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낯선 것들.

어쩌다 엄마

by By Grace

어쩌다 엄마


5월에 햇빛은 제법 따가웠고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집까지는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했지만 멀미 증상에 속이 메스꺼워 결국 내려서 걷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편의점을 발견하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속을 달래기 위해 음료를 고르다 노란 바나나 우유를 집어 들었다. 평소 우유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날따라 유독 노란 빛깔을 띄우며 달콤한 바나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나나 향이 날리 없었을 텐데 이미 먹고 싶은 욕구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감각이라는 걸 그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고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20대의 마지막도 서른의 처음도 여전히 불규칙한 사랑과 일의 연속으로 마음껏 즐기다 어느 순간 주위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하나둘씩 그들만의 관계에 충실해지자 나 역시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고 그저 화려한 웨딩 스토리의 주인공 역할에 충실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나만의 공간에 한 명이 추가되었을 뿐 변한 건 없었다. 즉흥적으로 새벽에 게임 방도 함께 했고 커플끼리 밤새워 포커도 치러 다니고 그저 혼자여서 무서웠던 벌레 잡기. 불 끄고 잠들기가 해결되니 좋을 뿐이었으니까.

달콤한 바나나 우유를 마시던 그날 아이는 사인을 보내왔다. 아주 미세한 통증으로 가느다랗고 뾰족한 것이 아랫배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찾아왔는데 그 미세한 사인은 통증이기보다 불쾌함에 가까웠다. 그 느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강하게 남아있다.

“아니. 결혼한 여자가 배가 아프면 병원부터 가야지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

“병원 갈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닌데 뭘……”

“잔말 말고 당장 병원부터 가봐.”

엄마는 서른이 넘은 딸의 생각 없는 투정을 걱정과 기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해주었다. 티브이 드라마처럼 여주인공이 입을 틀어막고 웩웩거린 후에 손가락을 꼽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는데? 이런 게 임신이라고?

전화를 끊고 나자 혹시 멀미와 바나나우유가 그런 이유였나 싶은 생각에 맘이 급해져 서둘러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소변검사 결과 임신입니다. 4주 조금 지났고요. 초음파에는 6주가 돼야 나타날 테니 2주 뒤에 예약하고 그때 다시 오세요. 아주 예민 한가 봐요. 대부분 이 시기에는 아무런 증상도 못 느끼는데 말이 예요”

의사의 말에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멀뚱멀뚱 쳐 다만 봤다. 간호사의 안내로 접수하고 예약하고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손에 들린 카탈로그와 수첩에는 내 이름 끝에 산모 님이라고 적혀있었다. 낯설었고 실감이 나질 않은 채로 엄마가 되어있었다.

pexels-mart-production-7088840.jpg 너였구나......


출산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신기하게도 뱃속에 아기집이 있어 새로운 생명체가 자란다고 하니 그날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위험해 보였다. 집 앞 마트도 차로 이동하던 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았고 굽 높은 힐을 포기했으며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공이 나한테 날아올 세라 집 콕 생활을 자처했다. 나 스스로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아주 특별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거나 늦은 결혼 때문에 서둘러 임신을 원것도 아니어서 실감이 나질 않았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똑똑한 아기를 낳겠다며 콩비린내 나는 날 콩을 갈아 마시고 손바느질과 명상으로 태교를 시작했다. 30년간 나를 위해 살았던 라이프 스타일은 오프 상태로 멈추었고 낯선 생명체를 위한 온으로 풀가동해 점점 일상이 변했다. 어느덧 31주 차가 되어 배가 불러오자 서있는 상태에서 내 발을 못 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 도움 없이 혼자 외출할 엄두를 못 내게 되었고 그런 나에게 주위에서 한 마디씩 참견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한 친구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마치 커다란 프로젝트를 성공한 사수처럼 한껏 뻐기며 충고를 해주었다.

“너 임산부가 너무 안 움직이면 뱃속 아기가 커져 출산할 때 너무 힘들다. 운동해야 돼.”

“운동? 무슨 운동 요가나 필라테스?”

“그런 거 말고 엉덩이 들면서 무릎 굽히고 방이며 거실이며 걸레질하는 게 젤 좋아”

“그래?”

나에게 출산 경험을 한 사람들의 노하우는 출산 입문서가 되었다. 훗날 엄청난 결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카더라’ 통신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 하기에 정신없었다.

