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돌봄의 의미
보편적 돌봄이란 모든 돌봄이 가정뿐 아니라 친족, 공동체 국가 지구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 선언> -더 케어 컬렉티브-
갑작스러운 후배의 당돌(당연하고 돌발적) 한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자 그는 책 한 권을 건네더니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제목만 봐도 멋짐이 느껴져 나를 위해 빌려왔다며 읽어보기를 권했다.
'안전한 돌봄. 건강한 서비스'는 내가 준하고 바라는 회사의 슬로건인데 간단하지만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돌봄 사업의 철학
'철학'이란 단어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선입견을 갖게 하지만 내가 왜 돌봄 사업을 하고자 했는지 동기를 찾으면 그것이
나의 철학이지 싶었다. 맨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돌본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이지만 돌봄의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의존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책의 내용처럼
나도 돌봄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을 지켜봤고
인식의 제고, 인지 불능에 대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사회적으로 당면한 돌봄 취약계층(노인, 영유아, 장애, 빈곤, 외국인, 가난)의 반복적인 문제는
커다란 바위고 골리앗이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도 선한
공동체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존재하듯 비록 영리 목적인
사업이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서비스를 위한 플랫폼 역할의 노력이 나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봄이 필요한 이유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혼자가 편해 혼밥, 혼술에 익숙해져 남에게 관심이 없는 1인 가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한 우리는 완전히 무너졌다. 돌봄 시장의 위기가 더욱 악화되어서야 매뉴얼화된 돌봄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전 세계가 돌봄 종사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응원의 손뼉을 쳤다. 돌봄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셈이다. 혼자가 익숙하고 나 이외의 무관심이 지배를 하더라도 혼자서 할 수 없는 때가 왔을 때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돌봄'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부끄러웠다......
창업 당시에는 현 돌봄 시장의 고질적인 수준 미달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라도 할 것처럼 열정만 갖고 뛰어들었다. 마치 영리로 운영되고 있는 업체의 돌봄 행위를 자신의 배만 두드리려는 이윤추구 몰이로 여기며 난 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나의 경박함이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웠는데 나 스스로를 '돌봄 사업'이라고 광고하고 돌아다닌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고 돌봄에 대한 나의 비전이 같은 분야 사람들과 비교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척하지 않는 삶
과거의 나는 있는 척, 선 한 척, 아는 척하는 일상을 살며 타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부류였다. 사람은 바닥까지 내려앉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하더니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 귀 기울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즈음부터 돌봄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90년생이 온다><돌봄 선언>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대인 돌봄은 서두르지 않고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가진 역량을 주체적 능력과 웰빙을 계발하는 데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요즘 내가 만나는 서비스 이용자는 90년생의 산모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 질은 기존 돌봄 시장에서 관행되었던 행위들과 많이 다르다. 90년생 들을 알아야 그들과의 세대 간극을 줄일 수 있기에 기성세대들은 더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신 중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완성형 인간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행형 인간에게 더 호감을 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