그 긴 세월 동안 누적된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혼자 마시는 술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더 세상과 멀어진 것이다.

사람들을 피했고, 약속을 미뤘다.

취하지 않으면 솔직해질 수 없고,

용기 내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침엔 늘 후회했다.

전날 밤의 문자, 통화 기록, 어두운 대화,

텅 빈 잔들.

그리고 멍한 정신과 속 쓰림.


문제는, 이렇게 마셔도 일은 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괜찮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잘못된 믿음이 가장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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