며칠 뒤 여느 때처럼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돌아섰을 때 아랫배에 통증이 왔고 그 간격이 규칙적으로 느껴졌다. 책을 펼치며 주수 별 증상을 보니 가 진통이 올 수 있다는 증상으로 정상적인 반응 이라고는 쓰여 있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병원에 전화를 했다.

“저...... 규칙적으로 배가 아파 서요. 책에는 8개월 차에 오는 증상이라고 적혀 있긴 하지만……”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배가 아프면 당장 병원으로 와야죠. 책이 무슨 소용 있어요.”

어이없어하며 나무라고는 당장에 병원으로 오라고 쏘아 부쳤다. 이건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쿵쾅대는 내 심 박수에 행여 뱃속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주문을 걸고 차분히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동행하던 손아래 동서 말에 의하면 당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고 한다. 자신은 놀래서 잠자는 애를 둘러업고 오느라 부스스한 모습인데 아프다고 병원 가는 산모가 한껏 멋을 내는 허세가 웬 말이냐며……

그날 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31주 조기 진통으로 다행히 자궁문이 열리지는 않았다고 만일 1센티라도 열렸으면 분만을 했어야 될 정도로 심각했다고 했다. 억제 제를 맞고 남은 9주를 옆으로만 누워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는 의사의 질문에

“너무 안 움직이면 애가 커지고. 제일 좋은 운동에는 걸레질이 좋다고 해서요 ……”

“걸레질이요? 아니 무슨 걸레질을 얼마나 했길래 요?”

“방 4개랑 거실 요.”

“아니 산모 님. 그 말 그대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산모마다 상태가 다 다른데 남들이 30평대 아파트 면 본인은 원룸이 예요. 원룸.”

결국 내 무지로 조기진통이 왔고 이른둥이를 낳을 뻔한 거였다.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일 위험한 게 카더라 통신이다. 그때 그 말을 했던 친구는 병문안을 와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아마도 그 이후로 경솔한 충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pexels-rodnae-productions-6129691.jpg 하마터면 이른둥이가 될 뻔


나의 작은 엄마들



현관문을 열어준 그녀의 눈가는 빨갛게 부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울었던 모양이다.

나를 보자 왈칵 쏟아내는 눈물에서 많은걸 유추할 수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되어 혼란스러운 환경. 주중 주말도 없고, 아침인지 밤인지 구분 없이 수유와 육아로 몸과 맘이 피폐해져 부풀대로 부풀어진 풍선 과도 같아서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산모들.

찬란했던 20대의 절정을 맛본 후 더불어 함께 할 짝을 만나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진정한 오르가슴은 출산이라고 했던가? 남편의 응원, 결혼의 질, 여자들은 많은 것보다는 아주 의외인 것에서 감동을 하고 상처를 받는다. 달콤한 말을 좋아하고, 열정이 사라질 때 추억에 집착하기도 한다. 난 그저 들어말 줄 뿐이다. 내 의견을 전달할 필요 없이 그저 진심으로 그녀의 편이 되어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주는 항아리가 되어주면 좋다.

“알아요. 난 무조건 당신 편이고 당신을 지지합니다.”이 한마디면 된다.

엄마가 되고 나서 설레고 혼돈스럽고 당황하고 기뻤던 감정의 주인공들인 산모와 신생아를 가장 가까이서 함께 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00일을 그녀들에게 산후관리라는 과거 품앗이처럼 친정엄마, 언니들이 해주었던 돌봄을 시대가 변하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또 사업으로 확장된 지금 많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안타깝고 행복했다. 그래서 엄마가 된 그들에게 존재하는 의미를 꼭 알려주고 싶었다.

완벽한 엄마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세상의 빛을 본 신생아는 꽃잎이다. 안을 때조차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예쁘다고 마음대로 안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때에 어디 가서 이런 아가를 만날 수 있을까. 세상 맑고 환한 아기의 표정은 나에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준다. 아기를 품에 안고 깃털같이 보드라운 피부를 쓰다듬을 수 있는 건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아기와 엄마. 그리고 그들을 돌봐주는 관리사. 이 모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으로 많은 걸 보고 배우게 되었다. 4차 산업으로 모든 게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어도 아직까지 사람의 손길이 가야 하는 돌봄에서만 느껴지는 공감이 있다. 이 공감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


pexels-karolina-grabowska-4197491.jpg 네가 제일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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