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듯, 세느강을 걸어 현실로
파리 샤를드골공항. 한국을 떠나 처음 도착했던 유럽땅이며 스페인을 떠나 다시 도착한 프랑스땅. 그리고 유럽에서의 44일을 마무리 지을 마지막 장소.
하지만 저녁 7시50분 탑승시간까지 너무 많이 남아있다. 수하물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파리 오페라광장행 버스에 올라탄다. 도착하던 날 몽마르트르를 올랐으니 이번에는 세느강을 걷고 오리라.
2014.8.27 수
바르셀로나에서의 아쉬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44일간의 순례길이 마무리 되는 날이다. 이제 파리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면 내일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 있겠지. 어린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와 함께 침몰하고 있는데도 구해내지 못한 위험한 대한민국. 스페인 사람들처럼 일하면 실직하기 딱 좋은 나라. 이 곳에서 배운 여유로운 삶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침의 바르셀로나는 평온하고 투명했다. 택시기사는 동양인들에게 바르셀로나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작은 비행기를 타고 흔들거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파리에 도착했다. 44일만에 다시 돌아온 파리. 인천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공항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파리 오페라행 버스에 올랐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파리를 좀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파리에 도착했던 첫 날, 몽마르트르와 사크레쾨르밖에 못 보았으니 오늘은 에펠탑도 가보고 루브르도 가볼까.
오페라 광장에 도착하니 스페인의 느긋함과는 다른 바쁜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걸었다. 지도어플을 열어 보니 루브르 박물관 부근이다. 관람할 시간이 안되니 피라미드라도 봐야겠다. 박물관 광장에 도착하니 중국인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루브르 남쪽 건물을 통과하니 바로 세느강이 나왔다. 인파에 휩쓸려 강변을 따라 걸었다. 연인들의 자물쇠로 유명한 퐁데자르(Pont des Arts) 건너편으로는 궁전이 보이고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Île de la Cité) 끄트머리에 놓인 유명한 영화속 다리 퐁네프(Pont Neuf)도 지났다. 퐁네프는 '새로운 다리' 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세느강에서 세번째로 놓인 다리라고 한다. 퐁네프 길가에 반가운 노란색 화살표가 보였다.
다음 다리를 통해 시테섬으로 들어가 노트르담 대성당의 겉모습만 잠시 감상한 뒤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잠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파리에서 시작하여 파리에서 끝난 44일간의 순례길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35일간 800여km의 산길, 강변, 들길과 마을들을 걸었고, 5일동안 렌터카를 빌려 대서양에서 지중해까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가로질러 달렸다. 버스와 택시, 지하철과 야간열차를 탔고 알베르게와 호텔, 여관, 그리고 야영과 비박을 하며 숙소를 해결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의 남은 생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1년 6개월이 넘은 지금 나는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순례길은 더 여유롭고 느리게 다녀올 것이다. 다른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나는 인생이라는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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