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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Apr 20. 2022

남편. 남의 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무엇이 그리 서러웠던 것일까. 신발을 벗기도 전에 눈물을 왈칵 쏟으며 소파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다독이며 주위를 살폈다평소에는 거실 바닥에 누워 모빌을 쳐다보며 엄마와 함께 놀고 있을 아기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도담이는 어디에……”

도담이 분유 먹고 좀 전에 잠이 들어서 방 침대에 눕혔어요선생님 오시면 아무래도 제가 더 울 것 같아서요. 시끄러울까 봐……” 

고개를 끄덕이며 안방 문을 살그머니 열자 아기는 엄마의 눈물범벅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잠이 들어있었다

거실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니 아침햇살에 그녀의 어깨가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아기 때문에 소리조차 머금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니 더욱 측은했다나이로만 보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었을 깜찍 발랄한 아가씨가 한창 멋 부리고 자유를 만끽할 나이에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한때는


나의 사랑. 나의 주니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소개팅에서 만난 동갑내기 커플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려 연애를 시작했고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부모의 지원으로 해외 교환학생으로 미국도 다녀왔다졸업 후 부모 기대에 맞는 커리어를 쌓겠다는 다짐에 찬물을 끼얹듯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당장 실망하실 부모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녀의 임신소식을 접한 남편은 바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한치의 망설임이나 당황한 기색 없이 청혼을 했고 저런 남자라면 평생 의지해도 될 것 같아 그녀는 사회 구성원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와 엄마로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과 확신이 들어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했고  행복했다.

곧바로 양가 부모의 상견례가 정해져서 출산 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혼인신고와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주위 눈치 보지 않는 신혼생활도 잠시. 출산을 하자 생각지 못했던 26세 초보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다하지만 남편은 예전의 삶에서 바뀌지 않은 친구들과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었다조리원에서 퉁퉁 불어 젖몸살로 고통을 받을 때 친구들과 게임을 하려는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남편은 남편대로 조리원 퇴소를 한 후에는 아기와 아내를 돌보려면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갖는 시간을 이해 못 하냐는 말다툼을 시작으로 그녀는 육아를 하며 느끼는 입장 차이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우울감이 들었다그런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다 결국 폭발하게 된 건 지난밤 도담이의 울음 때문이었다아직까지 신생아인 도담이는 분유를 먹고 기저귀도 갈아주었는데 보채기 시작했고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남편은 배가 고픈 거라며 한 시간도 안되어 또 분유를 먹이기를 권했지만 수유시간은 규칙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다 점점 언성을 높인 채 밤을 새워 다음날까지 풀어지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 역시 그녀에게 퉁명스레 대하는데 화가 치밀어 그동안 섭섭했던 걸 쏟아부었더니 대뜸 험상궂은 표정으로

“애 앞에서 소리 높이지 마!"내뱉었다. 정말 그동안 그녀가 믿었던 듬직함이 아닌 섬뜩할 정도의 매몰참에 눈물부터 고였다

지금 애 걱정만 하고 나는 눈에도 안 보여?”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억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내 앞에서 달래기는커녕 

내 아이 앞에서 눈물도 흐느끼지도 마.”라는 말과 함께 아기를 안고 나가 버리는 남편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한 대가가 이게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어 겆잡을 수없는 설움에 북받쳐 이불을 쓰고 목놓아 울었다.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라는 영원한 진리


그녀는 내게 아침에 있었던 상황을 말한 게 아니라 지금껏 그녀의 감정을 전부 쏟아냈고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짊어졌던 물에 젖은 솜뭉치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듯했다. 친정엄마에게 털어놓자니 행여 속상해할까 싶어서친구에게는 괜한 자존심에. 못했던 가슴속 뜨거운 울화를 밖으로 내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저 내 앞에서만이라도 마음껏 쏟아내고 후련하다면 다행이었다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건넸다

“도담 맘은 잘하고 있어요속상한데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거든.”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께 말하고 나니까 시원해요아까보다 남편도 덜 밉네요.”

아직 많이 사랑하니까 금방 풀리는 걸 거예요.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라며……”

하하하하하 그런가 봐요.”

이번엔 소리 내어 웃는 걸 보니 저녁에 남편을 대하는 그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내편이길 원하며



현관문을 나가는 순간 내 것이 아닌


남편간혹 농담처럼 내편이 아닌 남의 편을 남편이라고 한다눈에 콩깍지가 끼던 시절이 지나고 현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본인 맘에도 없는 못된 표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아니 꽤 많다.

어쩌면 맘에 듬뿍 담은  진심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얼한 감정이 고스란히 와닿으니까그래서 남의 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그녀의 남편은 속이 상해 우는 와이프 걱정보다 울음소리를 듣고 불안해할 자신의 주니어가 본능적으로 더 소중해서 이성을 잃었을 수도 있다그 찰나에 누구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 역시 남편이 아닌 내 아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매사 이분법적인 선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유를 모른 채 우는 아기를 달래는 건 어렵다. 더군다나  초보 엄마 아빠의 경우 이 시기부터 육아방법에 입장 차이가 생겨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기에 서로 우기느라 신경전을 펼치는 것보다 힘들수록 우회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열 달을 품으며 목숨과 맞바꾸어 나의 주니어를 탄생시킨 아내를  생각한다면 좀 더 달라질 수는 없었을까.



마담스완 오디오북"남편?, 남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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