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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Apr 26. 2022

시어머니의 산후조리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며느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시어머니의 잘못일까. 그저 부모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며느리의 잘못일까. 아니면 중간에서 처신을 잘못한 남편의 잘못일까. 내가 우선적으로 만나는 고객은 출산 전 후의 산모와 아기이지만 보호자 역시 밀접한 관계에 그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고객이다. 산후관리란 게 좀 있는 집이다 하면 친정의 도움을 받아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부득이  시어머니의 불편한 도움은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며느리는 시어머니 앞에서 결코 편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금치가 좋아


'시'자의 '시금치'도 싫다는 말


산모의 남편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제 어머니가 오셔서 아내를 돌봐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마음이 놓였어요. 아무래도 첫 손 주니까 엄청 좋아하셨거든요. 모르는 사람 도움은 불편하기도 하고. 좀...... 불안하기도 하잖아요.”

손주를 처음 맞이하는 어머니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아들은 아내의 감정까지는 살피지 못했던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미역국이며 불고기 삼색나물 등 산모를 위한 황후의 밥상을 차렸다. 하루가 지나자 며느리는 감사하면서도 앉아서 시어머니에게 하루 세끼를 받는 부담감 때문에 자연스레 주방에서 어머니를 도왔고 “산모는 쉬어야지 안 나와도 되는데......”하시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차이를 느끼며 씁쓸했다.


남자의 말


밤낮 구분이 없는 신생아를 돌보다 보면 가장 힘든 게 부족한 잠이었다. 산모는 틈틈이 낮잠을 자 두어야 야간에 버틸 수 있는데 아기 빨래며 젖병 소독 같은 일은 산모가 하다 보니 피곤이 쌓이고 우울해져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리게 되었다. 

“그냥 엄마한테 말씀드려서 해달라고 하고 자기는 자면 되지.” 

“뭐? 자기는 아침에 출근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하루 종일 어머니랑 지내는 게 편하지 않아.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 나와 뭐라 생각하시겠냐고!”

투정에서 말다툼으로 번지게 되었다. 하지만 제일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었는데 모두가 잠든 시각에 갓난아이가 울어버리면 속수무책이었다.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아무 이상 없는데 울면 미치고 팔짝 뛸지경인데 아기가 조금만 '엥'거리면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열며 젖을 물리라는 시어머니의 참견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애가 배고파 그런다. 그러게 애한테는 에미 젖을 물려야지. 소 젖을 먹이면 쓰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네가 다 똑똑한 줄 알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쯧쯧” 앞뒤가 맞지 않는 아무 말 대잔치로 모유만을 고집하는 통에 처음 한 두 번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하던 것이  벌컥벌컥 문을 여는 횟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속으로 삭히던 것이 화로 돌변했다. 어느새 밤만 되면 시어머니의 방문여는 환청이 들릴 지경에 이르자 남편을 붙잡고  본가로 내려가시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래. 하루 이틀만 두고 보자. 어차피 내일이 주말이라 출근 안 하잖아. 내가 더 신경 쓸게.”

다정하게 말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조르지 못하고 대화를 중단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다. 뭘 두고 본다는 건지.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로 인해 육아 부담도 덜고 산후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한몫했다는 생각을 하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여자의말


하지만 남편의 바람대로 주말을 넘기지 못하고 문제가 터졌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여지없이 아기는 또 칭얼대기 시작했고 그녀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하지만 두어 번 빨다 밖으로 뱉어내는데 몇 번 의 반복 끝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거부했다. 어떻게든 아기를 달래 보려 했지만 이미 시어니의 다급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질 끔 감았다. 남편은 그동안 출근하느라 힘들다고 따로 자라는 시어머니의 말대로 다른 방에서 이런 상황도 모른 채 잘 자고 있을 것이다. 

“또 우냐. 아무래도 아이가 분유로는 성에 안찬 게 분명하다.”

“아직 배고플 때 아니에요.”

“에미 젖이 그리워 그러는데 상관 말고 얼른 젖을 물려봐라. 아니 그렇게 모유 잘 나오게 하려고 돼지족도 먹이는데 왜 모유를 못 먹이는지 모르겠구나.”마치 그녀가 일부러 안 먹이려고 한다는 듯이 나무라는 말투에 순간 그동안 시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온전히 당신 손주를 위한 모유 짜는 젖소 취급에서 나오 것이라고 생각하니 쌓였던 설움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 자꾸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저도 모유 안 먹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도 속 상하다고요. 근데 옆에서 어머님이 감시하는 거 같아 더 안 나온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제발 좀... 그만하세요.”

“아니. 얘가 지금...... 내가 뭘 어쨌다고......” 

기 막혀하는 어머니 앞에서 목놓아 엉엉 울었고 아기는 더 크게 우는 상황은 말 그대로 대형사고였다.

놀란 남편이 비몽사몽 팬티 차림으로 달려오자 그녀는 남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내가 말했지! 왜 이렇게 까지 되도록 방관하는 건데. 진작에 가시라고 했으면 지금 내가 미친년 같은 모습은 안 보였을 거잖아.”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은 긴 밤이었다.


좀 더 잘하지 그랬었나


그러게 하지말았어야 하는것들.


이튿날 그녀의 아침은 차려지지 않았고 남편은 어머니의 짐을 부랴부랴 싸서 본가를 향했다. 시어머니의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스릴러로 끝난 산후관리였지만 그 날이후 거짓말처럼 산모는 완모(분유가 아닌 모유로만 수유)를 성공했다. 그만큼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걸 보여주는 중요한 팩트였다. 이왕이면 시어머님의 돌봄 중에 이루어진 결과였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시자 붙은 거북스러움은 좀처럼 없어지기 힘든 우리만의 전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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