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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Apr 24. 2022

아기와 고양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어렸을 때 '밍키'라는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키운 적이 있었다금빛 털이 땅에 닿을락 말락 찰랑거리며 산책을 할 때면 지나가던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앙증맞고 귀여웠다게다가 영특해서 졸다가도 주인의 주차 소리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며 현관으로 달려가 서있으면 어김없이 내가 벨을 누른다고 했다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엄마는 어느 자식이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겠냐는 말을 하며 밍키를 품에 안았다때로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동물만의 과한 표현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온 식구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밍키는 형제 없이 자란 나에게 그저 동물이 아닌 동생 같은 존재였는데 어느 날 엄마와 산책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그때 이후로 이별의 슬픔이 너무나 큰 트라우마로 남아 두 번 다시 반려동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 가족 


이틀이 지나도록 산모가 키우고 있다는 고양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기와 산모는 안방에서 생활을 하고 신랑과 고양이는 건넌방에서 지낸다고 했다. 

저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밖으로 안 나오고 숨어있다 밤에만 나와요. 밥 먹으러.”

그럼 온종일 방에만 있는 거예요? 한 번도 안 나오고? 어머나 안됐네요. 답답할 텐데……”

그래도 시어머님이 아기랑 같이 키우는 걸 워낙 싫어하셔서요다른 집에 보내라는데 어떻게 그래요. 아기 때부터 키워서 제가 엄마인 줄 아는데 하루아침에 자기가 지내던 방도. 엄마도 뺏긴 셈이잖아요.”

그녀는 출산 전까지도 아기와 고양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다가 갑작스레 변한 환경에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다고 만 했다. 굳게 닫혀있는 건넌방 문 앞부터 거실 가장자리를 둘러싼 고양이 통로가 덩그러니 설치되어있는 있는 걸보며 새로 태어난 아기의 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지내는 곳도 수면 공간과 놀이공간 등 분리해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줘야 함에도 아기침대에서만 지내는 것도 그렇고 한때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녔을 고양이한테도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산모 역시 고양이 입장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자기 공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건넌방으로 쫓겨난 셈이어서 스트레스가 말이 아닐 것이라며 특히 안방에 대한 집착으로 밤만 되면 안방 문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대는 통에 입주민의 민원까지 들어오고 있어 심각한 골칫거리라고 했다의도치 않았겠지만 식구 모두가 불편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누구냐. 너는......


늘 일어나는 변수


나 역시 고양이를 가까이 대해본 경험이 없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보냈고 드디어  일주일 만에  살그머니 거실로 나오는 고양이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짐짓 도도하게 본 척도 안 하더니 차츰 내 다리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시치미를 떼는 게 꼭 소개팅에 나온 내숭 떠는 여자 같았는데

이제야 얼굴 보여주네배고파서 나왔니?”하고 말을 걸자 마치 지금의 처지가 이렇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집의 공주임을 과시하듯  느릿느릿 이곳저곳을 킁킁대며 돌아다닌 모습에 '저라고 별수 있나' 싶어 웃음이 났다. 때마침 안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내가 방문을 여는 순간 관심 없는척하던 고양이가 순식간에 열린 문틈을 비집고 돌진하더니 그대로 침대를 향해 점프를 하는 게 아닌가저렇게 높이 튀어 오른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산모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고양이를 잡느라 잠깐 동안 소동이 일어났다다행히 아기침대에 누워있던 아기는 무사했지만 산모의 목덜미는 긁혀 살짝 피가 나있었다.


조금만 더 사랑했더라면


만일 아기를 안고 있었다면 어땠을까별일 없어 다행이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직업상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에서 과연 아기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생겼다. 임신과 출산교육은 책 한 권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나 역시 부모교육을 받은 후 임신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에서 책임감은 비단 인간뿐 아닌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입양하기 전 한 번이라도 가족계획을 염두한 후에 결정을 했더라면 혹은 출산 전에 좀 더 구체적인 계획 가령 아기가 신생아의 시기를 벗어날 때까지 임시보호처를 알아보았다면 말 못 하는 고양이의 상처도. 산후조리만 신경 써야 할 산모도. 퇴근 후 편안하게 가족을 돌볼 가장도. 무엇보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를 위해서도 좀 더 맘 편한 관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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