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2화. 인생 첫 한잔이 시작되던 날

인생 첫 한잔은, 나의 첫 도피처였다.

by 은호

내가 술을 처음 마신 건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나이가 들어 보여 노안이라고 놀림받던 친구는,

강단 있게 민증 없이 술을 사 와 우리들의 스타가 되었다.


인생 첫 한잔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큰 잔에 맥주를 따르고, 소주를 섞어 웃으며 건배를 외쳤다.


그날은 유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집구석에서 남몰래 같이 자라난 고통과 아픔이,

그날 웃음으로 변화되어 터져 나온 것이다.

생애 처음 해방감을 느낀 그 교묘한 기분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풀어놓은 시간이었다.

그때는 마치 술자리가 인생의 문이 열리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처음 마신 술은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누구보다 술체질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쌓였던 긴장도, 담아뒀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괜찮다, 이렇게 마시면 되는 거구나.”

그때 나는 그렇게 깨달아버렸다.

술은 사람을 웃게 해주는 거라고.


대학교 시절도, 술은 빠질 수 없는 문화였다.

OT, MT, 종강파티, 생일파티, 축제.

어느 자리든 술이 중심에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도 술잔을 부딪치면

순식간에 부둥켜안는 친구가 되었고,

속마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낯가림이 심각해 낯선 자리에 있는걸 지독히도 싫어했던 내가

술을 마시면 어느새 180도 변해서 술자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술자리가 많아지고, 친구들도 많아졌다.

친구들과 술에 취해 웃고 떠드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집구석에서 느꼈던 아픔은 잊혀갔다.


어릴 적의 상처도, 현재의 불안도, 잔잔하게 묻어두고

술 몇 잔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생 첫 한잔이,

서서히 내 삶을 파고들었다.


‘웃기 위해 마셨다’는 자기 합리화

'무리 중 스타가 된다'는 어리석은 낭만

'아픔이 사라진다'는 말도 안 되는 사고


그렇게 성장기의 아픔을 간직한 채

극 I로 살아왔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는 술에게 참 고마웠다.


지금은 지독히도 싫고, 역겨운 그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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