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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Apr 19. 2022

it's too late.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다더니......


세대 호출벨을 누르자 한참 울려도 응답이 없다가 한번 더 누른 후에야 문이 열렸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안에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이 집이 두 번째 방문인데 첫 번째 방문 때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산후관리 문의로 예약을 할 때 계약금을 입금하지 않아도 구두 계약으로 간주해서 관리사에게 주소를 전해주어 관리 날짜에 맞춰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녀는 다짜고짜 인터폰으로 전화로 문의만 한 거라며 끊어버린 말 그대로 문전박대를 당했기에 산모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좀 더......


일타쌍피


예상대로 현관문을 열어주는 산모는 쌀쌀맞아 보였고 키우는 개 또한 정신없이 짖어대며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득녀 출산을 축하드려요.”

일부러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 

누가 봐도 예의상 하는 답변처럼 짧았다. 

“우선 손부터 씻고 아기 좀 볼까요?”

손을 씻으며 10일간의 관리만 잘 버티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나와 아기침대로 갔다

아기는 프랑스 인형처럼 너무나 사랑스러웠는데 태열기가 있어 울긋불긋했고 기저귀를 살피니 엉덩이에 발진기도 있었다. 첫날인지라 많은 말을 하다 보면 자칫 지적질이 될까 싶어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누구나  가족이 아닌 타인의 방문이든 타인의 집에 방문이든 양쪽 다 쉽지 않은 관계라 첫 대면에서 남은 관리가 편하기도 불편하기도 좌우되기 때문에 첫날은 아무래도 더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첫아이의 출산인 다른 가정에 비해 집도 꽤 넓은 편이었고 키우고 있는 개도 세 마리다 보니 언뜻 봐도 제법 큰 살림이었다. 

“산모님! 아침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이요. 저희 아침은 과일로 준비해주시면 되고 수박은 소분해서 담아주세요. 점심은 신랑이 장을 봐올 거니까 그때 해주시고요. 아참. 침구 정리하실 때 이불도 빨아주세요.”

산모의 요구는 산후관리사의 범위를 넘어 가사 도우미의 역할까지 바라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배려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더라


싱크 대안에는 전날 먹은 식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걸 보니 아예 오늘 올 관리사한테 시키려고 작정한듯하여 당황스러웠다. 관리 첫날을 아기보다는 살림살이 위주로 마무리하며 돌아와 잠시 많은 생각에 복잡했지만 중간에 그만두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이왕이면 더더욱 완벽한 관리를 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이튿날부터 아침과 점심을 산모뿐 아닌 배우자까지 챙기게 되었고  더러 거실에 풀어놓은 개들이 똥을 싸놓기도 했지만 그것까지는 치워달라고 못하겠던지 본인들이 치우는 등 그럭저럭 일주일을 버티며 생각보다 제일 어려운 산모의 완모(완전 모유)를 성공시키고 아기 태열과 발진이 점차 좋아지자 조금씩 산모의 태도가 변하면서 신생아에 관한 질문이 많아지고 요구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함께 차를 마시면서 돌봄 서비스 문화와 제공자에 대한 처우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차피 돌봄 서비스라고 해도 하루 일당에 노동력이 다 포함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가정마다 필요한 니즈들이 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평소 못했던 것들 부탁하잖아요......"

"음...... 산후관리라는 게 신생아와 산모를 위한 돌봄이라고 생각하면 좀 쉬워요. 그게 우선이 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관리사의 재량껏 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더 이상 논쟁이 되면 서로 기분만 상할 거 같아 슬그머니 화제를 돌리려는데 마침 그녀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쯤 되면 남은 3일을 피곤하더라도 좋은 관계로 마무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만에 거실로 나오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지금 멘붕이 와서 스트레스예요." 

혹여 방금 전 나와의 대화에서 스트레스까지 받을 정도였나 싶어 긴장이 되었는데 통화를 한 친구도 산후조리를 하고 있어 서로의 관리사를 비교하다 보니 솔직히  그녀는 산후관리사는 다 나처럼 한다고 생각했고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게 아니었나 보다고.  이제 앞으로 이틀 뒤면 끝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했다. 사실 첫날부터 껄끄러웠던 차에 산모와 십 일 이후 연장은  불가하다고 거절했었고 산모 역시 다른 사람이 와도 별 상관없다며 서로 신경전을 두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의 서비스라 각자의 견해에 따라 해 줄 수도 있는 서비스가 매뉴얼화되어있지 않아 산모들 사이에서 '이모님'이라 불리며 복불복이라는 돌봄 종사자 중에는 말 그대로 개념 없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산모 입장에서 아기를 함부로 다룬다거나 시어머니 노릇하는 관리사를 만날 때는 산후조리에 혹을 붙이는 맘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좋은 관리사를 만나야 산후조리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홍삼과 호박을 내린 즙이며 오디를 박스째 차에 실어 주기도 했고 화장품을 건네기도 했다. 물론 나는 거절을 했고 굳이 강제로 실어준 것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다른 관리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장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그녀는 여섯 차례 동안 관리사 교체를 원했고 결국은 가사 도우미를 쓰기로 하고 육아는 자신이 하는 것으로 선택하고 계약을 종료했다.


좀 다르게 접근

갑질이란 말은 


아직까지 산후관리사라는 직업이 전문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았고 과거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돌봐주던 품앗이 개념에 매뉴얼화되어 있지 않아 어디까지가 관리사의 업무인지 산모도 관리사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보니 한국의 산후관리의 업무가 정착되지 않아 간혹 가사도우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연시해서 나오는 언행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만두기 때문에 돌봄 종사자들의 정착률이 낮은 것도 이런 이유였고 결국은 아기와 산모가 피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녀 역시 내가 아니었어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조금만 따뜻한 미소로 존중했더라면 좀 더 긴 시간 동안 마음 편한 육아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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